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샤르트르의 「말」을 읽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그가 말한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가 쓰는 것이라고. 글을 쓸 때 자신의 살아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샤르트르의 고백에 힘입어 한동안 살아있음을 드러내기로 마음먹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누가 쓰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썼던 시절, 비로소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졸업 즈음 대학 생활 4년 동안 난 도대체 뭘 했을까 자문했을 때, 그 덕분에 만족스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4년 동안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걸 배웠다고, 그 정도면 충분히 대학 생활을 잘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 낼 수 있습니다.” - 마루야마 겐지
『글쓰기의 최전선』을 통해 `삶을 옹호하는 글쓰기`를 말했던 은유는 스스로를 `문장수집가`라고 부른다. 새로운 책 『쓰기의 말들』 에는 문장수집가인 그가 한 땀 한 땀 고른 문장이 담겨 있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바란다는 바람으로 골랐다는 104개의 문장, 그리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의 짧은 이야기. 어떤 페이지를 펼쳐서 읽더라도 큰 울림을 주는 문장과 쓰면서 살아가는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두는 것이라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으로 가득하다.
“나는 씁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안심합니다.” - 롤랑 바르트
대학을 졸업한 지도 11년이 지났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지겨울 정도로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채 그저 버티며 살아가는 지금, 『쓰기의 말들』 덕분에 다시금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창작이 곧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때로는 창작이 삶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스티븐 킹) 글을 쓰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라고 했다.(김영하)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삶을 쓰기로 결심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삶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마음 속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고 드러내는 내밀한 글 말이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더 이상 삶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쓰기의 말들』 은 내 마음 속 꺼져 있던 촛불에 다시 불을 지핀다. 좀비처럼 살아가는 삶에 제대로 살아가고픈 욕망의 불을 지폈다고 할까. 글쓰기는 어떠한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소로의 말을 기억하며, 오늘도 정직하게 펜을 들어본다. 그 시작은 역시 비록 매달 <채널예스> 리뷰를 쓰는 것.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라 했다.(테드 쿠저) 다음 달에는 꼭 원고 마감 시한을 지켜서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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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은유 저 | 유유
쓰기를 목숨처럼 여긴 저자가 그간 자신이 쓸 때 등을 밀어 주었던 작가들이 쓰기에 관해 한 길고 짧은 말들을 뽑아, 이 쓰기의 말들로 자신과 쓰기의 삶을 돌아 본다. 이 말들은 글 은유를 만든 쓰기의 말들이고,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저자가 ‘꼭 해야 할’ 말이 되지 않았을까.
김도훈(문학 MD)
고성방가를 즐기는 딴따라 인생.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민재씨
201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