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잘 부탁 드려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글보다는 사진을 더 깊이 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 보다 멋지게 아름답게 찍히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수식어가 긴 주어가 답답한 것처럼 실물과 판이하게 다른 사진을 보면,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는 포토샵을 부탁하는 인터뷰이에게 “당신이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저 멋있게 나오면 좋은가요?”라고 반문한다. 그 사람의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일을 사진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권혁재의 비하인드』는 23년간 사진기자로 일하며 만났던 인터뷰이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다. 배우 김혜자, 소설가 김훈, 고 신영복 선생 같은 명사들의 사진도 있지만 조금은 덜 알려진 다큐사진가 권철, 컬처디자이너 강주혜, 양떼목장 전영대 대표의 이야기도 실었다.
그는 <중앙일보>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를 연재하면서 후배들로부터 “선배, 반칙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인터뷰 기사보다 사진이 더 화제가 되면서 그는 질투의 대상이 됐다. 흥미로운 건,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고 싶은 사진기자도 그라는 사실이다. 권혁재 기자는 책을 낸 일도, 인터뷰를 하는 일도 마냥 어색한 모양이었다. 투박하면서 섬세한 사진은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눈과 귀가 무척 밝은 기자였다.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일
책을 낼 생각이 없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집을 내려면 사진이 찍힌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허락을 구해야 하잖아요. 그럴 자신이 없었어요. 신문을 위해서 인터뷰를 해주고 사진을 찍어준 사람들인데, 책은 제 개인 목적에 의한 거니까요. 허락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책을 못 쓴다고 했는데 출판사 대표님이 “당신은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어라. 허락은 우리가 받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승낙했는데 막상 책을 내려고 보니까 예의가 아니더라고요. 제가가 뭐라고 출판사를 시켜서 허락을 받나 싶어 일일이 제가 다 연락을 드렸죠.
실물 책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한 번 훑어보고 제대로 읽진 못했어요. 부담스러워서 못 읽겠더라고요. 오보가 하나 있어요. 사진기자 생활을 한지 올해로 23년차인데, 보도자료에는 24년차로 나왔어요. 미리 챙겼어야 했는데 꼼꼼히 살피질 못했어요.
이렇게 글이 많은 사진집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확실히 모르겠지만 주변 분들 말로는 처음이라고 해요.
대한민국의 웬만한 명사들은 다 찍으셨는데 유명인만 싣진 않았어요. 책에 담을 인물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메시지가 뚜렷한 사람을 골랐어요. 대부분 편집자 분이 제안해 주셨는데, 장사익 선생은 꼭 넣고 싶어서 제가 추천했어요. 워낙 그분 삶을 존경하기도 하고요. 하여간 기가 막힌 사람이에요. 반면 젊은 연예인은 가능한 한 뺐습니다. 흥미로운 인물도 많았지만 메시지를 담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사진이 가장 처음에 소개됐어요.
편집자에게 정말 놀랐어요. 가장 처음에 넣은 사진이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올해 6월 ‘우리 들꽃 포토 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최재천 원장이 무릎을 꿇고 초등학생 수상자에게 시상하는 사진이었어요. 편집자가 제 마음을 이해한 거죠.
많이 화제가 됐던 사진이었죠?
눈길을 사로잡았죠. 사연이 궁금해서 최재천 원장을 만나기도 했고요. 이 사진은 생물학적인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의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80회 이상의 사진 뒷이야기 연재 중 가장 많은 메일을 받은 칼럼이기도 했어요. 그냥 눈물이 났다는 독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아마도 최 원장의 메시지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겠죠. 기자로 사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 메일의 주인공에게 감사해요.
사진_ 국립생태원 제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는 신문사 후배의 제안으로 시작한 칼럼이라고요.
2년 전이에요. <중앙일보> 온라인 문화면을 만들 계획이라며 사진에 얽힌 뒷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했어요. 너무 기특하잖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이 좋아 돕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한 열 번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두 번째까지는 정말 잘 써지더니 세 번째부터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공포였어요. 꾸역꾸역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다행히 이유를 알고 찍은 사진이라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나중에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인터뷰 기사보다 뒷담화가 더 반응이 있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제게 노골적으로 “이건 반칙”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대개 사진기자들은 인물을 멋있게 찍는데 초점을 둡니다. 그런데 기자님은 인터뷰를 끝까지 듣고 난 후 사진을 찍으신다고요.
사실 취재기자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인터뷰할 때 사진기자가 옆에서 계속 듣고 있으면요. 그래도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려면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이면, 50분은 인터뷰를 듣는데 사용하고 10분 동안 사진을 찍어요. 예전에 철없을 때는 30분씩 나눠서 하기도 했어요. 사진기자도 취재기자와 동등해야 한다고, 그게 자존심인줄 알았죠. (웃음) 다행히 철들고 정신을 차린 다음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은 인터뷰에 가장 적합한 사진을 찍는 일이니까요. 슬픈 이야기를 했는데 웃고 있는 사진이 나가면 안 되잖아요.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게 제 몫이죠.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진이 나오면, 고마운 부담감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후배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기사에 얹히고 나면 완성도가 높아지니까요. 결국 같이 만드는 거죠. 책을 내면서 후배들이 격려를 참 많이 해줬어요. 응원도 해줬고. 참 고맙죠.
그런데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책에 적지 않으셨어요.
이름 많이 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시상식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게 싫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도 종종 ‘뒷담화’ 칼럼을 읽었습니다. 독자들이 왜 이렇게 사진과 글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따져봤는데, 투박한 멋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글에 꾸밈이 없으니 소화가 잘되는 글이라고 할까요? 조미료를 안 쓴 집 밥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고백 하나 할까요? 저는 난독증이 있어요. 남의 책을 잘 못 읽어요. 그런데 일이니까 읽어야 하잖아요. 소설가를 만나야 하니 소설을 읽어야 하고, 시인을 촬영하는 날에는 시를 이해해야 하니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한 장 읽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읽은 책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점점 읽다 보니까 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내가 이해하면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더는 모양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상 서랍 안에 있으면 죽은 사진
때론 인터뷰이에게 짓궂은 포즈를 요청해야 하잖아요. ‘내가 사진전문기자인데, 나에게 좀 맡기고 자유롭게 촬영에 임해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그게 잘 살펴보면 각자 사연이 있어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 치부, 속 깊은 이야기도 있고요. 기자는 세상에 던질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인터뷰하는 건데, 사람들은 다들 예쁜 척, 멋진 척을 하잖아요. 어떤 누구도 인터뷰하면서 “난 멋있는 사람이다. 예쁜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진을 그렇게 찍으면 안 되죠. 이야기의 앞뒤가 안 맞으니까요.
예쁜 척을 하면, 그러지 말라고 요구하시나요?
당신이 한 이야기가 이건데, 멋있는 척을 하면 안 된다고 하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토숍을 해달라는 분들이 있어요. 포토숍을 많이 하면 조작된 사진이 나올 뿐인데, 나중에 보면 본인도 부끄러울 텐데 당장은 멋있게 보이고 싶은 거죠.
어떤 인물을 만날 때 감동하시나요? 사진기자로서 이렇게 촬영에 임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태도가 있으시나요?
배우 김혜자 선생님 인터뷰를 하러 나왔는데, 그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주일 만이었어요. 연극을 홍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회 분위기도 고려해야 했지요. 우리만 웃고 있을 수 없으니 상황이 염려돼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선생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하셔서 극 중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떠올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선생님은 항상 울컥해지는 대사가 있다며, 현장에서 바로 감정을 잡고 차분하게 대사를 읊조리기 시작하셨어요. 결국 눈물이 맺히셨는데 사진을 찍는 저까지 먹먹해졌죠.
반대로 인터뷰나 촬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사진을 찍기 싫은 대상도 있지 않으시나요?
물론 있어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전해줘야 할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났잖아요. 내 감정이 별로라고 사진을 안 찍거나 열심히 찍지 않으면, 그건 제 본분을 못한 거니까요. 어떻게든 설득하고 해내야 해요.
무산 조오현 스님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명성에 비해 사진이 거의 없는 분이셨는데, 실제 인터뷰에서도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하셔서 겨우 기념사진만 찍으셨다고요.
(웃음) 스님이 하셨던 말이 생생합니다. “종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지 잘났다고 하는 꼴 보기도 싫다. 그런 꼴 보기도 싫다 캐 놓고 내가 신문에 나가면 우찌되겠노. 인터뷰는 절대 안 된다.” 사실 인터뷰도 차나 한잔하자며 만든 자리였고요. 카메라는 꺼내 보지도 못하고 인터뷰가 끝나려던 찰나, 홍사성 주간님이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권해주셔서 다행히 한 장을 건졌죠.
인터뷰를 하기 싫어하는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더 좋을 때가 많은데, 사진도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안 한다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찍고 싫고 그래요.
누가 부탁해서 해야 하는 상황은 좀 싫고요.
기분 나쁘죠.
다큐사진가 권철 인터뷰에서는 기자님의 사심이 느껴졌어요.
기자라면 가치 있는 일과 사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해요. 하지만 노골적인 홍보를 삼가야죠. 객관적으로 보고 알려서 보는 이들이 선입견 없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자의 직분을 망각하고서라도 권철의 사진은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만큼 그가 세상에 덜 알려진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에요. 권철 작가는 『우토로-강제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가부키초』,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대중이 많이 알진 못하죠. 그는 18년간 부와 빈이 교차하는 아시아 최고의 환락가인 가부키초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환락가를 찍는 일은 사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인데도 말이에요. 그는 조직과 배경보다는 ‘도코다이’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진철학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마리 고독한 늑대로 살고 싶다고 했죠.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그 늑대의 표정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으르렁거리는 듯했어요. 늑대 그 자체였죠.
어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독자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을 때 좋죠. 내가 생각한 메시지를 읽어줄 때 가장 좋아요.
찍을 때는 독자들의 반응을 모르시잖아요.
찍는 순간 느낌이 와요. 김혜자 선생님 같은 경우도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울었으니까요. 눈물이 나서 못 찍을 정도였으니까요. 신파 같아서 칼럼에는 쓰지 않았지만, 저도 먹먹해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일반인이 인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정말 어려워요. 용도가 다 다르니까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상황도 다르고 사람들도 천차만별이니까요. 유난히 땅바닥만 보고 있는 사람은 사진을 찍기 어려운 대상인데, 그럴 땐 주변에 있는 사물이나 분위기를 이용하면 좋겠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메시지에 맞는 상황을 잘 살릴 필요가 있어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대개 표정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손짓, 눈빛에도 메시지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잘 포착하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죠.
정말 찍기 힘든 인물도 있어요. 표정이 너무 없는 사람도 있고요. 언젠가 한 사진작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내 사진을 좋아하지 말고, 남이 보기에 좋은 사진을 인정해야 한다.”
(웃음)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어차피 자신들도 ‘나는 멋진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죽어요. 거울 반대편 얼굴만 보고 살죠. 어떻게 보면 남이 봐주는 게 내 모습이에요. 예전에 <중앙SUNDAY>에 ‘권혁재의 불완벽 초상화’를 연재했어요. 원래는 ‘불완전 초상화’가 맞는데. 아무튼 그때 놀란 게, 기사가 실린 날은 연락이 없다가 그 다음날 연락이 와요. 자기가 보기 싫어하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나와 언짢았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때서야 전화를 해요. 그제야 자신들의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거죠.
때때로 사진을 먼저 보여달라거나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진 않으시나요?
한 번도 없어요.
감히 그렇게 못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제가 빼도 박도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찍은 사진이니까요. 자기가 했던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런 말을 못하죠. “당신의 핵심 키워드는 이것”이라고 말하고 찍은 사진인데, 나중에 바꿔달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언젠가 후배 사진기자가 고민을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한 사람이 포토샵을 해달라고 하는데 선배 같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저라면 설득했을 거예요. 세상에 해야 할 이야기가 그게 아닌데, 인터뷰 내내 말한 것과 행동이 다르면 안되잖아요.
간혹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진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기자님은 사진을 요청하면 스스럼없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돈 받고 사진을 준 적이 없어요. 어차피 내 책상 서랍 안에 있으면 죽은 사진이잖아요. 필요한 사람에게는 주는 게 좋죠. 저 대신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잖아요. 대개 사진을 돈의 가치로만 생각하는데, 그 너머에 있는 가치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주려고 해요.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선에서요. 제가 상업사진가가 되면 돈을 받겠지만, 지금은 기자잖아요.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는 게 제 본분이에요. 저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SNS로 인해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인 세상이잖아요. 지나친 공해라는 생각은 없으신지요?
글쎄요. 자기 일기를 지나치게 공개를 하는데, 보는 사람이 감안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챙기면 되니까요. 공해라고 해도 큰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요. 사진기자로서는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아요. 우리가 너무 틀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하니까요. 아마추어들의 색다른 시선, 메시지를 보다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자극도 받고요.
사진 찍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경향신문> 출판사진부에서 처음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섹션지 <매거진X>는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만 7년 정도 <매거진X>를 만들었는데 당시 반응이 엄청났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문이 힘이 있었던 때였죠. 기사가 한 번 나가면 광화문 사서함이 수시로 다운될 정도였어요. 독자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사진집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았는데, 그 때 사진이 제일 부끄러워요. 남의 것을 너무 모방했으니까요.
올해로 사진기자 23년차이신데요. 언제쯤 사진을 좀 알겠다 싶으셨나요?
좀 됐죠. 초년병 시절에는 사진이 찍히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자꾸 마음이 가죠. 상대가 내 사진으로 기분이 나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신문은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나는 기자니까 독자를 위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당사자를 위한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요. 초년병 때부터 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부터 이런 사진들에 대한 반성이 한꺼번에 밀려왔죠. 그러면서 ‘불완전 초상화’를 연재하게 됐고요.
후배 사진기자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건,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책을 만들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이 인물을 찍고 있나,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이걸 놓치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어요. 테크닉을 잘하는 친구들은 많아요. 중요한 건 메시지를 파악하는 눈이죠.
취재기자들한테 바라는 점은 없으시나요?
인터뷰를 길게 해주면 고맙죠. 어차피 다들 베테랑이니까요. 저한테 1시간을 주나 10분을 주나 마찬가지더라고요. 메시지를 알면 사진은 금방 찍어요. 반면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하는 상황이면, 좀 상세한 정보를 주면 좋죠. 인터뷰이에 관해 제가 조사를 해간다고 해도 핵심적인 이야기가 잘 판단이 안 될 때가 있으니까요.
사진 강의 요청도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건방지게 강의를 간혹 했는데요. 지금은 안 해요. 강의를 하면 내 사진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요. 이건 아니구나, 싶어요. 본분에만 충실하려고요.
존경하는 사진작가는 누구인가요?
김녕만 선생을 좋아해요. 저는 지금 카메라 없이 다니지만, 이 분 곁에는 늘 카메라가 있어요. 칼럼에 쓴 적도 있는데요. 사진기자로 막 자리잡을 무렵, 선배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책을 무심코 들춰보다 김녕만 선생의 사진을 보았어요. 슬픈 듯하면서 웃음이 나는 절묘한 사진인데, 보자마자 그 사진이 제 가슴에 박혀버렸어요. 이 사진 한 장이 제게 준 힘이 컸죠. 선생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저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분이에요.
사진집이라서 책 가격이 꽤 비싸요. 하지만 오래 두고 볼 책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하시면서 계속 쑥스러워하셨지만, 저자로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요?
(웃음) 내 아들 같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어요. 젊은 청년들이 이런 메시지를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들도 갈팡질팡 길을 못 찾아서 힘들어하는데,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나 권철 사진가,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 같은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알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을 때 읽어보라고 하고 싶었어요. 말하진 못했지만요.
기자가 아닌 사진작가로서의 미래도 생각하고 계신지요?
나중에는 제 이야기를 전달해야겠지만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주문자 생산인 셈이지만 사람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니까요. 훗날 사진가로서 내 사진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흑 and 백’을 주제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어요. 우리는 너무 흑과 백만 보잖아요. 그 속에 ‘and’를 못 보고요. 십 수년째 갖고 있는 주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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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책은 그의 사진에 대한 고백이자 그와 사진을 통해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고백이다. 저자는 인물의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에 담긴 인물들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냄을, 행복을 고백한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kenziner
201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