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조영주 작가의 장편 소설 『붉은 소파』가 출간됐다. 『붉은 소파』는 살해된 딸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진작가 ‘석주’가 공소시효 소멸 직전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 조영주 작가는 붉은 소파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한 사진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사진 인터뷰집 『붉은 소파』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집필했다. 오래 전부터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작가는 직접 사진을 찍고, 프로 사진작가들을 취재하면서 소설을 썼다.
『붉은 소파』의 표지는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 「상하이」다. 소설 각 장에는 구본창 작가의 사진이 실렸다. 조영주 작가는 “구본창 작가의 ‘태초에’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태초에’는 구본창 작가가 작은 사이즈의 인화지를 암실에서 재봉하여 대형 인화지에 옮긴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범죄 현장을 모자이크 사진으로 찍는다. 조영주 작가는 “40년 동안 사진을 찍은 주인공에게 ‘사진’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는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진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않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소설을 썼던 조영주 작가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필명 윤해환으로 집필한 장편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로 제6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2011년)하면서 등단했다. 2015년에는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이 예스24 e-연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장편소설 『트위터 탐정 설록수』, 『몽유도원기』를 발표했다.
한편 제12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붉은 소파』는 살인과 사진 그리고 비밀을 퍼즐 조각처럼 흩어두고 집중력 있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추리 서사 문법을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했고, 추리 서사로서 끝까지 독자들과 지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영주 작가에게 ‘따로’ 묻다
시상식 이후, 2주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 소감을 묻는다면요?
어제부터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마루야마 겐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서문을 곱씹으며, ‘무진장한 문학의 광맥을 열심히 파는’ 작가가 되겠다고 새삼 결심을 다졌습니다. 안이해지지 않겠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것은 그저 적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주지하며, 계속 적겠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석주의 붉은 소파와의 여정은, 시작은 ‘도피’ 추모, 슬픔의 발로였지만 지금 와서 보는 그저 사진일 따름이었다. 라는 글귀가 인상에 깊게 남았습니다. 이 문장을 쓰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무언가를 적기 직전, 많은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막상 적기 시작하면,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과 제가 생각하는 것은 늘 한 뼘쯤 거리를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건 적는다는 행위의 신성한 이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가 창작되는 순간은 늘 그런 게 아닐까요? 작가인 ‘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눈앞에 적으려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저는 사진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했고, 그게 문장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초고를 반 년 동안 쓰셨다고 밝히셨는데요. 집필하다가 글이 막혔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4장이 끝난 부분, 즉 303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는 부분서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본래는 연쇄살인사건이 끝나면 소설을 끝낼 셈이었는데, 아니 이게 끝나지가 않는 거예요. 이게 뭐지? 왜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안 나지? 뭐지 이건? 하고 의아해서 멍청한 표정으로 원고를 보다가 던져놓고는 그냥 딴 짓을 했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전직 형사 지태종을 좋아합니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지리산에서 장뇌삼을 캐다가 술을 담그는 지태종은 앞으로도 제 소설에 꾸준히 등장할 예정입니다. 특히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는 사건 『흰 바람벽이 있어』는 제가 2004년부터 지리멸렬하게 쓰고 있는 소설인데요, 이 소설에서는 지태종이 마침내 주인공으로 나서게 할 셈입니다. 문제는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다는 것이죠.
소설을 다 읽으면, ‘용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용서’가 있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 또 나왔네요. ‘용서’의 사전적 정의, 혹시 아십니까?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입니다. 꾸짖지 않는다. 벌하지 않고 덮어준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개개인의 마음에 어둠이 내린다고 봅니다. 어둠을 품게 한 상대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행위를 저는, 용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응어리는 결코 없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한 번 인간의 마음에 들어간 어둠은 그리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거든요. 대신 인간은, 그 응어리만큼, 아니 그 응어리가 있는 만큼 행복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제가 소설 속에서 김현아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 미안하단 말 그만 해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실 저 안 괜찮거든요. 매일 거짓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 저 좀 도와줘요. 그냥 이대로 살아갈 수 있게, 모른 척하고 우리, 미안하단 말 하지 마요. 그냥, 이러고 살아남기로 해요.”
(붉은 소파 269쪽)
블로그 이름 ‘꿈꾸는 책들의 변소’는 어떤 뜻으로 정한 이름인가요?
지금은 소설이 나왔으니까 투철한 홍보 정신에 입각하여 닉네임 대신 본명 조영주를 쓰고 있는데요. 본래 닉네임이 ‘특급 변소’입니다. 그래서 일단 변소가 들어갔고, ‘꿈꾸는 책들의’라는 수식어는 제가 아는 책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책들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적고 싶어서 그렇게 적어봤습니다. 마침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무척 감명 깊게 보고 났더니만, 따라 짓고 싶더라고요.
“소설 쓰는 행위를 꿈이라 말하지 말고 ‘목표’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이라고 하셨어요. 이게 참 힘든 일인데요. 어떻게 하면 그냥 쓸 수 있을까요?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쓰는 지옥과 안 쓰는 지옥 중 어떤 게 낫냐고요. 그러면 정답은 아주 쉽게 나옵니다. 당연히 쓰는 지옥이죠.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어떻게든 써지더군요. 누가 뭐라고 하든 뭐가 중요해, 쓰는 지옥을 선택한 이상 자신을 배신할 셈이야? 이를 악물고 달려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최근 재밌다고 평가한 책은 어떤 작품인가요?
사실, 닥치는 대로 봅니다. 마음에 들고, 50쪽을 넘기게 되면 계속 보는 편입니다. 가장 최근 재밌다고 느낀 책(감히 평가는 못하겠고요)은 곽재식 작가님의 작품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중 표제작 중편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입니다. 제목에 혹해서 폈는데 숨도 못 쉬고 웃었습니다. 다 본 후에 “웨딩 코만도’만 떠올리면 계속 미친 듯이 웃게 되는 문제작입니다. 이거, 영화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저 두 번 볼 마음이 있습니다.
14년간 바리스타 일을 하셨습니다. 소설을 쓰는데 이 일이 도움이 됐나요?
상당히 게으른 편이라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씻지도 않고 밥도 잘 안 먹고 밖에 나가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구정이나 추석 같은 연휴에 글을 쓰다 보면 정신을 차려보면 3박 4일이 다 끝나버리는데, 바리스타 일을 하면 적어도 밖에 나가긴 하니까 체력 보충에 좋고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것들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취재를 자연스레 하게 되어서 자료 조사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작가님 블로그에서 ‘이 다른 세상을 아는 게 아깝다는 생각, 누군가와 함께 이런 풍경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 그럴 때면 나는 글을 쓴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떤 풍경을 보고 계신가요?
오늘 문구점에 가서 5천원짜리 칠판을 하나 샀습니다. 색색 분필과 파스텔을 사서 돌아오며, 이 칠판을 갖고 나가서 매일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다 그린 후 사진을 찍고 나면 지워버릴, 그럴 그림을요. 차기작에는 그런 이야길 담을 셈입니다. 어느 순간 사라질 지 모를, 덧없는 환상 같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독자나 리뷰가 있었나요?
가장 반가웠던 독자는 ‘타자치는 스누피’ 님입니다. 이 분 리뷰를 보고는 말 그대로 빵 터졌습니다. 리뷰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붉은 소파의 가장 붉은 무늬”.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세상에나 문학 평론을 해주셨더라고요. 스스로 글을 쓸 때에 좀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붉은 소파』를 읽게 될 독자 분들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희한하게도 저는, 늘 많은 준비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도 정작 글을 쓰게 되면 그 많은 준비를 한 플롯이며 캐릭터를 까먹고 맙니다. “대체 난 뭘 적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사건을 접하고, 추리를 하며 글을 쓰는데요. 이런 과정이 은근 중독성이 있어요. 외람되게도, 저는 읽는 분들께서도 이런 식의 추리를 하시면서 『붉은 소파』를 읽어주시면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을 보고 나서 첫 장으로 돌아가면 그 때부터 사람 미치게 하는 새로운 관점의 추리 게임이 다시 나옵니다. (웃음)
-
붉은 소파조영주 저 | 해냄
이 소설은 15년 전 연쇄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고 방황하는 스타 사진작가가 어느 날 사체 촬영을 제안받는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딸과의 추억이 담긴 붉은 소파를 이용해 불특정 인터뷰이를 촬영하면서 범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은 사진작가만의 감각으로 살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고, 마침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한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iuiu22
201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