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빈 필의 신년음악회
라데츠키 행진곡이 만들어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빈 사람들처럼 마냥 신나서 따라 하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글ㆍ사진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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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_무지크페라인에서의 신년음악회 모습.jpg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이 곡이 널리 사랑받게 된 것은 해마다 1월 1일 정오에 빈 음악협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TV 전파를 타고 우리나라 안방에 소개되면서부터이다. 빈 필은 신년음악회 때마다 이곡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한다.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지휘를 하고 청중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은 사실 빈 필의 신년음악회에서 비롯된 광경이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이 만들어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빈 사람들처럼 마냥 신나서 따라 하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장군의 이름이다. 1848년 3월,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라데츠키의 이름을 붙여 이 곡을 작곡했다. 이 때문에 반혁명적인 작곡가로 낙인 찍혀 한때 빈을 떠나 잠시 런던에서 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는 행진곡으로 사랑 받고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곡임에 틀림없다.


사실 라데츠키 행진곡을 빼면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은 왈츠가 대부분이다. 빈 필이, 아니 빈 사람들이 그토록 왈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18세기가 미뉴에트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왈츠의 시대였다. 왈츠는 오스트리아 농민들이 즐겨 추던 랜틀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대령이 무도회장 밖에서 추는 춤이 바로 랜틀러이다. 왈츠의 유행은 마치 전염병처럼 온 유럽을 휩쓸었다. 여유가 생긴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무도회를 드나들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녀가 함께 추는 사교춤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체접촉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의도적으로 왈츠의 열기를 고조시켰다는 설도 있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을 날마다 무도회에 초대해 왈츠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한 대로 회의를 이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에 의해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빈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빈에서 활동하고 널리 사랑받았던 작곡가의 작품을 주로 연주한다. 왈츠의 시대를 활짝 열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요제프 라너와 칼 미하엘 치러 등의 작곡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빈 필의 창립자였던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서곡이 포함되기도 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또 자주 연주되는 작곡가는 단연, '왈츠의 황제'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더불어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연주되는 곡이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이 전통인 것처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 직전, 지휘자와 빈 필 단원들이 청중들에게 새해인사를 건넨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 이어지고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주옥같은 왈츠 곡들 가운데 하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해마다 연주하는 것도 이 곡에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신흥강국,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렀지만 치욕스럽게도 불과 7주 만에 대패하고 말았다. 한때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운명을 쥐락펴락 했던 오스트리아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배였기에 국민들의 수치심과 상실감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상처를 달래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빈 남성합창단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그 결과 합창으로 노래하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탄생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원치 않는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해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금 일어설 희망을 심어주었다. 신년음악회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그리고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위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올 한해 여러분 모두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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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