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집] 때로는 읽는 일이 치유다
세월호 참사의 국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죄책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런)거하면 된다. 때론 읽는 일이 치유고 때론 책을 바라보는 일이 진상규명이다. 그것이 공감이고 그것이 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품격이다.
글ㆍ사진 이명수(심리기획자, 치유공간 이웃 대표)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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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캡션_ 승태의 생일 모임(치유공간 이웃).jpg

승태의 생일 모임(출처_ 치유공간 이웃(이웃.kr)

 

난해한 철학서나 기초지식이 필요한 사회과학서가 아닌데도 가이드가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세월호 관련 도서들이 그렇다.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하고 눈물이 차 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엄마 나야』, 『세월호, 그날의 기록』,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금요일에 돌아오렴』,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 『내릴 수 없는 배』. 몇 개만 꼽아봐도 읽기 쉽지 않겠다는 걸 대번에 알겠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치고 세월호 트라우마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신과의사인 아내와 함께 안산으로 이주해서 ‘치유공간 이웃’을 개소했다. 안산 와동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은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리치유 공간이다. 희생학생의 부모들과 밥을 함께 먹고 마사지를 하고 뜨개질을 하고 상담을 하고 눈물 흘리고 텃밭을 가꾸고 서로의 소식을 듣고 여기 없는 아이의 생일모임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대개가 누군가의 엄마인 자원봉사자들은 실질적인 치유자가 된다. 그래서 이웃에선 자원봉사자들을 이웃치유자라 부른다. 심리기획자인 나도 정신과 의사인 아내도 그런 이웃치유자 중 한 사람이다.

 

이웃치유자로서 내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세월호 관련 도서 읽기를 가이드 하는 일이다. 펼치기조차 쉽지 않은 그 책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임무를 자청한다. 예를 들어 『엄마 나야』『세월호, 그날의 기록』

 

『엄마 나야』는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이다. 이웃에서 생일모임을 할 때마다 당대의 시인들이 아이로 빙의하다시피 해서 쓴 시다. 당연히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책에 담겨 있는 34명 아이들 사진과 이름에 눈 맞춘 후 한 편씩 읽다 보면 솜사탕 같았을 웃음과 저마다 달랐을 여드름의 고민이 떠오르면서 아이들이 이 지상에 함께 존재했던 사람으로 생생해 진다. 그러면 잊지 않게 된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 별이 된 아이들과 부모형제들을 위한 기도가 되고 응원이 된다. 읽는 동안 내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경험자들이 많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이 10개월동안 합숙하며 집대성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의 기록이다. 15만 쪽에 이르는 기록물과 3천기가바이트 분량의 음성, 동영상, 사진을 일일이 분석 검토한 결과가 담겨 있다. 세월호 참사의 완전한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진실의 교두보가 될 것만은 확실하다. 무려 700여쪽에 이른다. 소설이라도 읽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어떻게 읽을까. 힘들면 처음엔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서 서가에 꽂아 놓고 그러다 눈에 익으면 책상에 올려놓고 가끔 눈 맞추면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정치인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날쯤엔 어떤 내용인지 목차라도 펼쳐보면 된다. 그러는 동안 그런 마음 포갬이 바람처럼 꽃소식처럼 필요한 곳에 가 닿는다. 현장 치유자로서의 경험상 반드시 그렇다. 그러면 내가 책에 눈 맞추며 켠 작은 촛불이 어느 순간 진실의 횃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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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세월호력(曆)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이 2014년 4월 16일로부터 몇 번째 날인지를 헤아리는 날짜 계산법이다. 2016년 4월 16일은 732일째의 4월 16일이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별이 된 아이들의 부모형제들에겐 날짜 감각이 실제로 그렇다. 계속 그 날의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상처와 고통의 기억이 계속 제자리에서 맴돈다.

 

그런 점에서 『엄마 나야』『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치유와 진실규명이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론 똑같은 책이다. 왜 그럴까.

 

수 백가지로 분류되는 정신과적 질환은 대개가 심리 내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성격이나 기질, 콤플렉스, 이전에 받았던 상처 등 심리내적 요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외부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장애가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는 이별이나 상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그런데 그 이별이나 상실은 우리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거대하고 갑작스럽고 비극적이다. 그에 따른 정서적 반응도 비슷하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느껴질 만큼 고통스럽다. 

 

트라우마는 외부적 요인이 있어서 시작된 상처다. 그래서 트라우마 치유의 첫 번째 단계는 외부 요인을 분명하게 정리해 주는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 일에 책임 있는 이가 누군가를 명확히 밝혀야 다음 단계로 심리적 진도가 나간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심리치유의 첫 번째 단계여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도 그와 한치의 어긋남 없이 똑같다. 그런데 그 첫 번째 단계에서 꽉 막혀 있는 단계라 세월호 트라우마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깊고 넓다. 

 

그런데 그 첫 번째 단계에서 꽉 막혀 있는 상태라 세월호 트라우마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깊고 넓다. 한 사회의 품격을 좌우하는 건 고통을 대하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그 사건의 실체와 상처를 기억해야 할 의무를 가지며 이웃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감이다. 그런 공감과 의무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순환돼야 품격있는 사회다. 제3자의 입장에서 공감과 기억의 의무를 다해도 참사의 생존자와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해도 피해 당사자의 내부로 이미 들어와 있어서 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는, 천했다. 공감은 고사하고 비난, 조롱, 막말로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더했다. 이런 때 한 개별적 존재로서 품위와 자존감을 지키려면 무어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 일 중 하나가 읽는 것이다.

 

생존 학생들과 형제 자매들의 사연이 담긴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고 『세월호, 그날의 기록』, 을 일단 서가에라도 꽂아두는 일. 세월호 참사의 국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죄책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런)거하면 된다. 때론 읽는 일이 치유고 때론 책을 바라보는 일이 진상규명이다. 그것이 공감이고 그것이 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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