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스리랑카 커리
‘카레라이스와 김치’ 삼시 세끼도 먹을 수 있는 조합이다. 큰 솥에 가득 끓여놓으면 마음까지 든든하다. 스리랑카는 ‘카레’가 아닌 ‘커리’의 나라다. 진짜 향신료의 나라. 이 나라에선 커리가 김치이고, 된장이고, 고추장이다. 모든 게 커리라서 한 달째 하루 두 끼 이상은 커리를 먹고 있는 우리. 그래서 이번 열여섯 번째 상은 스리랑카 국민 주식 커리 한 상.
글ㆍ사진 윤곱
2016.04.07
작게
크게

모든 음식은 커리로 통한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첫날. 우리의 첫 끼는 ‘라이스 앤 커리’였다. 큰 접시에 밥이 수북이 담겨있고 그 주위에 양파, 죽순, 콩으로 만든 커리들이 놓여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손으로 먹었지만 밥도 흩날리고 반찬에 국물도 많은지라 우리에겐 고난이도였다. 수저로 한 입 떠먹으며 ‘먹을만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리랑카 먹거리 조사를 한 우리는 ‘커리가 주식이고 커리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보고 ‘설마..’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 말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식당은 대부분 ‘라이스앤커리’를 팔고 초국적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도 그 메뉴를 찾아볼 수 있다. 빵집에서 파는 로티와 사모사라는 빵에도 들어있고, 맨빵에도 커리소스를 발라 판다. 이 정도면 ‘모든 음식은 커리로 통한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며칠이 지나자.. ‘이건 너무 한 게 아닌가. 다른 게 먹고 싶다’라는 식욕이 넘실댔다. 그래서 커리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맛도 없어 보이는 볶음밥과 볶음국수를 시켜 먹기도 했다.

 

크기변환_1.jpg

스리랑카에서의 첫 끼. 네곰보 어느 시장 식당에서 라이스앤커리 

 

 

그래 이 맛이야! 나를 깨워준 커리 한 상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Adam’s Peak를  등반할 계획을 세웠다. 불교, 기독교, 힌두교의 성지로 스리랑카인이라면 꼭 방문해야 되는 곳이라고 한다. 새벽 2시부터 올라가야 6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그곳. 등반 전 날 배앓이로 저녁은 안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그나마 깔끔해 보이고 비싼 식당을 제치고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허름한 곳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 지역은 먹을만한 식당도 변변찮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저녁에 도착해 등반을 마치고 아침에 내려와 바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남편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라이스 앤 커리 베지터블’을 시켰다. 주인아저씨는 왜 하나밖에 시키지 않냐고 하면서 나에게 농담으로 ‘뺏어 먹으면 안 돼~’하셨다. 얼마 지나고 귀여운 여인네가 길 건너 민박집에서 큰 쟁반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온다. 작은 그릇마다 담긴 각각의 커리들. 호박, 감자, 깍지콩, 달(콩의 일종)이 커리가 되어 맛깔나게 담겨있었다. 한 입 먹어본 남편은 ‘진짜 맛있다’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저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감자와 호박 커리를 한입씩 맛보았다. 오! 할머니가 텃밭에서 캐와해주시던 그런 반찬 맛이 난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 스리랑카는 마늘, 양파, 생강, 고춧가루 등을 요리에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친근한 맛이 난다. 하지만 난 이미 먹을 수 없는 몸. 아저씨랑 약속도 했으니까. 다음날 등반을 마치고 뻐근한 다리로 어기적 거리며 걸어가 다시 라이스앤커리를 시켰다. 아.. 맛있다. 그리고 이 커리들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크기변환_2.jpg

예상치 못한 곳에서 커리에 눈을 뜨게 해준 커리 한 상. 고마워요! 귀여운 여인네!

 

 

만들어 보자! 향신료 가득 슬로우 커리

 

힐 컨트리의 마지막 도시. 엘라로 왔다. 그나마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이 있다는 이곳. 역시나 쿠킹 레슨도 있다. 타운에 있는 ‘제이드 그린’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쿠킹레슨을 예약했다. 우리의 선생님 수자타 아줌마는 편안한 인상의 모든 일을 천천히, 하지만 정확히 하시는 분이셨다. 총 4개의 커리 만들기를 배웠는데 달(콩), 가지, 호박, 감자를 주재료로 하고 향신료를 넣어 만들었다. 향신료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커리파우더는 코리앤더, 커민, 펜넬, 계피를 갈아 만든 가루로 모든 커리 요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차이파우더는 정향, 육두구, 계피, 카다몬을 갈아 만든 가루이며 익숙한 차이티 향이 난다. 그 밖에 튜머릭 가루, 흑후추 가루, 고춧가루, 흑겨자씨, 커리 잎사귀, 마늘, 양파가 사용된다. 스리랑카의 아침식사에 빠지지 않는 달(콩)커리 만드는 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 달을 깨끗이 씻는다. 씻은 달에 커리파우더, 소금 1스푼. 튜머릭, 흑후추, 고춧가루, 피니그릭을 각각 1/2 스푼을 넣고 작은 계피 조각을 넣어 준비한다.

 

2. 뚝배기를 데우다 기름을 넣고 흑겨자씨를 넣고 살짝 볶는다. 다진 마늘과 양파 1스푼, 커리잎을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그리고 1을 다 넣고 물을 자작하게 넣고 끓인다. 졸여지면 진한 코코넛 밀크를 한 국자 넣고 2분 동안 끓이면 완성

 

우리나라에선 접하기 힘든 향신료들이 많아서 과연 내가 이걸 한국에 돌아가서 만들 수 있을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유럽인들은 아예 향신료를 위해 지구 반바퀴 교역을 마다 않고 식민지배를 하려고도 들었다. 『향신료의 지구사』에는 양념을 향한 열망이 불러온 비극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정향의 가격이 오르는 걸 막으려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의 정향 나무의 수를 제한했고 이를 반대하는 원주민들을 무참히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대체할 용병노예들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했다고 한다. 이 향신료가 뭐라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걸까.

 

아무리 맛있는 커리라고 해도 한 달 가까이 매일 먹으니 나는 질린다. 어느 날 아침 어김없이 왕성하게 로티를 달커리와 함께 흡입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 “커리 지겹지 않나요?”

 

남편: “김치가 지겹나요? 이건 스리랑카식 김치고 된장이에요.”

 

나: “……”

 

맞다. 커리는 이 나라의 김치고 된장이고 고추장이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의 여유를 닮아 만드는 것도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는 슬슬 만들게 되는 슬로우 푸드이다. 며칠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커리를 즐겨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크기변환_3.jpg

직접 만든 커리로 한 상! 많은 양을 만들었는데 다 먹어버렸다. 물론 남편이.

 

 

(부록) 남편의 상: 커리의 공덕

 

안녕하세요. 노란 개나리가 피는 4월은 커리 먹기 좋은 계절입니다. 아시다시피 스리랑카에서는 아침에도 커리, 점심에도 커리, 저녁에도 커리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매끼 라이스앤커리만 먹는 건 아닙니다. 아침에는 주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로티나 호퍼를 가볍게 커리에 찍어 먹습니다. 점심에는 종종 시내 식당에 가서 커리볶음밥인 부리아니를 먹거나 고기, 채소, 로티 반죽을 다져서 볶은 코투 로티를 먹습니다. 간식으론 커리고로케 격인 사모사를 먹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커리를 즐기니 저는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한 끼라도 더 커리를 먹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근 한 달간 커리를 맘껏 먹다 보니 몸도 한결 건강해진 느낌입니다. 강황, 정향, 넛멕 등 온갖 향신료와 함께 자연스레 고기 섭취를 줄이게 된 덕인 것 같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어떤 메뉴를 시켜도 고기가 많이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라이스앤커리와 닭고기나 소고기, 물고기를 곁들일 수 있지만 보통은 작은 조각 하나가 딸려 나올 뿐입니다. 이렇게 시켜서 나오는 고기마저 딱딱하게 굳은 경우가 많아 대부분은 밥과 각종 야채 커리만으로 식사를 하곤 합니다. 부처의 일생을 다룬 『불타 석가모니』에서 부처는 공양으로 받은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힌두교, 불교 등 이 근방의 종교가 절대적으로 육식을 금지했다기 보다 고기가 귀해서 자연스레 육식을 꺼리는 관습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귀한 고기를 챙겨 먹겠다고 애쓰느니 채소와 향신료 위주로 맘 편히 먹기로 한 것 같습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을 떨치고 깨달음에 이른 부처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스리랑카에는 불교도가 가장 많지만,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버스나 골목길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날씨는 덥고, 전기는 밥 먹듯이 끊기고, 낡은 버스가 온 동네를 다 거쳐 출발해도 화낼 일이 없는 건 갖은 향신료와 채소 만으로도 가볍고 든든한 커리 한상 덕인 것 같습니다.

 

크기변환_4.jpg

스리랑카의 다양한 별식들, 커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img_book_bot.jpg

향신료의 지구사프레드 차라 저/강경이 역/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향신료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다른 먹을거리가 어떻게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향신료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시나몬, 클로브, 페퍼, 넛메그, 칠리페퍼, 이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향신료의 이동이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면밀히 추적한다.



[관련 기사]

- Stratford-upon-Avon, UK 영국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 인도네시아 롬복, 중국 마카오, 미국 팜스프링스, 영국 런던 여행
- 섬나라의 섬에는, 일본 시코쿠 여행기
- 왜 당신은 자꾸 술을 찾을까
- 서울 종로구 수표로28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스리랑카 #커리 #카레라이스 #향신료 #하루 한 상
1의 댓글
User Avatar

감귤

2016.04.07

스리랑카의 주식이 커리였군요? 커리하면 주로 인도를 떠올렸는데 다른나라도 주식이었네요.
답글
0
0
Writer Avatar

윤곱

무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