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 SNS만 하지 않아요
<원더랜드>로 우리는 이소라 그리고 김윤아에 버금가는 새로운 여성 자아를 얻었다.
글ㆍ사진 이즘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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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의 SNS는 여느 스타들의 사적 공간과 다르다. ‘호란이 아프면 병자호란’이라는 자기소개부터 범상치 않은데 글의 포스팅 주기는 스마트폰 중독자의 그것을 떠올릴 정도로 짧고 그 내용들마저 오타쿠스러운 개인 취향 이야기부터 일상생활의 소소한 일화들은 물론 뜬금없는 탕수육 부먹 찍먹 논쟁까지 아우른다. 호란의 SNS는 말 그대로 소셜 네트워킹에 주목하여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스타와 대중의 관계를 친근한 언니와의 친목으로 낮춘다. 이 작위적이지 않은 공간은 그저 ‘편하고 재미있는 유명인’ 이미지 생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매스컴 출연을 하더라도 표현하기 어려운 호란이라는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자아가 인터넷 공간에는 명확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더랜드>는 그 세계를 음악 속에 비춰내기에 이른다.

 

사실 시작은 미약하였다. 올해 6월부터 호란은 솔로 앨범의 수록곡들을 발표하고 있었고 <원더랜드>는 그 몇 되지 않는 곡들의 작은 모임일 뿐이다. 보사노바 사운드에 긴장을 넣지 않아 편안한 가창을 얹은 「참치마요」는 호란에게 예상할 수 있는 클리셰들의 연장이고 「다이빙」의 빈티지한 접근은 다소 의외이지만 역시 고만고만한 시도이다. 이는 원래 호란이란 가수 자체가 파격과 참신보다는 안정감이나 세련된 이미지로 어필해왔던 탓도 크다. 대중은 호란에게서 (더 나아가 클래지콰이에게서) 거창함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일견 단순한 곡들이 생명력을 얻는 것은 의외로 가사다. 실제로 호란은 항상 솔로 작품에서 스스로의 가사를 고집해왔다. 그 결과, 전작 <괜찮은 여자>부터 눈에 띄는 점은 호란이 (아마 자기자신일수도 있을) 작중 화자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참치마요」의 “그대 나를 참지 마요/도망가지 말아요”나 「다이빙」의 “그대 멋지게 날아요/뛰고 난 다음엔 돌아갈 수 없어요”와 같은 가사는 상대와 나 혹은 남과 여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 그로 인해 상대에게 권유나 설득을 하는 화자의 발화이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괜찮은 여자> 수록곡인 「댄싱쓰루」 등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화자의 젠더나 배경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노래의 작자도 화자도 호란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연작소설처럼 호란이 자기 자신을 “마리”와 “앨리스”에 이입하는 순간 <원더랜드>에는 꽃이 핀다. “마리”는 유년기의 모습이라면 “앨리스”는 현재의 대입(代入)이다. 유년기의 상처를 노래 「마리」가 상징한다면 「마리와 나」는 과거의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현재의 모습이며 「바이바이 원더랜드」는 그러한 상처와의 작별이다. 이 평범한 서사가 힘을 얻는 이유는 “마리”와 “앨리스”가 호란 스스로의 성찰과 고백으로 탄생한 자아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문을 닫기 위해 탄생한 듯한 「바이바이 원더랜드」의 다채로운 사운드 감상은 덤.

 

<원더랜드>가 호란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가사의 미를 제외하면 음악 자체는 그저 심심하게 들리고 호란의 보컬은 매력적이지만 가창력에 있어서도 특색에 있어서도 두드러지지 않는 안이함 또한 상존한다. 점차 들려오는 클래지콰이의 신보 소식도 이 음반이 빨리 잊히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원더랜드>의 연극 한 판은 분명 유니크한 강점을 가지고 있고 이처럼 호란을 잘 설명하는 작품 또한 없다. 최근 호란은 이혼이라는 안타까운 개인사를 겪었다. 그럼에도 호란의 SNS는 여전히 성업 중이고, 우리는 그가 쉽게 의기소침하거나 기죽지 않을 것임을 안다. <원더랜드>로 우리는 이소라 그리고 김윤아에 버금가는 새로운 여성 자아를 얻었다.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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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