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로 옮겼어. 누린내 나는 국밥집. “너 공부 안 하지? 뉴스도 안 보지?” 남자의 입담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어. 포크 끝이 아주 날카롭더라구. 입구에선 맥주박스를 옮기는 중이었지. 쿵. 주변은 다들 무심하게 취했는데 남자가 자꾸 내 팔을 만져. 쿵. 빠져나갈 출구를 확인했어. 나는 조용히 포크 손잡이를 잡았지. 쿵. 어수선한 주변을 둘러봤어. 남자가 나를 보며 징그럽게 웃는다. “어디, 니 다리 한번 만져보자” 쑤욱. 테이블 아래로 남자의 팔이 쿵. 맥주 박스가 쿵. 쿵. 쿵 그리고 푹! 아빠. 세상이 멈춘 듯 1시간 같은 1초, 나 좀. 2초, 그만 무시해. 3초. 쏴아아- 아빠의 허벅지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쳐 오르고 포크 끝에 붙은 살점...
...재미없지?
국밥집에 포크가 있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냐? 그리고 허벅지 대동맥을 포크로 어떻게 끊어. 쿵. 이러니까 니가 안 되는 거야! 쿵. 호프 가게 직원이 맥주박스를 옮기는 중이다.
아, 글이 안 풀려. 가방 안엔 수면제.
자, 그럼 이번엔 일본 실화야. 쿵.
외동딸 사쿠라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사쿠라, 하긴 흔한 이름이지. 그러게 암튼, 사쿠라 엄마는 몸이 부서지도록 돈을 벌었어. 덕분에 사쿠라는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번엔 엄마가 과로로 쓰러졌어. 엄마는 사쿠라를 불렀지. “사쿠라, 이제부터 너는 정말로 혼자야. 인생에서 힘든 일이 아주 많을 거야. 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을 때 이걸 열어봐” 붉은 부적 주머니를 남기고 죽었어. 쿵. 사쿠라는 매일 엄마의 유품을 갖고 다녔어.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당했지. 죽고 싶을 때가 점점 많아졌어. 어느 날 사쿠라를 괴롭히던 남자아이가 부적 주머니를 뺏었대. “돌려줘, 제발!” 사쿠라는 울며 애원했지만 아이는 짓궂게 주머니를 열었고 쿵. 그 안엔 작은 쪽지. 쪽지를 읽은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대. 거기엔 엄마 글씨로 이렇게. ‘사쿠라, 죽어라 ’
...사쿠라는 죽었을까? 식탁 위, 포크 끝이 날카롭다.
안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든 살걸. 더 강해져서
...그럼 그게 엄마의 의도였을까? 그 아줌마 속이야 나도 모르지. 쿵. 맥주 박스 옮기는 소리.
갑자기 내 친구 놈 얘기가 생각난다. 쿵. 걔 처제가 어린 나이에 갑자기 죽었대. 장모의 충격은 대단했지. 장모는 고통스럽게 상을 치르고 사위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대. 다음날 아침, 장모가 화장실에서 똥을 쌌는데 그 다음에 걔가 들어갔다가 진짜 죽을 뻔 했다는 거야.
왜? 글쎄 장모 똥냄새가 말야, 사람한테서 날 수 있는 똥냄새가 세상에 그렇게 지독할 수는 없었다는 거지. 쿵. 그 엄마 속이 정말 썩었나보다. 슬프지. 응, 근데 웃겨... 너 아까 화장실에서 똥 눴지? 쿵. 내 똥 냄새 얘기 하려고 장모 얘기 꺼낸 거야? ...도대체 무슨 똥을 쌌는데 냄새가 그래?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내 팔을... 만진다. 쿵.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듯 포크 손잡이를 바짝 잡는다. 이러지 마, 아빠. 쿵. 직원은 맥주 박스를 계속 옮긴다.
그거 알아? 사실 사쿠라한테는 동생이 있었던 거. “언니, 아빠가 자꾸 나를 만져...” 어느 날 동생은 언니한테 고백 했어. ...너한테 동생이 어디 있어...? 아직 안 끝났어, 아빠. 언니는 자책했어.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을까. 아빠가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지. 참는 게 아니었는데. 사쿠라는 엄마가 먹는 수면제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어. 완벽한 범죄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짰지. 아빠가 죽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줄까. 내가 절대 용서 못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실감나게 전달하지. 꿈에서도 상상했어. 그런데 아빠가 죽었어. 수면제를 많이 먹고 죽어버렸어. 내 수면제는 아직 써보지도 못 했는데.
또르륵. 가방 안에서 수면제 병이 떨어진다. 이미 병은 비었다. 아빠, 아빠가 나 또 무시했잖아. 포크로 어떻게 허벅지 대동맥을 끊을 수 있냐고. 쿵. 사쿠라... 응, 나는 사쿠라야. 스마트폰을 셀프 카메라 모드로 전환한다. 여기 봐, 아빠. 쿵. 사쿠라, 제 스마트폰을 상대 얼굴 가까이 들이댄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야. 상대는 액정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마주한다. 쿵. 중년의 여자다. 쿵. 사쿠라... 니 아빠는 죽었잖아. 쿵. 사쿠라는 어수선한 주변을 둘러보더니 쿵. 테이블 밑으로 팔을 쭉 뻗는다.
“어디, 니 다리 한번 만져보자”
쿵!
세상이 멈춘 듯 1시간 같은 1초, 사쿠라. 2초, 니 아빠는. 3초, 그래서 우리가 죽였잖아...
쏴아아-
엄마의 허벅지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쳐 오르고 포크 끝에 붙은 살점...
빈 수면제 통을 본다.
사쿠라, 니가 이걸 나한테 다 먹였구나...
사쿠라, 빠져나갈 출구를 확인한다.
엄마, 정신없는 딸의 얼굴을 만진다.
이 잠에서 깨면,
사쿠라, 죽어라.
이경미(영화감독)
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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