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주)대한민국의 주된 특징이라면, (정말 악질기업답게!)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피고용자, 즉 (주)대한민국의 주주가 될 가능성이 없는 임금노예들은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11쪽)
최근 박노자 교수가 출간한 책의 제목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다. “대기업의 대주주나 임원, 고급공무원, 혹은 땅부자 등 고액재산보유자”로 구성된 주주들에게 이윤을 돌려주기 위해 국가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곤한 노동자’들”은 임금노예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 8일 저녁,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출간을 기념하며 독자들과 만난 저자는 “헬조선이라는 말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가장 큰 부분은 단순히 돈의 액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업률이나 평균 임금 수준을 보여주는 통계 지수 때문에 이곳을 지옥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사회의 조직체인 국가를 도저히 믿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말한다.
“국가와 흡사한 구조를 가진 대학이라든가 기업 등 사회의 주요 핵심 단체에 공공적 성격이 별로 없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헬’의 중심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민주의회제 국가라면 다수의 이해관계를 표방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다수를 위해서 하는 일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커다란 기업이라고 생각할 때 기업의 대주주와 임원에 해당되는 이들의 이익을 거의 정확하게 표방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현 정권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두 가지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이석기 의원의 구속, 그리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 받은 일을 꼽았다. “다수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표명한 정당을 없애고, 직업상 다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표명해야 하는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결국은 “대기업이 스스로 사병을 만들어서 하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탄압을 국가가 주문을 받아서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탈조선’ 운운하며 이민밖에는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공공성이 결여된 국가에 대한 실망과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식회사의 유일무이한 존재이유는 배당금입니다. 주주들이 투자하는 이유도 배당금을 받기 위해서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식회사는 국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주 이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도 대주주들이 되는 소수의 대자본과 땅부자, 주식부자 같은 사람들의 사익을 대표하는 조직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부제는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이날의 강연에서도 박노자 교수는 “국가가 공공성이 거의 없고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이지 못하다면 대다수의 불만이 폭발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떻게 해서 불만이 폭발하지 않는가, 라는 과제를 풀려면 한국 국가의 성격을 조금 더 정확하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사회를 관리하는 능력이 대단히 좋습니다. 너무나 행정력이 좋은 국가입니다. 민중을 관리할 뿐만 아니고 어릴 때부터 치밀하게 교육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직접) 하지는 않아도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을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가 잠재적인 경쟁자라면, 같이 연대해서 국가나 자본을 상대하는 게 아니고 개별화해서 상대하게 되죠. 민란을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뭉쳐야 합니다. 개별적으로 혼자 민란을 일으키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학교에서 철저하게 익히는 것은 나는 혼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앞에서 나는 혼자이고, 나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내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국가와 자본 앞에서도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분노가 있어도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분노는 집단화되어 있지 않고 개인화되어 있습니다. 개인화된 분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죠. 나보다 더 약자인 여성을 찾아 죽인다든가 하는 ‘여혐’이나 ‘알코올중독’으로 갈 수도 있고요. 종교라는 엄청난 분출구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는 “민란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분노의 폭발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 이상 수출 주도의 재벌 경제는 발전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존 가능성도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강성 국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흉흉해진 민심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지금과 같은 파행적인 재벌국가 운영이 분노의 폭발을 향해서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는 것.
재벌 살찌우기 위해 죽어가는 노동자, 하루 서너 명씩
강연을 마친 박노자 교수는 팟캐스트 ‘절망 라디오’의 진행자 용혜인 씨와 대담을 나누는 한편, 즉석에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
용혜인 : 1980년대~90년대 초반에는 경찰이나 공안 세력의 탄압이 더 심각했지만 거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있었죠. 지금은 그때보다 시민단체들의 힘이 축소됐다고 하는데, 이유가 뭘까요?
박노자 :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기술적인 차이점은 컴퓨터의 출현입니다. 컴퓨터의 힘이 국가의 개입력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생층이나 노동계급이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있었는데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을 분리시키고, 파편화시키고, 계층화시키는 데 기록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지도자들은 파편화 당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이간질 시켰어요. 보수 신문들도 상당한 역할을 했죠. 그들이 잘 사용하는 전략 중에 하나가 ‘노-노 갈등’인데요. 노동자 고용의 여러 형태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계속 싸우게 만들고, 고용 형태가 나은 사람들이 고용 형태가 안 좋은 사람들을 이용하게 만든 것이죠.
독자 질문) 책을 읽어 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거로 정권을 바꾼다고 해서 국가가 변하지는 않을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너무 희망이 없는 것 아닐까요.
박노자 :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때 ‘나는 원하지 않지만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선거는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만, 문제는 ‘밑으로부터의 압박의 수준’입니다. 밑으로부터의 압박이라는 게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를 떠나서, 밑으로부터의 압박은 전체를 조금씩 바꿉니다. 예를 들면,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우리가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정책들이 수립됐습니다. 남북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이 구체화됐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울 시내에서는 주말이면 무조건 데모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정치인이든 보편적인 복지를 약간이라도 만들 수밖에 없는 사건이 조성된 것입니다. 그만큼 밑으로부터의 압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자 질문)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할 때, 지금 헬조선이 처한 상황은 어느 정도로 열악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박노자 : 사회라는 게 여러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화시켜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지수들을 전제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의 임금은 제3세계와 제1세계가 공존하는 대단히 재밌는 사회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으로는 세계노동기구의 분리에 따라서 대한민국은 5급에 속하고요. 1급에서 5급까지 있는데, 5급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노동자는 안심하고 노조활동을 할 수가 없고, 쟁의할 수가 없고, 노조는 고질적인 탄압을 당하는, 가장 불량한 노동권 상태로 분류되어 있는 겁니다. 보편적 복지 수준으로 보면, 총국민생산에서의 복지 관련 공공 부문 비용의 비율을 볼 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입니다. 산재 또는 산재사망 통계를 보면 터키, 멕시코, 페루와 비슷한 수준인데요. 현재로서는 1년간 노동자 10만 명 당 산재사망 건수는 1700정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재벌들을 살찌우기 위해서는 하루에 4~5명의 노동자들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대부분 보도되지 않거나 단신 기사로 다뤄질 뿐이죠. 그리고 대한민국 주요 재벌들의 영업이익은 핵심 재벌보다 더 높습니다.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의 영업이익과 배당금은 세계 주요 재벌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인 것입니다. 일반국민소득에 비례해서 등록금을 보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등록금을 학생들한테 갈취하고 있죠. 액수 자체는 더 쌀 수도 있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비례해서 보면 가장 비싼 수준입니다.
독자 질문) 기본 소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노자 :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가능합니다. 그 정도의 과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조직적 행정적으로도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유층의 저항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겁니다. 그런 저항을 꺾고 한국 민중이 기본 소득제 도입을 쟁취할 수 있다면 큰 성과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본 소득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일면으로는 민중이 자본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꿈을 팔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면, 내 꿈을 팔 때 교섭을 조금 더 잘할 수 있겠죠. 조건이 아주 나쁜 자본가에게 나를 팔지 않을 수도 있고요. 나를 팔 때 교섭력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대편(자본가)에게도 무기일 수 있다는 것이죠. 기본 소득이 도입되면 내수 진작 정책으로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더 많이 살 테니까 이익이 되는 것이죠. 기본 소득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보수 쪽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게, 내수 진작 정책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혜인 : 저도 기본 소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주는 소득이 또 다시 자본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아서 고민이 됩니다. 소득을 주는 동시에 지출 자체를 줄여나가는 정책들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자 질문) 전 세계적으로 부의 재분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분배보다는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보수 언론이 분배를 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그런 걸까요? 교수님께서는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저변에 깔려 있는 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노조 조직률입니다.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노동 세력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고, 노동 세력이 차지하는 몫이 크면 보수 언론마저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 기본이 되는 수치는 국회의원 중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와 사민주의보다 왼쪽에 있는 의원들의 비율입니다. 대부분의 서구사회는 사민주의와 그 왼쪽에 있는 사람들을 합하면 의회의 절반 정도가 됩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 비율을 보면 2~3% 정도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불평등이나 분배 문제에 대한 담론의 부재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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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박노자 저 | 한겨레출판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근본적인 성찰을 이어온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의 신간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바로 ‘헬조선’에 대한 분석이다. 헬조선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iuiu22
201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