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포슬리니아 성지를 순례하다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닙니다. 지역, 시대 그리고 사람의 혼이 묻어 있는 예술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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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가키에몬의 니고스테 꽈리 문양 대접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미천한 출신을 감추고 다이묘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와 찻잔, 다도를 이용했고, 특히나 고아하고 격조 높은 조선 찻사발을 몹시 갖고 싶어 했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다이묘들은 수많은 조선 사기장을 납치하고, 조선 도자기를 약탈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의 도자기 예술을 크게 발달시키는 계기가 된다.

 

『유럽 도자기 여행』3부작에 이은 『일본 도자기 여행』저자 조용준은 <시사저널>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주간동아> 편집장을 지냈다. 기자 시절부터 지금껏 7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테마가 있는 문화 탐구에 중심을 두고 글을 쓴다. '창조적 컬처투어'를 지향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망을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인 저자를 만나 일본 도자기 예술의 이면을 들어보았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시다 ‘내 책’을 쓰기 위해 그만두셨다고 나와있습니다. 쓰고 싶은 책이 무엇이었나요?


기자 시절부터 문화사 관련 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에 아날학파라고 하는 역사학파가 있는데 이들은 일상과 문화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그처럼 거대 사건이나 거시적 관점이 아닌,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생활이나 소비행위의 트렌드가 어떤 문화적 행위로 연결되는지, 그것은 또 어떤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는지 탐구하는 일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쓴 책인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는 바로 그런 관점에 충실한 책입니다. 술집에 걸려 있는 간판(펍 사인)들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 펍은 영국인의 삶과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본 내용이거든요.


도자기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 데요. 제가 처음 주목한 것은 타일이었습니다. 제가 2006년 우즈베키스탄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곳인 사마르칸드라는 도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사마르칸드는 옛 티무르 왕국의 도읍지로서 시내 곳곳에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즐비한데,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거대한 건물들이 모두 타일 외벽과 지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름답다 라는 단순한 감정을 떠나 이들은 왜 건물의 외벽과 지붕을 모조리 타일로 구워 장식했을까, 왜 이토록 힘든 작업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우연히 NHK 방송을 보고 있는데 포르투갈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보니 포르투갈 역마다 모조리 외벽을 타일로 장식하고 있는데, 그 타일이 사마르칸드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아니, 왜 중앙아시아의 타일이 포르투갈에 건너가 있을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보니 타일은 물론 유럽의 도자문화 자체가 동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도자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거지요. 도자기는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모래지옥과 비슷해요.


일본 도자기가 한국에서 건너갔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도자산업은 일본에 비해 초라한 실정입니다. 원인을 꼽자면 무엇이 제일 문제였을까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통째로 우리 도자산업이 일본에 강탈당한 이후 이를 복원할만한 정책과 인프라가 없었던 사실이겠지요. 조선 후기부터 왕실 내부에서도 일본 아리타 자기가 사용되었고,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도자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단기간 고속성장의 폐해인 ‘빨리빨리 문화’와 생활 편의주의 때문에 생활자기 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한 이유도 매우 안타깝지요. 그러나 범국민적으로 도자기를 사랑하는 문화를 촉진하는 정책이 이제껏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이르면 매우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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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바나수미하지카 접시


도공 이삼평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책을 마감한 다음 이삼평이 충남 공주 출신이었다는 설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를 발견하시기도 했는데, 이삼평이 도자 역사에 끼친 영향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게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할 수 있죠. 이삼평 이전에 일본은 높은 온도의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지금부터 400년 전에 비로소 이삼평이 일본 최초의 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고, 이후 일본의 자기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아리타에서 이삼평을 ‘대은인’으로 떠받드는 것은 단순히 도자기 덕택으로 부자가 되어서가 아니라,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자본 축적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도자기 여행 3부작 이후 신작입니다. 유럽 도자기 개괄서 이후 일본 도자기에 관한 책을 낸 까닭은 무엇인가요?


유럽 도자기는 일본 도자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흔히 중국 도자기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1710년 독일 마이슨에서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도자기가 아니라 일본의 아리타, 그 중에서도 가키에몬 양식입니다. 이후 100여년 가까이 내로라 하는 유럽의 도자기 회사들은 가키에몬 양식을 베끼는 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유럽 도자기 다음 순서는 당연히 일본 도자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마침 운이 좋아서 일본 최초의 도자기 탄생 400주년이라는 시기적 요인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엄청난 양의 도판, 지명, 사료 등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내는 과정 중 에피소드를 꼽아 주신다면.


일단 구글(Google)과 아마존(Amazon)에 감사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커넥티드 월드’가 아니었다면, 이런 책이 나오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인터넷 덕에 수십 가지의 언어로 된 지명이나 역사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핀란드 말이나 스웨덴 말로 된 자료를 어떻게 구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야말로 인명이나 지명의 발음조차 확인이 힘들었겠지만, 인터넷은 엄청난 시간적 노력을 요구하긴 해도 어느 정도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수많은 도판은 그야말로 ‘노가다’의 산물입니다. 국내에는 사진 자료가 거의 없기에, 일일이 사진을 모두 제가 찍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진열된 도자기를 카메라로 찍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과 정성을 요구합니다. 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찍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게 가는 박물관마다 몇 시간씩 사진을 찍어대니, 거의 모든 박물관에서 저를 요주의 인물로 찍어서 전담 마크 맨을 붙여 감시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없었던 거죠.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박물관에서는 단 한 컷이라도 찍기 위해 담당자에게 사정하고 빌기도 했지요. 몰래 찍다가 들켜서 박물관 직원 앞에서 저장된 파일을 지운 일도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도자기를 소개하실 예정인가요?


이번에 출간한 『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의 7대 조선 가마』 다음은 당연히 규슈 지역을 벗어난 일본 혼슈와 기타 지역의 도자기를 다루게 됩니다. 그 다음은 대만이나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의 도자기 문화도 한 번쯤 다뤄야 하고, 그 다음이 중국이 될 예정입니다. 그 전에 『유럽 도자기 여행』에서 미처 상세히 소개하지 못한 이탈리아 마욜리카와 프랑스 파이앙스 도자기만을 따로 모아 일종의 번외 편인 『유럽 도자기 여행 : 마욜리카와 파이앙스』를 출간하고 싶은데, 출판사에서 오케이 할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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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자기 여행조용준 저 | 도도
『일본 도자기 여행』시리즈는 낯선 땅에서 도자기를 빚었을 조선 사기장들이 일군 일본 최고의 가마와 그들의 후손들이 이어 나가고 있는 조선 도자기의 전통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일본 도자기 여행: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은 일본 규수 지방에서 이름난 조선 가마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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