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재연에 돌입했다.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등 국내에서도 마니아 팬이 확실한 미타니 코키의 작품인 데다 뮤지컬로 더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코믹하게 뒤집어 지난해 국내 초연 때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미타니 코키의 작품만큼이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아끼는 관객들이라면 이 연극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 들어서기 까지 꽤나 고민했을 것이다. 무대 위의 신사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미타니 코키의 나무랄 데 없는 난도질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 관람 평을 보면 ‘재밌다’ 일색인데, 이 연극이 그렇게 재밌을까? 물론 무대는 미타니 코키 특유의 코믹함과 재치가 더해져 객석에서는 시종일관 웃음꽃이 터진다. 하지만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알아야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다. 무슨 얘기인지 기자의 관람 소감과 객석 곳곳에서 들었던, 또는 나눴을 법한 이야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재밌다! : 역시 미타니 코키네. 지난 연말에 뮤지컬 <오케피> 보고 미타니 코키의 소극장 연극이 무척 그리웠는데, 역시 그의 오밀조밀한 유머감각을 즐기기에는 소극장이 제격이야.
덜 재밌다! : 그렇지, 미타니 코키의 작품은 ‘빵빵’보다 ‘뿅뿅’ 터지니까.
재밌다! : 설정 자체가 벌써 재밌잖아.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신약 개발에 실패한 지킬 박사가 연구 발표회에서 자신의 악한 인격인 하이드를 연기할 무명 배우 빅터를 고용해 리허설을 하다! 사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캐릭터는 물론이고 지킬을 연기하는 배우도 너무 멋있어서 근사하기는 하지만 친근감은 들지 않았는데,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제목부터 좀 ‘저렴한’ 냄새가 나면서 왠지 더 친숙하다니까.
덜 재밌다! : 난 그래서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를 보기까지 고민이 많았어.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인데도 초연을 보지 않았다고. 지난번에 배우 이시훈 씨(극 중 빅터)를 인터뷰할 때도 <지킬 앤 하이드>가 망가지는 걸 볼 수 없어서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야.
재밌다! : 난 뮤지컬 때문에 연극이 더 재밌던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데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도움이 안 되지만, 뮤지컬을 먼저 봤던 사람이라면 연극이 더 재밌을 거야. 원작을 어떻게 비틀었는지, 무대 위 근사한 지킬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 수 있으니까. 특히 지킬이 약을 주입하고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이나 하이드의 자세, 목소리 등은 많은 부분 뮤지컬에서 차용했기 때문에 뮤지컬을 알아야 훨씬 재밌게 볼 수 있겠더라고.
덜 재밌다! : 그게 재밌어? 그래, 재밌긴 재밌지.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문학사에 있어 길이 남을 엄청난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뮤지컬에서 지킬과 하이드가 공존하는 장면은 공연예술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1인 2역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촬영과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대 위에서의 1인 2역은 차원이 다르잖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무대에서 그걸 구현해 내다니. 10여 년 전, 지킬과 하이드가 동시에 한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공연에 완전히 빠졌다고. 그래서 그 모습이 희화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
재밌다! : 달리 생각하면 미타니 코키가 그걸 한 번 더 비튼 거 아닐까? 한 배우가 시공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동시에 두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가능해? 한 인물이 지킬과 하이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는 관객들의 눈에 빤히 보이게 버젓이 칸막이를 두고 두 배우가 지킬과 하이드를 우스꽝스럽게 연기하도록 한 게 아닐까? 심지어 공연을 제작하는 극작가인 미타니 코키가 만들어서 더 인간적이라고.
덜 재밌다! : 그래서 미타니 코키의 다른 작품보다는 그 기발함이나 재미가 덜하다는 거야. 결국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단함을 인정한 것 같다고 할까? 우리는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박사의 약혼녀인 정숙한 이브 댄버스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지킬의 실패한 약을 마시고도 자기 최면에 빠져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하이디로 변신하잖아. 뮤지컬에서 지킬과 하이드를 한 배우가 연기한다면 연극에서는 이브 댄버스와 하이디를 한 배우가 연기해. 그리고 비록 우스꽝스럽게 그려냈지만 하이드를 연기하는 빅터 역시 순식간에 다른 인물로 돌변해야 하지. 뮤지컬과 같은 전율을 느낄 수는 없지만, 배우와 관객이 속고 속아주는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차용한 셈이라고. 물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는 전혀 다른 재미지만 말이야.
재밌다! : 나는 여성판 <지킬 앤 하이드>라는 생각도 들더군. 뮤지컬에서는 지킬의 약혼녀인 엠마와 매춘부 루시가 등장하는데, 정숙과 관능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성향 역시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할 수 있잖아. 그걸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는 이브 댄버스와 하이디로 표현한 거고. 그녀가 극 초반에 복선을 깔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긴장한 나머지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관심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결국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말이야. 미타니 코키는 치밀하게 생각한 거라고.
덜 재밌다! : 그럼, 미타니 코키잖아. 하지만 이 연극은 원작소설을 비틀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없었다면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걸.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재밌을수록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된다고. 그래서 미타니 코키의 다른 연극보다 덜 재밌다는 거야.
재밌다! : 꼭 더 재밌을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이런 제목을 달았나 보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너무 뻔하지만 어쨌든 웃기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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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