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소설의 밤’이 지난 8월 26일 금요일 저녁 여의도KBS아트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 소설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선정된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 『종의 기원』을 토대로 한 연극을 초연하는 자리이자, 복도훈 문학평론가와 함께 심도 있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추첨을 통해 자리를 함께한 300여 명의 독자들은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연극의 세계에 빠져들어 작품을 감상했다.
행사 전 기자 간담회에서 정유정 작가는 “소설과 달리 영화나 연극은 여러 군데 방점을 찍고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점을 핵심으로 가져갔는지 감독과 연출가의 선택이 기대”된다며 행사를 앞둔 소감을 전했다. 이번 『종의 기원』도 걱정과 다르게 많은 독자가 사랑해 주어서 감사하고 힘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극 <종의 기원>은 연출가 장용철의 손으로 재탄생했다. 주인공인 유진 역은 연극 <하녀들>, <어둠 속에서> 등에서 열연한 이재원 배우와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에 출연한 윤관우 배우가 맡았다. 유진의 어머니인 지원역에는 김숙인 배우가, 해진 역에는 이재진 배우가 함께했다. 정유정 작가가 직접 낭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무대는 적절한 시청각 효과와 더불어 배우들이 뿜는 에너지로 가득 찼다.
『종의 기원』 주인공, 유진을 파헤치다
열띤 박수 이후 복도훈 문학평론가와 정유정 작가가 나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 순서가 있었다.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정유정 작가의 너스레에 독자들은 모두 웃음으로 답했다. 제일 먼저 나온 주제이자 ‘작가와의 만남’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의 기원』 주인공 ‘한유진’이었다.
복도훈 폭염이었던 날씨가 그나마 조금 누그러들어서 많은 분이 오셨습니다. 최근 재난 소설이나 재난 영화 등이 많이 나오는데, 정유정 작가는 이런 면에서 드물게 탐구 의식을 가졌다고 할까요, 극단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인간의 심연 같은 작가들이 함부로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의 기원’은 다윈의 유명한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먼저 제목을 왜 이렇게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유정 예전에 어떤 학자가 호모 사피엔스 다음 단계는 호모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통이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면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인간이 많아진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어요. 사이코패스는 특별한 악인이지만, 모두가 이 악인의 부분을 한 조각씩 가지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제목을 ‘악의 기원’으로 생각하다가 너무 직선적이고 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종의 기원’이라고 정했습니다. 다윈 선생님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 놓고 끝까지 제목이 변하지 않은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복도훈 정유정 작가님 자체가 한국 문학에서 일종의 돌연변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도 그렇지만, 유진이라는 인물은 그냥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7년의 밤』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버지나, 『28』의 박동해 등 여러 유전적인 요소를 거쳐 『종의 기원』에서 만개를 한 느낌이었는데요. 마치 네안데르탈인이 물러가고 크로마뇽인이 나온 것처럼, 인간 이후 어떤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유진은 포식자이고 프레데터인데, 희생양 같은 면모도 있습니다. 도대체 유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싶습니다.
정유정 한 마디로 압축하면 이 소설은 사이코패스가 세상을 향해 펼치는 자기변론서예요. 독자분들이 연민을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느껴지지 않으면 제 목적은 실패한 거겠죠. 두 번째 볼 때야 비로소 이 아이가 말하는 정당화와 거짓말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복도훈 읽으면서 니체의 ‘당신이 당신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유진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독자들이 살인자와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진이 거짓말하고 있는 거라고 봐도 되겠죠?
정유정 넓은 의미에서 자기 합리화가 거짓말에 포함된다면 모두 거짓이라고 봐야 하는 거겠죠. 유진이 소설 속에서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라고 말하는데,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속이는 동시에 독자들을 속이는 상황인 거죠.
복도훈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저지르는 걸 보면서 소름끼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정의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유정 인간이 선과 악을 다 가지고 있거든요. 평상시에는 선에 가깝게 서 있다가 어느 날 어떤 일로 인해 악의 진영에 서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독자 여러분이 소설을 읽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해요. 유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 그럴 수도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두려움이요. 선생님은 두렵지 않으세요?
복도훈 저도 보고 싶지 않고 부인하고 싶죠. 소설에서 유진이 남성이고 여성들이 희생양이잖아요. 물론 이복형제 해진도 살해하지만 상징적으로 해진은 유진의 분신 같은 존재기 때문에 일종의 자기 살해라고 할 수 있죠. 자기에게 남아있는 최소한의 선도 없애는 게 유진이라고 한다면 동시에 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유진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할수록 오싹해지죠.
정유정 성격 나름인 것 같아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랩터 박사를 보면서 동화된 나머지 제가 사람을 먹는 병에 걸린다면 랩터 박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한유진 같은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두려워하세요? (웃음)
복도훈 무섭습니다. (웃음) 소설 읽으면서 작가님이 고생을 많이 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28』이 나오고 나서 다음 소설은 2년 후에 나올 거라고 하셨는데 3년 만에 나왔잖아요. 1년 사이에 유진을 만드는데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훈련이나 연습이 있었나요?
정유정 일단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사이코패스를 그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쓰면서 깨달았어요. 유진이는 보통 사람들이 취하는 도덕적 기준이 다 다른 거예요. 친구한테 이런 행동을 하면 상처받을 거라는 감정이 친구에게 못된 짓 하는 걸 막아주는데, 사이코패스는 이런 도덕적 기준이 작용하지 않아요. 어떤 사항에 대해서 가장 간단한 해결법을 실용적으로 판단해요.
예전 같으면 주인공이 머리 뚜껑이 열려서 아내를 마구 때리는 장면을 쓰면 저도 주인공이 되어서 미친듯이 쓰는 과정과 시간이 있거든요. 작가는 그럴 때 희열을 느껴요. 그렇지만 유진이의 시각으로 쓰려면 하나씩 돌담을 짚고 가듯이 더듬어 가면서 써야 했기 때문에 그런 광기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탈고하면서 유진이한테 한 마디 했어요. ‘너 같은 놈 한 번만 만나면 내 작가 인생 종치겠다’고요.
도덕은 가변적인 것
복도훈 소설에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라는 말도 나오잖아요. 도덕률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말로 들렸어요.
정유정 네, 도덕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녀사냥을 하고 화형에 처해 죽이는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허용되지 않잖아요.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관은 상대적인 것이고, 유진 입장에서는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펼쳐 보이기 위한 것이거든요. 도덕은 만들어질 수 있는 그림이라는 거죠.
복도훈 유진이 법을 공부하는 이유는 법을 조롱하기 위한 거였군요. 유진의 행동을 자세히 보면 형용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굉장히 속도감 있고 행동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특히 주인공 유진이 프레데터로서 사냥하는 걸 보면 오감이 열렸다는 느낌이에요. 크로마뇽인이 사냥할 때 후각과 청각이 민감하게 발달했다는 것처럼, 사냥감을 사냥할 때 감각이 높아지는 걸 염두에 두고 묘사하신 건가요?
정유정 통계적으로 사이코패스가 오감이 발달했다고 해요. 심지어 육감도 일반 사람보다 뛰어나고, 대체적으로 머리가 좋죠. 외모를 잘 묘사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특별히 유진을 상상할 수 있을 만한 묘사를 많이 했어요. 예뻐 보이고 유약해 보이는 남자아이의 뒷면에서 나오는 사악함이 더 무섭고 긴장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이면에는 반드시 무언가 있다는 걸 드러내보이고 싶어서 유진이를 감각이 뛰어난 존재인 동시에 예쁜 청년으로 그렸어요.
복도훈 인간이지만 특이한 돌연변이로 설정하는 방식에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근원적인 패인을 엮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멀찌감치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느낌인데, 왜 그러신지 기원을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정유정 인간을 세상에 중심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우연히 그 생명체가 최고의 포식자로 지구를 지배해 번성한 거라고 보거든요. 이 종이 지구에 대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바로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이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 소설마다 사랑과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괴롭습니다. 『28』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굉장히 부르짖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돌만 던지는 상황이 됐어요. (웃음)
복도훈 그러고 보면 선생님 소설에는 연애하는 장면이 별로 없습니다.
정유정 아니에요, 연애하는 장면 있어요. 유진이도 짧게 연애하는 장면 나오고, 『28』에서도 제형과 윤조가 비상계단에서 사랑을 나눠요.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사랑을 나누는 거였어?’ 하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도 그런 반응이 나올까 봐 처음에 그 장면을 ‘25금’ 정도로 썼어요. 그랬더니 후배가 초고를 보고 야설을 썼냐고 그러더라고요. ‘아, 나는 로맨스에는 재능이 없구나’ 했죠. 작가라고 모든 걸 다 잘 쓸 수는 없거든요. 제 인생 소망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오래 기억될 만한 연애 소설을 쓰는 겁니다. (웃음)
복도훈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에르네스트 만델이라는 비평가가 말하기를 ‘범죄소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범죄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신도시잖아요. 외지고, 버스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이 희생자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죠.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 자체가 범죄를 배양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배경 설정이 흥미로웠고요. 또 하나가 소설에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 대신 그 역할을 무시무시한 어머니가 맡았어요. 철저하게 이기적인 유진을 교육하는 어머니와 이모에서 우리 시대의 가족이 뭉개져 가는 걸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정유정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유진이는 자기가 희생양처럼 보이게 진술을 합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유진이가 가해자고 연쇄살인범이라는 거예요. 심리학 정설에서는 인간을 빈 백지로 여기지만 정신과 선생님과 얘기를 해 보니 사이코패스는 2%에서 3%의 확률로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일종의 돌연변이로 보는 것 같아요.
백지 같은 사람들, 천사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천사 같지만 자기 먹을 거 다 뺏기고 양보하면서 생존 능력이 없어요. 착한 사람만 있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망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다른 편에는 새까만 색을 가진 사이코패스가 있어요. 그 가운데 회색 인간인 우리가 살고 있어요. 어느 순간 검은 색이 눈을 뜨고 밖으로 튀어나오면 사회적인 통제를 받고 감옥에 가죠. 하지만 우리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고, 마음 속에 온갖 사악한 일들이 일어나요. 사이코패스가 악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는 악의 편린을 사이코패스가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표본으로 내세워서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어요.
복도훈 유진은 소설 마지막에서 탈출해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작품을 읽어보면 주인공이 앞으로 또 어떤 식의 관계를 펼쳐 보일까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하는데요. 혹시 후속편을 구상하고 계신가요?
정유정 사건보다는 우리의 삶 밖에서 휘몰아쳐 들어오는 운명적인 힘을 맞닥뜨린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운명을 통제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데, 그 힘에 맞닥뜨린 사람이 운명의 폭력성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난파당할 것인가, 혹은 위에 올라탈 것인가에 관심이 있어요. 인생에서 최대한 압력이 가해졌을 때 나오는 선택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주거든요. 해진이를 죽임으로써 완벽한 악인으로 태어나는 유진이를 보여주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악인의 영웅기나 활약기는 아직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복도훈 한국의 한니발 렉터를 기대하기 때문에 욕심을 냈지만, 독자분들도 궁금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한테 어떻게든 압박을 넣어서 유진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유정 작가님, 궁금해요
‘2016 소설의 밤’ 행사에는 특별히 밴드 ‘모멘테일’이 나와 축하 공연을 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밴드 자작곡 「메아리」를 부른 ‘모멘테일’은 정유정 작가에게 유진이라는 인물을 그리고 어떻게 심적으로 추슬렀는지 평소에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며 2부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은 행사 전 정유정 작가에게 궁금했던 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다. 2부는 그중 몇 개를 추려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었다.
복도훈 첫 번째 질문입니다. ‘스토리를 구상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구하시나요?’
정유정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소설을 쓴다기보다, 세상이 변화하는 징후를 읽으려고 애를 쓰면서 항상 레이더를 켜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봤을 때 제가 욕망을 느껴야 해요. 예를 들자면 길을 가다 굉장히 멋진 남자를 만나 한눈에 반하면 잠을 자는데 천장에서 그 사람 얼굴이 왔다 갔다 하잖아요. 당구를 배우면 공이 왔다 갔다 하고, 수영을 배워도 천장에 레일이 생겨서 옆 사람과 경주하거든요. 그런 정도로 마음을 끄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두 번째 조건을 따지죠.
복도훈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입니다. ‘작가님께 영감을 주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정유정 소설을 쓰기 위해 시동을 걸어주는 건 있어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요. 한 세벽 세 시쯤 일어나는데 자리에 앉아서 하는 게 음악을 듣는 거예요. 좋아하는 음악이 메탈이에요. 헤비메탈도 아니고 데스메탈, 고딕 메탈, 심포니 메탈 이런 걸 좋아해서 꼭두새벽부터 듣고 있으면 정신이 번쩍 나요. 『28』 쓸 때는 김경호 음악을 내내 들었어요. 소설마다 테마 음악이 있는 것 같아요.
복도훈 저도 센 글을 쓸 때는 하드코어한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특히 정유정 소설론 같은 글들이요. 다음 질문은 작품에 대한 것인데요. ‘작품 속에 악인을 주로 등장시키시는데, 평소에 사람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유정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한번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해 소설을 못 쓰게 될까 봐 저를 가둬놓는 습관이 있어요. 소설에서 보여주는 잔인하고 치졸한 부분도 인간이고 그걸 구원하고 극복하는 존재도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희망은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복도훈 질문이 다 재밌습니다. 작가님도 본인 안에 있는 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분이 있습니다.
정유정 항상 느끼는 게, 저도 치사한 성격이 있어요. 누구에게 화가 나면 굉장히 오랫동안 그 사람에게 꽁해 있는 게 있어요. 상상 속에서는 별짓이 다 이루어지죠. 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 가면, 정확히는 경찰이 없는 곳에 가면 제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할지는, 제가 뭐라고 말하기가 그러네요.
복도훈 악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치졸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중복된 질문이긴 하지만, 즐겨듣는 음악을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메탈 말고 추가로 즐겨 듣는 음악이 있나요?
정유정 매우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리키 마틴의 음악을 듣습니다. (웃음) 헤드폰을 끼고 일곱 곡 정도 연속으로 온 집안을 헤집으면서 춤을 추고 돌아다녀요. 그러면 기분이 풀려요.
복도훈 다음으로… 형이상학적인 질문인데요. ‘작가님은 악이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악은 교화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라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정유정 악은 본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하고, 악이 교화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가능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코패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교화할 수 없다고 해요.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40살이 넘어가면 사이코패스도 악한 면이 수그러든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이코패스가 40살 넘어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해요. 경찰한테 잡혀서 죽거나, 희생양으로 삼은 사람을 죽이려다 죽는다거나. 여자하고 어린아이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사이코패스가 힘을 발휘했을 때 저항하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이죠.
복도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두 번째 소설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공격하는 사이코패스야말로 초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의 특이한 종이라기보다 오히려 나약하고 치졸한 면이 나온 인간인 거죠.
정유정 그렇죠, 약한 사람한테 강하고 강한 사람한테 약한 사람이 있거든요. 저도 복싱할 때 저보다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올라오면 바로 수건 던지고 내려오거든요. 강자에게는 바로 꼬리를 내리죠.
복도훈 인간 본성의 문제기도 하지만 지금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여기쯤에서 생략하고 질문을 하나 더 골라보겠습니다. 이 질문은 작가님이 직접 읽으시면 어떨까요?
정유정 ‘작가님, 정신과 의사 친구 있나요?’(웃음) 정신과 의사선생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친구는 없어요. 제 소설은 항상 의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 많아요. 제가 간호사였던 건 알고 계시죠? 간호사는 의학적 지식에 접근하기 용이하고 그런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는데, 그래도 맞게 썼는지 의학적 감수를 받기 위해서 의사 선생님이 필요해요.
2부에서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지만 독자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푸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은 사인회로 이어졌다. 사인을 받으러 늘어선 긴 줄과 함께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