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는 명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중저가 옷을 입어내는 퍼포먼스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일관된 격식에만 연연하는 불통의 이미지가 아니라 패션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소통하는,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 기억나서 지금 기분은 아주 씁쓸하다.
글ㆍ사진 이화정(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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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공식 인스타그램(Voguemagazine)

 

올해 패션지 <보그> 12월호 표지를 장식한 미셸 오바마는 '패션계의 퍼스트레이디'라는 평을 받고 있는 디자이너 캐롤리나헤레라의 화이트 원피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백악관 시절 3번째로 보그의 표지를 장식할 만큼 멋진 패션 센스를 뽐낸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연설 당시, 입었던 나르시소로드리게스의 200만 원 상당의 원피스를 품절시킨 완판녀이기도 하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 방문 시에는 그 나라의 정서를 감안해서 화려한 패턴의 토리버치 원피스를 입어서 패션의 TPO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미셸 오바마의 패션이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하이로우믹스 공식’ 덕분이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와 지방시 등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과 경우에 따라서 제이크루 같은 중저가 브랜드, 그리고 H&M 같은 SPA브랜드의 옷과 의상을 적절히 믹스해서 소화하기 때문이다. 미국 영부인들의 의상비는 국고에서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미셸 오바마도 의상비 지출을 늘 고민한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해지는데, 종종 간격을 두어 재활용(?)하거나, 스카프나 벨트 등 액세서리를 이용해서 변화를 주는 팁도 활용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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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미들턴 공식 인스타그램(duchesskatemiddleton)


미국에 미셸오바마가 있다면 영국에는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있다. 30여 년 전 이미 영국의 패션아이콘이었던 그의 시어머니 다이애나비와 패션 센스가 닮음꼴이라고 언론들은 호들갑을 떤다.  고부가 약혼발표 당시 똑같은 푸른 사파이어 약혼반지를 끼고, 비슷한 감청색 옷을 입었다며 사진까지 대조해가며 말이다. 젊고 우아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청담동 며느리룩을 추구하는 캐이트미들턴도 알렉산더맥퀸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영국 SPA 브랜드 탑샵, 액세서라이즈, 자라 등 중저가브랜드를 적절히 믹스하고 있다. 그녀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일례로 인도의 뉴델리 방문당시 어린이보호단체 자선행사에서 입은 50달러짜리 붉은색 드레스는 3시간만에 완판됐고, 공식행사에서 입은 140달러 상당의 탑샵 꽃무늬 핑크원피스 또한 당일 매진됐다. 또한, 그녀가 공식석상에 종종 입고 등장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제니팩햄(jenny Packham)은 단시간에 유명해져서 아시아에 진출하기도 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아들과 휴가를 지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보트슈즈 브랜드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는데, 수년 전 구입한 자라 제품으로 지금은 판매되고 있지 않다는 발표에 그녀의 털털한 성격이 회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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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왕비 공식 인스타그램(her_majesty_queen_of_bhutan)


모나코의 전 왕비 그레이스켈리처럼, 스스로 국가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퍼스트레이디가 있으니 고요와 은둔의 나라 부탄을 최근 크게 주목 받게 한 제선페마(Jetsun Pema)왕비다. 1990년생인 제선페마는 11살 연상의 지그메 부탄 국왕과 2011년에 결혼해서 전세계에서 최연소 왕비로 알려져 있다. 빼어난 미모와 평민출신, 그리고 아버지가 항공사 기장이라는 공통점으로 '부탄의 케이트미들턴'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한다. 배우 고수를 닮은 지그메 부탄 국왕과 제선페마의 결혼식 장면은 유튜브를 뜨겁게 달굴 정도로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는데, 이와 동시에 부탄의 전통의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제선페마는 결혼식은 물론 주요공식석상에서 부탄의 전통의상인 ‘키라’를 입었는데 이는 전통직조방식과 독특한 색상대비로 화려함과 신비함이 특징이다. 한 매체는 ‘제선페마’의 의상스타일을 분석하면서 저고리의 본체와 소매의 색상 대비는 버버리와 입생로랑을, 전통구두는 펜디를, 귀고리는 프라다의 디테일을 연상케 한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한 패션저널리스튼 ‘패션 디자이너들이 동양의 신비스러움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 무리한 해석은 아닐 듯’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혼여행 대신 부탄의 소외된 계층을 방문하고, 왕궁대신 조그만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이 국왕부 부는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일본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6일간의 공식 일정 중 제선페마는 딱 한 나절 쇼핑을 즐겼는데, 구입한 물건은 매우 흡족해하며 구입한 유니클로의 방한복인 히트택 상의 두 벌뿐이었다며 국왕부부의 검소함을 전하는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올해 첫 아들을 출산한 제선페마 왕비는 다양한 전통의상을 입은 일정을 공식 SNS를 통해 소개하며 여전히 인구 70만인 부탄의 아이콘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대통령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어느 한복 연구가의 한복인가, 어느 디자이너의 정장인가, 어느 브랜드의 가방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무렵,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정치부에서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패션 이슈가 당선자의 일관된 스타일링을 책임지는 전속 디자이너는 누굴까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해 당선자의 뒤를 밟자는 우스갯소리도 했었는데, '유명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냥 허름한 패턴실에 직원 두세 명이 매일 제작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했다.

 

늘 격식에 맞춰 근엄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SPA 제품도 경우에 따라 멋지게 소화해내는 미셸오바마처럼 에잇세컨즈나 온라인쇼핑몰브랜드 스타일난다의 옷도 멋지게 소화시켜서 패션에도 한류 붐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단지, 중저가 옷을 입어내는 퍼포먼스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일관된 격식에만 연연하는 불통의 이미지가 아니라 패션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소통하는,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 기억나서 지금 기분은 아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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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퐈정리 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며 패션지 with, 마이웨딩과 조선일보 화요섹션에서 스타일 전문 기자로 일했다. 뷰티, 패션, 레저, 미식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라이프스타일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