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사진 탐구
사진의 역사와 본질, 그리고 해석과 사유로의 확장을 탐구하는 전시를 소개한다.
글 : 안동선 (미술 전문기자)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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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특별전


《광채 光彩 : 시작의 순간들》 전시 전경 

어제인 5월 29일, 국내 유일의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역 부근의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방식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블랙 박스 형태로 설계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야드릭 아키텍투어와 일구구공 도시 건축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건축물은 1층에 포토북 카페, 2·3층 전시장, 4층에 사진 전문 도서관과 암실·교육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약 10여년간의 준비 끝에 문을 열게 되었다. 


올해 개관을 기념하는 특별전은 연중 개최되며, 첫 전시인 《광채 光彩 : 시작의 순간들》은 188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 활동한 2천여 명의 사진가 목록을 바탕으로, 한국 사진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1929년,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연 정해창, 한국전쟁 전후 도시의 풍경을 리얼리즘 사진으로 담아낸 이형록, 한국 리얼리즘 사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되는 임석제, 한국 모더니즘 추상 사진의 선구자로 사진을 재현의 도구가 아닌 조형적 실험의 장으로 확장한 조현두, 1980년대 여성의 주체적 시선을 통해 한국 사진계에 젠더 담론을 선도해온 박영숙, 이들의 예술 세계는 한국 사진의 미학적 진화 과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사진이 단순 기록을 넘어 예술적 도전과 혁신의 매체임을 증명한다. 

또 다른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 건립 과정을 여섯 명의 동시대 작가들이 각각 독특한 시선으로 탐구한 전시이다. 서동신, 원성원, 정지현, 주용성, 정멜멜, 오주영 여섯 명의 작가는 창동(倉洞: 창고가 있는 동네)의 지명에서 출발한 전시를 통해, 미술관을 '보존의 장소', '생성의 장소', '기억의 장소'로 재정의하며, 공간과 작품이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매체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개관특별전은 전시와 함께하는 연계 프로그램을 5월부터 7월까지 주말 및 공휴일에 운영하며, 전시 기간은 10월 12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쏘-리얼, 써리얼 



《쏘-리얼, 써리얼》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사진이 단순한 ‘기록’의 역할을 넘어 ‘해석’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지점을 탐구하는 전시이다. 치가 켄지는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유행한 ‘오레오레 사’를 소재로 삼아, 사진 설치 작품을 통해 범죄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스즈키 노조미는 은염 인화 방식을 활용해 사라진 순간과 비가시적 기억을 시각화하며, 사진이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문희는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풍경이나 갑작스레 포착된 장면들을 바탕으로 ‘무엇이 사진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진과 현실의 관계를 성찰한다. 송상현은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리며 선별한 풍경들을 통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재와 시간의 부재를 감각하는 사유와 회복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서촌의 복합문화공간 더레퍼런스가 기획하는 국제교류프로젝트로, 두번째 전시 《뉴-픽처스》로 이어질 예정이다. 6월 15일까지. 

 

IN BETWEEN ODDITIES


Headless Man, 2025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최다함은 사진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불현듯 마주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에서 느닷없이 드러나는 이상함과 모호함을 담고 있다. 최다함은 장면을 의도적으로 찾기보다는 자신에게 다가온 찰나에 집중하며,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순간을 포착한다. 베를린과 로마 등 여러 유럽 도시에서 발견한 장면들은 벚꽃이 만발한 봄 하늘 아래의 불에 탄 자동차,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선인장, 슈퍼마켓 앞의 수도관 사고 등을 포함한다. 한남동의 전시 공간 라니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In Between Oddities》는 이러한 일상의 틈과 사이를 사진을 통해 관찰하며, 모호함과 현실의 공존을 수용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들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작품들이 일상의 흐름 속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것들을 붙잡고 천천히 바라보기 위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진들은 관객에게 사건의 맥락을 해석할 여지를 남기며, 기념비적 형상의 모순을 생각하게 만든다. 6월 7일까지.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는 1947년 창립된 전설적인 사진가 협동조합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가들이 제작한 약 150권의 포토북을 집중 조명한다. 전시는 뉴욕·런던·파리의 매그넘 사무소 내 포토북 라이브러리에 엄선된 포토북을 한자리에 모아 처음 공개하는 기획으로, 사진 작품뿐 아니라 그 제작 과정과 감성적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총 6개의 파트 나누어진 전시는 매그넘의 탄생과 활동, 시대별 대표 작품, 그리고 포토북과 사진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마틴 파와 천경우 작가가 공동 기획자로 참여하여 포토북의 예술적 의미와 발전 과정을 깊이 탐구한다. 관람객은 전시 내 리딩룸에서 포토북을 직접 만지고 읽으며, 물리적 감각을 체험할 수 있고, 관련 강연과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포토북이 지닌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9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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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 (미술 전문기자)

15년간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등에서 일했다. 현재는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미술 에세이 『내 곁에 미술』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