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한 장의 치유사
나의 찜찜했던 취한 밤을 들먹이며, ‘수전 손택’과 『타인의 고통』’을 운운하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것이다. 공감의 소통 방식을 학습 받지 못한 중년의 사람들에게, 그리하여 아내가 힘듬을 호소할 때, 자식이 자기 마음을 지옥이라 표현할 때, 직장의 부하 직원이 고민거리를 던져 올 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들이라면,
글ㆍ사진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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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154쪽

 


1.


스트레스가 심할 때 술에 취하면 안 하던 짓을 한다. 귀가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과자 등 단 것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폭식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주변을 보면 널 부러진 봉투와 먹다 남은 과자 등이 가관이다. 언젠가 외국 여행을 할 때, 소매치기 당한 것이 너무 속상해 그날 밤 호텔 바에서 양주 한 병을 다 비운 후 미니 냉장고를 통으로 비워 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 봐야 일 년에 한 두 번이니, 밤 새 우렁각시가 다녀갔거니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새로운 버전의 안 하던 짓이 등장했다. 작든 크든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오너 우울증을 앓는다. 회사 통장에 돈이 마르면 불안, 초조, 식욕저하에 무기력증이 밀려온다. 그 시점이었다. 역시 술을 마셨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단 것을 찾는 대신 템플릿 피씨를 찾아서 유튜브 검색창에 ‘참혹한 사고’를 치고 있었다. 고속버스가 달려와 터널 앞의 승용차를 들이박고 레미콘 차는 신호대기 중이던 자동차를 납작하게 눌러버리고 광란의 폭주 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무참히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그 끔찍한 영상을 한 시간 넘게,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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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나는 목이 잘리고 피가 튀기는 영화는 아예 보지도 못한다. 운전을 하다 펑 소리가 나면 시선은 소리의 방향과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극단적 테러조직이 저지르는 참수 장면과 살해 영상들을 단체방에 올리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나에게 쓴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고통을 관음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대담함을 떠라 하지 못하며,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밤은 왜 그랬을까? ‘위로’ 였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순간적으로 죽는데, 뭘 그리 돈 때문에 고민하냐고 자신을 달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 부모님 문상을 다녀오면 유독 내 부모에게 잘하고, 아는 사람의 위중한 병문안을 다녀오면 자신의 건강검진을 예약하는 것처럼 나는 타인의 고통을 번제물로 하여 나를 불안에서 구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 (65쪽)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봐, 그렇게 슬쩍 안도했다. ‘에드먼트 버크’의 주장도 등장한다. "내 확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얼마간, 그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 세익스피어도 인용한다. "범상치 않고 통탄해 마지 못할 재앙의 광경만큼 사람들이 열심히 좆는 광경도 없다." 땡큐다. 여러 번 안도한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라는 상찬과 ‘ 미국 문단의 악녀’라는 저주를 동시에 받았던 ‘수전 손택’이 나의 죄의식을 감싸주려고  『타인의 고통』을 쓸 리는 없다. 그녀는 우회하지 않고 돌직구로, 눈치보지 않고 대담하게 정치와 사회와 예술을 평론하는 사람이다. 9.11 테러가 난 직후,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눠지고, 태평양 넘어 대한민국의 신문들조차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고 이 사건을 애도와 경악의 필체로 보도 했을 때, "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9.11은 오만한 미국의 인과응보라는 말로 미국 정부와 다수의 미국인 속을 뒤집어 놓은 용자가 ‘수전 손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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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제국주의적, 반문명적 본성과 이것을 소비하는 이미지의 방식에 대해 면도칼처럼 예리한 시선과 필체로 접근하는 『타인의 고통』의 주제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가진 가벼움에 대한 경고다. 그러니까, 설령 인간들이 남의 불행과 고통을 보며 안도와 위로를 받으려는 속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도덕성과 인간의 품위로 극복하고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뛰어 넘는 성찰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수전 손택이 전하고 싶은 말이다.


특히, 티브이를 보며 다른 나라의 누군가가 전쟁으로 죽어가거나, 기아로 앙상하게 굶어 죽는 아이들을 보게 될 때, “아이구 세상에 불쌍해서 어찌하누 쯔쯧” 하며 눈물을 짓는 그 연민적 행위가 사실은,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와 같은 무능력함의 수용과 ‘ 내가 저들을 죽인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가슴 아파하면 됐지’ 와 같은 자기 무고함에의 위로를 던져주고, 금방 곧 다른 채널로 리모컨을 돌리는 경박한 반복에의 면죄부 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 위의 노비문장과 같은 한 단계 깊이 있는 성찰적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화면 속 전쟁의 배후는 누구겠으며, 영상 속 굶어 죽는 아이들은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를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같은 예를 한국 안에서 찾는다면, 세월호 뉴스를 보며 “ 아이구 저 아이들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라고 안타까워하며 또 다시 드라마로 채널을 돌릴 것이 아니라, 저렇게 꽃 같은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었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라면, 같은 재앙이 내 아이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적극적 연결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3.


공간을 달리하는 타인의 고통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중심국가 시민의 연민은 지구촌의 현실을 오히려 마취시키는 자기 위로일 뿐이라는 ‘수전 손택’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관계적 기초는 연민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고통을 피하고 싶듯, 타인도 고통을 피하고 싶을 것이며 내가 삶을 이렇게 힘들어하듯 타인도 그러할 것이며 내 행복만큼이나 타인의 행복도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마음이 연민의 마음이며 내가 오너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이 연민의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면 창졸간에 비극적 죽음을 당하는 사고자들을 보며 나를 위로하는 따위의 천박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타인을 향한 연민을 자꾸 놓친다. 그나마 상담과 치유의 현장을 한 번씩 다녀오면서 그 연민을 다시 챙기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참 많이 운다. 절절하게 자기 사연을 말하며 울고, 그 사연을 채 맺지도 못하고 운다. 그렇게 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향해 주변의 동료 혹은 치유자가 하는 행동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방 안의 티슈 한 장을 뽑아 건내주는 것이다. 여전히 울고 있지만 티슈를 받을 때 울던 사람은 더 없이 편안하고 더 없이 안전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교감의 에너지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다. 티슈 한 장에 연민과 공감과 위로가 다 들어있다. 나는 늘 치유의 현장에서 티슈를 건내고 받는 장면 앞에서 감정의 감전을 경험하며 찌리릿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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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찜찜했던 취한 밤을 들먹이며, ‘수전 손택’과 ‘『타인의 고통』’을 운운하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것이다. 공감의 소통 방식을 학습 받지 못한 중년의 사람들에게, 그리하여 아내가 힘듬을 호소할 때, 자식이 자기 마음을 지옥이라 표현할 때, 직장의 부하 직원이 고민거리를 던져 올 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들이라면, 고민하지 마시라.  티슈 한 장을 뽑을 힘만 있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치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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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치유사 #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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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