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싱글의 시대라 해도, 좋은 앨범 한 장이 주는 감정의 울림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 여전히 많은 음악 팬들이 음반 단위의 결과물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장르와 경력을 막론하고, 올해도 여러 장의 앨범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이름을 아로새긴 10장의 앨범을 선정해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인고를 겪은 뮤지션은 훈장처럼 빛나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련과 풍파는 혹독했지만 그의 정체성과 보이스는 한결 날렵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보컬이다. '소몰이'의 풀체스트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면서도 그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눈의 꽃」부터 시작된 창법의 진화는 불안해 보이던 5, 6집을 지나 완전히 정착했다. 두텁고 허스키한 톤을 분쇄하자 다채롭고 고운 입자가 그 자리에 남았다. 뮤지컬을 하면서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익혀 목소리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손질되기도 했다.
박효신은 데뷔 18년 만에서야 자신의 꿈과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와 음악의 방향 모두 높게 비상한다. 직접 프로듀싱,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자유롭게 활강한다. 도전과 자신을 넘어서는 노력은 더 넓은 활로를 개척한다. (김반야)
장기하와 얼굴들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가장 멋진 장얼의 로큰롤은 바로 이 음반에서 탄생한다. 유머러스한 가사와 캐치한 멜로디, 재미있는 보컬 코러스, 다채로운 트랙 구성과 같은 기존의 강점에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과 더욱 펑키해진 리듬 등의 특색을 더해 정말로 근사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레게 풍 리듬과 장난스런 텍스트를 조합해 큰 소구를 발휘한 「ㅋ」에서부터, 장얼 식 서정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괜찮아요」와 「가장 아름다운 노래」, 고전적인 보컬 코러스를 배치해낸 「가나다」, 토킹 헤즈 풍의 펑키한 뉴웨이브를 적절히 변용한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빠지기는 빠지더라」에 이르기까지, 앨범에는 좀처럼 빠지는 노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식하는 웃음과 울림 큰 감탄이 공존하는 작품. 올해 한국 록 신에서 등장한 가장 매력적인 음반이다. (이수호)
방준석, 백현진, 두 이름을 두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 유명한'이라는 수식이 주는 족쇄를 부서트린 건 강력한 자의식도, 고집도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었다. 음반은 서영도, 신석철, 윤석철 등 그 분야에서는 이미 한 세계를 구축한 연주자들과의 멋진 단합이 몇 년에 걸쳐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실로 따스한 '인디'의 자세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에 인간애를 담뿍 녹여낸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그 위로의 방식이 자기계발서처럼 오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분류된다지만, 특정한 세대 타깃도 없었다. 직관은 종종 '만들어진 성(城)'의 틈을 파고든다. 거기에는 공식이 없어, 무방비 상태의 마음은 빛나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감동 당하기 마련이다. 김광석의 음악이 그랬듯, 여기 살아가는 누구든지 삶의 어느 순간에 방백의 <너의 손>이 필요하게 될 테다. '쓸모 있는' 작품이다. (홍은솔)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의 미적지근했던 차트의 반응을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 24 : 26 >의 수록곡들, 「Nike shoes」를 비롯하여 「Boogie on & on」, 「Aqua man」이 아직까지도 유흥가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반면, 「Time travel」이나 「토요일의 끝에서」를 재생하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빈지노는 전작의 곡들이 벌써부터 질려버린 듯하다.
<12>는 '나', 혹은 '창작자', 곧 '빈지노'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는 지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과감한 자기복제와 반복을 통해 그저 '훅쟁이'로만 남을 수 있었던 그가, 늘 새로움을 도색하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이상적인 래퍼임을 「I don't mind」, 「Break」, 「We are going to」 등의 돌발적인 트랙들이 강력히 피력한다. 물론 전작에서의 남다른 훅메이킹의 감각 또한 여전히 살아있다. 신선함에 대한 광적인 집착, '외모'와 '서울대' 앞에 달릴 빈지노의 새로운 해시태그! (이택용)
허세, 무기력, 성공욕(慾), 집착, 무질서 그리고 과(過)개인주의 등 이 시대를 사는 네트,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화지 그만의 엄하고 날선 그러나 지혜롭고 여유로운 랩 장편서사. 죄 꼬이고 잘 못되어 있는 판에 모처럼의 경각과 수긍을 부른다. 우리는 솔직히 그 말마따나 '죽음보다 낙오를 두려워하며' '다들 센 거 찾느라 여기저기 북새통이며' '아직 죽지 않은 죽은 사람' 아닌가. 냉소 무질서 무정부 같지만 반사회 반문화 반과학 비트닉은 아닌, '21세기의 히피'의 호소와 주문이다.
무개념으로 찌든 지금은 '들어 세울 상아탑이 필요한 세상'이란 비아냥이 절대 건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어짐이 빼어나고 강과 약, 살기(殺氣)와 온기가 동시에 배인 그의 랩 플로우를 빛나게 하는 건 테크닉 아닌 그러한 통쾌한 언어들이다. 2014년의
보다 높은 완성도를 목표로 한 SM과 그 힘을 흡수한 소년이 "아이돌의 완성형"을 향해 달려 나간다. 마주한 결과는 빈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정제된 사운드와 댄스, 초국적인 K팝의 현재다. 촘촘한 구성에 압도된 마음을 다독여주는 태민의 여린 보컬도 훌륭하다.
많은 이들이 솔로 활동을 위해 남자다운 성장에 초점을 두었다면, 그는 가장 찬란할 '지금의 순간'을 발현한다. 솟구치는 리듬감은 가느다란 가창과 팔다리를 통해 더욱 심미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곡의 속도감부터 퍼포먼스까지 태민이기에 더 어울렸고, 그 아름다움은 때때로 날카롭고 단단하게 파고들어 꼭 태민이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정유나)
20년 만이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거목이 다시 잎을 틔우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마음속 심연을 비추는 특유의 낮은 음색, 삶을 다각도로 성찰케 하는 노랫말, 나지막이 스며드는 선율. 지나간 나날이 무색할 만큼 그는 변함이 없다. 마치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냐는 듯, 익숙한 그 자리에서 시간과 추억, '우리'와 '그대'를 노래한다.
음반의 지위를 높이는 것은 고유의 무게감뿐만이 아니다. 오랜 파트너 조동익이 수놓은 풍부한 엠비언스는 이전의 앨범과 <나무가 되어>를 구분 짓는 중요한 질료다. 포크 사운드와 엠비언스, 신시사이저와 스트링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려 거장의 음악적 전진을 도왔다. 섬세한 시적 언어와 소리 풍경, 무심히 깔리는 목소리가 얼었던 마음을 무너트렸다. 어쩌면 우린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위로가 절실했는지도. (정민재)
정새난슬 - <다 큰 여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정새난슬은 어머니, 아니 여성으로서 한바탕 풍파를 겪은 이후 그에 대한 소회를 음악으로 풀어냈다. 한 인격이 마주한 산후우울증, 자살기도, 이혼 등의 고초는 노래의 원료가 되어 <다 큰 여자>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로 승화하였다. 어긋난 사회통념과 투쟁한다는 점에서 그와 일맥상통하는 포크투사 정태춘의 편곡 기여는 사운드의 저항성을 강화한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표현방식은 동양풍 색채를 머금은 보컬과 만나 지긋한 현실감을 뿜어낸다. 특유의 한(恨)의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낸 정새난슬의 서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여성'의 심정을 대표하기에 이른다. (현민형)
잔나비 - <Monkey Hotel>
20대 중반만이 만들 수 있는 앨범. 힘든 세상의 구심력마저 초월해내는 패기와 열정, 그 안에 담겨있는 비탄과 짠 내 나는 설움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추구하고픈 이미지, 전달하려는 메시지, 표현해내는 작법들은 조심스레 한 데 엮여 <Monkey Hotel>이라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으로 승화되었다. 이 호텔, 분명 럭셔리, 부티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나 관광객들에게 꼭 추천해주고픈 '한국 맞춤형'에 가까워 보인다.
어지러운 작금의 세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북쪽 극지(極地) 원숭이들' 같은 힙한 그룹보다 위안을 주는 건 그 이름마저도 평범한 '잔나비'였다. 어찌 보면 들쭉날쭉해 보이는 여러 장르들도 '잘 들리는 멜로디'라는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헷갈리지 않는다. '이지 리스닝'은 쉽게 쓰인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장렬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숭고한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어렵게 쌓아 올린 밴드의 정체성, 그 특별한 모노리스를 잃지 않았으면. (이기찬)
전범선과 양반들 - <혁명가>
담배 대신 곰방대를 물고 아쟁 대신 기타를 든 이 청년들에게 어찌 매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과 '록'.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서로 경합하고 화합하며 생생하게 재연된다. 묵직한 하드록의 주형 속에 퓨전과 아이디어가 뜨겁게 녹아 흐른다. 그것도 본질적인 미학 - 해학과 풍자까지 고스란히 품은 채 말이다. 그야말로 재미도 감동도 있는 판타지한 앨범이다.
어째서 몇 백 년 전의 조선시대와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변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더욱이 혁명가는 올해 반드시 필요한 노래가 아닌가. 시국마저 이들의 노래에 힘을 보탠다. (김반야)
싱글은 긴 호흡으로 가치를 풀어내는 음반과 다르다. 3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가수의 역량과 매력, 메시지까지 집약해야 한다. 와중에 '유효타'를 만들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류를 정확히 읽고 한 발 앞서 유행을 이끌거나,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노래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원더걸스 「Why so lonely」
놀라웠던 건 단순히 손에 악기를 들어서만은 아니다. 직접 작곡한 노래는 생각보다 더 독특하고 시니컬했다. 살랑대며 휘감는 선율, 무심한 분위기조차 잘 어우러진 것은 음악에 대한 수없는 “자발적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밴드라는 새로운 포맷과 박진영의 둥지를 벗어난 호기로움까지 이들은 변화 앞에서 용감했고 진보적이었다. 어느새 숙녀가 된 멤버들의 우아하고 당찬 매력으로, 그 모든 것들을 원더걸스란 이름 안에 녹여내며 그룹을 재견인했다. 댄스와 EDM이 강세인 여름 원더걸스가 내민 레게팝은 그렇게 차트를 매혹시켰다. (정유나)
서사무엘 - 「B L U E」
2014년은 「양화대교」의 자이언 티, 2015년은 「Oasis」의 크러쉬, 2016년은 「D (Half moon)」의 딘(DEAN).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란 돌파구를 찾은 알앤비 씬은 근 몇 년간 스타를 배출해내며 부흥을 달성했다. 그러나 비교적 암암리에 음악적 탐구와 진화를 거듭해 온 서사무엘의 「B L U E」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복고로 뻗어나간 그는 세련된 레트로 사운드로 한 발짝 더 진보했다. 자아의 확장(EGO EXPAND)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확장도 이루어낸 독자적 아티스트의 성취, 「B L U E」는 과연 올해의 발견이다. (이택용)
마마무 - 「넌 is 뭔들」
먼저 주의를 끄는 건 여성의 목소리가 갖는 호방함('Come on 거기 미스터, Come on 이리 와봐..')과 속삭임('우리 둘 사이 딱 한 뼘 사이..')의 특징적 병렬 배치다. 풍요로움과 가녀린 느낌의 콘트래스트! 이렇듯 체급이 다른 발성과 그루브를 지금껏 걸 그룹에서 들은 바 없다. 보컬대첩!! 이것만으로도 2016 최고의 아이돌 송이다. 힙합과 알앤비에 더해진 펑크(funk)적 돌출 또한 음악적 스탠스를 위로 끌어올린다.
네티즌 언어를 잽싸게 주운 제목은 그들 세대에게는 상투적일 수 있으나 어른들을 젊음의 감각과 소통하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대동행의 기능성이랄까. 무시할 수 없는 '세대소통 효능감'의 가치를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다. 겨우 의미를 알아차린 적지 않은 부모 세대가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그들의 아들과 딸에게 'is 뭔들'을 카톡으로 보내곤 했다. (임진모)
더 모노톤즈 - 「여름의 끝」
6분 25초 동안 지루하지 않다. 이 곡의 가치를 증명하는 단서들이 여기에 모인다. 데뷔작을 명작 반열에 올려놓은 이들은 단번에 인디 신 대표로 독수리처럼 비상해 여유롭게 관망하는 와중 호랑이 같은 우직함을 놓지 않았다. 속 시원한 멜로디와 다채로운 코드 전개, 켜켜이 쌓아올린 소리의 벽, 익숙해질 무렵 급작스레 핸들을 꺾는 구성마저 더해질 때 '단조로움'이라 해석되는 밴드명은 분명 반어적, 역설적 표현에 가까워진다.
진정 지옥 불반도에 가까웠던 이번 여름의 끝자락에 나온 곡, 모두가 탈진했지만 가을이라는 희망을 점화한 것도 결국 음악이었다. 이 '현대철학 전공 고고학자'들이 이끄는 잠수함에 오른다면, 196-70년대로 침잠해 가면서도 최신 잠망경을 통해 트렌드에 발맞출 수 있을 테다. 첫 싱글의 자격으로 부여할 합격점을 넘어 모두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곡. (이기찬)
정준일 - 「Plastic (feat. BewhY)」
생의 빛을 잃은 듯 건조하게 처리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우울하다 못해 침잠하고 있었고, 모르는 게 나을 법했던 진실을 깨닫게 된 이는 한없이 절망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락의 문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기도하는 손과 목소리는 숭고하다.
낯설었다. 하지만 반가웠다. 1990년대의 후계자라는 수식으로 선배 아티스트들의 칭찬이 자자했을 때 이뤄낸 깜찍한 변화였다. 충분히 설득력 있었고, 어울렸다. 2011년에 발표한 곡 '안아줘'가 오직 노래의 힘으로 5년 만에 역주행하면서 올해 정준일은 “나라는 사람이 내 음악보다 먼저 유명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소망을 지켜냈다. 'Plastic'은 그의 작품 중 가장 하위의 정서를 그렸지만, 뮤지션 정준일이 가장 높이 상승하는 순간을 목도한 곡이다. (홍은솔)
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김동률의 말을 빌리면 이 노래는 “먼 길을 돌아 주인을 만난 것 같은, 애초부터 이소라씨의 곡이었던 것 같은” 곡이라고 한다. 전주가 시작되자 들리는 건반의 코드워크는 김동률 특유의 터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스트링 등 다채로운 악기 사용은 이소라의 목소리를 한껏 우아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2집의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이후로 20년 만에 두 사람의 협업이다. 이소라의 감성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김동률의 섬세한 편곡를 좋아하는 이에게도 만족감을 줄 실패 없는 합병이다. 베테랑답게 두 사람의 색이 동시에 나타나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는 전작의 <8>에서 쇼크를 받은 대중을 안심시킬 강력한 안정제기도 하다. 신곡이 수록될 앨범은 제목부터 < 그녀풍의 9집 >이다. 선공개된 싱글의 폭발적인 반응은 그녀의 '풍'에 확신을 더한다. (김반야)
비와이(BewhY) 「Day day (Feat. 박재범)」
래퍼들의 돈자랑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종교적 신념을 자기개념(自己槪念)으로 삼는 중고신인 비와이(BewhY)가 혜성처럼 가요계 중심가로 파고들었다. <쇼미더머니 4> 출연 이후 발생한 「The time goes on」의 음원차트 역주행은 그의 성공을 예견하는 듯 했고 그러한 예견을 <쇼미더머니 5>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보란 듯이 현실화했다.
「Day day」는 「Waltz」, 「Forever」 등 곡들을 통해 보여준 기존 비와이의 정서를 전격으로 배격한다. 프로듀서 그레이(GRAY)가 탄생시킨 이 유쾌한 혁명은 그의 음악적 지반을 지탱하고 있던 단조 중심의 음침한 분위기를 뒤엎고 펑키(Funky)의 흥겨움을 선사해주었다. 정확한 발음을 바탕으로 머신건처럼 쉴 새 없이 음절을 쏘아대는 그의 랩 스타일은 대체 불가능한 지점을 차지한 지 오래이다. 준비된 실력, 긍정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메시지, 메시지에 공력을 싣는 프로듀싱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룬 셈이다. 광기(狂氣)에 가까운 노력으로 얻은 결과이기에 다음 목표는 그래미라는 터무니없는 포부에 기꺼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현민형)
진보 「봄이 오는 소리」
우리는 막연히 생각한다. '아, 봄이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고 썸과 연애로 점철된 가사의 노래가 하나 둘씩 등장하면 옷장에서 얇은 코트를 꺼내 입고는 연애할 준비를 한다. 잊혀진 봄은 그렇게 사랑으로 대체된다. 그럼 봄이 뭐길래. '생명이 움'트는, '어둠의 끝엔 빛이 있듯이 아픔이 지나가 버리는' 계절. 결핍의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모두 연애하라” 따위의 슬로건을 외치는 “폭력”이 아닌, 결핍과 상처를 품고 아픈 겨울을 견뎌온 자들을 위로해주는 '아침의 천사', 그것이 진보가 말하는 봄이다.
그에게 봄은 생명력을 갖는 따듯한 인격체다. 글로켄슈필과 타악 소리는 봄비를 맞으며 돋아나는 새싹을 청각적으로 묘사하고, 화려한 관현악 사운드는 새 계절의 도래를 축하한다. 이런 봄을 맞는 화자의 심장소리는 뉴 잭 스윙의 작위적인 비트처럼 쿵쿵대는 듯하다. 오롯이 귀로만 들리던 것들은 어느 샌가 오감을 만족시킨다. 다시 찾아올 '너'의 노래를 기다리며 올 겨울을 견딘다. (정연경)
제리케이 - 「콜센터 (feat. 우효)」
“매일 아침 투구를 쓰듯 쓰는 헤드셋 / 모니터 옆에 둔 작은 거울을 보며 맹세
오늘은 기죽지 말자 / 누가 욱하게 해도 초보처럼 굴지 말자”
화자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이다. 하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설명하진 않는다. 앨범 이미지나 비트에만 집중한다면 진짜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지도 모르겠다. 담담해서 더욱 쓰린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제리케이는 줄곧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짜 세계를 노래했다. 얼마나 자신이 잘났는지, 동료 랩퍼가 얼마나 찌질한지에 핏대를 세우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이크에 실었다. 실제 대한민국은 어떤 환상도, 낙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그의 음악은 휘황찬란하거나 반짝거리지 않았다. 반면 이 노래는 소재에 대한 신선함과 자연스러운 훅메이킹,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구성하고 풀어나가는 연출력이 탁월하다. 무심한 듯 차갑지 않은 우효의 섭외도 적절했다. 그동안 힙합과 인디의 콜라보레이션은 많았지만 「콜센터」는 노래의 세계관과 방식부터 다르다. (김반야)
ABTB - 「Artificial」
'한 가닥'씩 하던 내공의 음악인들이 모여 '강펀치'를 날렸다. 기본에 충실한 밀도 높은 사운드가 쉴 새 없이 귀를 때린다. 소리의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기타, 드럼과 베이스의 능숙한 완급 조절, 꿈틀대는 날 것 그대로의 보컬이 퍽 근사했다. 사납게 질주하는 와중에도 잘 들리는 친절한 멜로디를 놓치지 않은 것이 노래의 강점. 유려함을 추구하는 근래의 경향을 보란 듯이 거스르며, 이들만의 방식으로 통쾌하게 깨부쉈다.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폭파하는 강렬한 한 방! (정민재)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