지난 3월 8일 KT&G 상상 univ. 아뜰리에 서울에서 손미나 작가의 신작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출간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손미나 작가는 KBS 전 아나운서로 <가족오락관>, <도전! 골든벨> 등 사내 간판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는 책을 출간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오른 그녀는 현재 여행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작가는 먼저 표지 사진에 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페루의 수도 쿠스코(Cusco) 근교에 있는 모라이(Moray)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작가는 그리스의 원형경기장을 떠올리게 하는 계단식 논 주변으로 들꽃이 펼쳐져 있어 아름다웠다는 소감을 전하며, 멋진 광경을 지나칠 수 없어 바닥에 누웠다가 쨍쨍한 태양 때문에 다리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잉카인 인류학자, 이야
손미나 작가의 친구 이야는 그녀가 바르셀로나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 만난 사람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페루 출신 기자 이야는 쿠스코에서 나고 자라 잉카인들의 철학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작가와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다.
“이야와 함께 마추픽추 여행을 했는데 인류학자이자 쿠스코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마추픽추에 대한 숨겨진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게다가 이야가 페루 사람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삶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친구 집에서 만난 할머니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게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신 분이에요. 삶은 소중하고 아름다우니 긍정적으로 살라고 말씀해주시는 걸 들으면서 제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어요. 저의 또 다른 가족을 얻은 것 같기도 해요.”
아마존 택시운전사, 오스카 아저씨
기상악화로 인한 결항으로 마추픽추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작가는 항공사에서 정해놓은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도시 푸에르토 말도나도(Puerto Maldonado) 내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호텔로 가기 위해 탄 택시에서 그녀는 두 번째 소중한 인연인 ‘오스카 아저씨’를 만났다.
“저희 팀을 호텔로 데려다주면서 푸에르토 말도나도의 역사 얘기를 해주는데 매우 지적인 거예요. 계획했던 일정에 차질이 생겨 아무것도 못 하게 됐는데 이 분과 온종일 같이 다니면 뭔가 의미 있는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중남미 같은 곳에선 택시를 잘못 타면 택시 기사에게 모든 것을 뺏기고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저씨께 하루만 같이 다닐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드렸어요. 다행히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페루 서민들의 집과 동네를 돌아보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택시 기사 오스카 아저씨가 소개해 준 맛집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에 아저씨께 저녁을 사겠다고 했어요. 근사한 식당으로 데려가려고 했더니 그분이 푸에르토 말도나도 내 최고 맛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저씨를 믿고 갔는데 뒤편으로 트럭이 먼지를 내며 달려가고 동네 개와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몰려드는 길가의 식당이었어요. 주인아주머니가 테이블 근처에서 고기랑 생선을 굽고 있었는데 혼자 춤추고 노래하면서 정말 신나게 요리를 하는 거예요. 그 식당 아주머니께서 제게 ‘우리에게는 땀이 곧 삶이다.’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저 상황에 놓여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은 땀이고, 땀은 곧 내 삶이다. 당신도 열심히 살아라.’ 얘기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
페루는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기 때문에 호텔 룸서비스 메뉴로 산소통이 제공된다. 고산병에 걸렸을 땐 호텔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거나 코카 잎 냄새를 맡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작가는 자신 있게 푸노(Puno) 지역에 갔다가 사경을 헤맬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
“고산병 때문에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워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티티카카 호수가 전에 있던 곳보다 해발고도가 600m 정도 높았는데 차이가 그렇게 클 줄 몰랐어요. 하지만 힘들게 간 걸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티티카카 호수는 사람들이 몇 천 년 전의 역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곳이에요. 이곳에서만 나는 갈대를 엮어서 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사는 인공 섬이기도 하죠. 추운 지역에서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다 보니 사람들의 피부가 파충류처럼 딱딱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얼마 전까지 본인들이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족일 거라고 믿었대요. 그 정도로 순수한 사람들이에요. 잉카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욕심도 없었어요. 매우 즐거웠습니다.”
콘도르, 그리고 아버지
손미나 작가는 4년 전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냈다. 그 후 그녀의 세상은 온통 물음표였다. 인간이라면 응당 부모님을 떠나 보낼 텐데 멀쩡하게 삶을 살아가는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괴로움에 한동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살던 그녀는 문득 역사학자였던 아버지가 생전에 가고 싶어 했던 페루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비한 동물 콘도르를 만났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때 현실과 사후 세계를 연결해주는 독수리 콘도르에 관한 얘기를 들었어요. 지구상에 몇 마리 없는데 그중 다수가 페루에 있다는 말을 듣고 콜카 협곡(Colca Canyon)에 갔습니다. 가는 길도 험하지만 간다고 해도 보기 어려운데 저는 운 좋게도 여러 마리를 봤어요. 그중 한 마리는 다 자라서 은색 털에 매우 컸는데 제 머리 바로 위까지 와서 천천히 있다가 가더라고요. 아버지와 만난 것 같아 이곳도 잊을 수 없어요. 제 책에 있는 QR코드로 들어오시면 콘도르가 나는 모습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진실한 우정, 그레고리
그레고리는 작가가 마추픽추를 갈 때 탔던 버스의 운전사다. 해발 6000m쯤 되는 고산 지대에서 태어난 정통 쿠스코인이자 페루의 단어와 전설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도 손미나 작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마지막 날 상점을 구경하는데 저를 조용히 부르더니 뭔가를 꺼내놓는 거예요. 작은 빨간 천에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어요. 알고 보니 페루 사람들의 신성한 의식인 ‘파고’를 제 아버지를 위해서 준비해 왔더라고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너무 소중했고 감사하다면서 제사를 지내줬어요. 제게 큰 위안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독자들의 질문과 답변
사진작가 레이나 씨와는 처음에 어떻게 만났나요?
알랭 드 보통 작가와 함께 <인생학교>를 진행하기 위해서 취재를 갔을 때 사진작가로 섭외했던 분이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다른 친구에게 급히 부탁했는데 그 친구가 데리고 온 사람이 레이나예요.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저랑 스타일도 비슷하고, 아시아 사람이라 정서적으로도 잘 맞고, 런던에 오래 살아서 영어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어서 제가 아르헨티나 여행을 갈 때 같이 가자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됐고요. 레이나 작가가 대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해서 사진 촬영이 있는 날은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까지 직접 만져줘요. 십 년째 같이 여행을 다녔지만 싸워본 적도 없고요. 훌륭한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삶은 장밋빛이 아닌데 착각하고 살아가다 보니까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삶의 궤적을 운명적으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불행한 존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가치와 꿈은 분명 바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그런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레이나 사진작가와의 여행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아르헨티나 여행에서 레이나 사진작가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 할 수 있는 취재는 다 해서 500~1,000장씩 찍은 사진을 폴더에 종류별로 정리해뒀어요. 한국에 전화해서 대단한 책이 나올 것 같다, 특히 사진이 엄청나다, 고 자랑할 정도였는데 이틀을 남겨두고 몽땅 도둑맞았어요. 카메라와 렌즈는 물론이고 컴퓨터, 새 비디오카메라도 전부 없어졌죠. 사진을 다른 곳에도 저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자책하더라고요. 울고 있는 레이나를 챙겨서 식당으로 가서 앉았는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거예요. 저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사진보단 네가 더 소중하다는 말을 편지에 써서 전해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편지를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살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는 거의 친자매 같은 사이가 됐어요. 결국에는 한국까지 와서 같이 살고 있는데,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도전! 골든벨>을 진행하시면서 인기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작가가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골든벨을 같이 했던 파트너에게 약속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백 명을 위한 프로그램 말고 뒤에서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자. 두 번째는 나는 물살이 있을 때 바다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빛이 날 때 다른 파도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좀 더 일을 잘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가서 공부를 했어요. 스페인에서 공부하던 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줬더니 재미있다면서 책으로 쓸 생각은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나 같은 사람도 책을 쓸 수 있나? 하면서 쓴 게 『스페인, 너는 자유다』였어요. 그 책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서 여행자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낯선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글로 적어 책으로 내는 순간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중남미나 아프리카,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닐 예정입니다.
한편 손미나 작가는 강연을 마치며 출간 예정인 책의 주제가 될 타히티 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기도 했다. 책에는 모레아 섬(Mo’orea)에서 돌고래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일과 비운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에 대한 뒷이야기가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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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손미나 저 | 예담
자연과 삶 본연의 모습이 살아 숨 쉬는 페루,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여행 에세이가 예담에서 출간되었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는 손미나 작가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여행 에세이로, 지리적으로는 여전히 멀지만 방송을 통해 심적으로는 보다 가까워진 페루의 이곳저곳으로 독자들의 손과 발을 잡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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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소통하는 문화 얼리어답터' 예스24 리포터 김소원입니다.
ego9
2016.05.31
안데스산맥의 콘도르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내용에서
작가의 깊은 내면을 볼수가 있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