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모습 뒤에 숨기고 있던 절대 능력,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다가도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는 무궁한 만화의 세계. 배우 강동원을 사로잡은 만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만화
만화책을 정말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만화방도 자주 갔다면서요?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봤어요. 정말 어릴 때는 아톰을 되게 좋아했고, 초등학교 때는 『드래곤볼』을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아직 『드래곤볼』이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손바닥 만한 해적판 책을 슈퍼나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았거든요. 그 작은 책을 친구들끼리 돌려봤던 게 기억에 남아요. 만화방은 10대, 20대 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장소 중 하나예요. 시간이 나면 밥도 만화방에서 먹었어요. 라면을 시켜놓고 만화를 보면서 하루 종일 있을 때도 있었고요.
만화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드래곤볼』이 딱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천하제일무도회 출전 에피소드부터였죠. 연재가 아마 저 초등학생 때 시작해서 고등학생 때 끝났을 거예요. 중학생 때는 『슬램덩크』를 보기 시작하면서 농구도 많이 했는데 학창 시절은 거의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로 보냈죠.
『드래곤볼』은 주인공 손오공만큼 빌런 베지터의 인기도 많잖아요. 둘 중 누구에게 더 끌리나요?
손오공이죠. 베지터같이 삐뚤어진 성격이 연기를 할 때는 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저는 착한 사람을 더 좋아해요.
『슬램덩크』에서는요?
『슬램덩크』는 늘 강백호파, 서태웅파, 정대만파 다 갈리는데, 저는 서태웅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태웅 느낌도 있어요.
저는 그 정도로 차가운 사람은 아니에요. 서태웅은 약간 츤데레 스타일이잖아요.
요즘에도 신작 만화를 찾아보나요?
시간이 없어서 만화를 잘 못 봤어요. 대본 보느라 정신없어서 다른 책을 볼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나마 최근 작품이라고 하면, 강태진 작가님 만화? 세계관이 독특해서 기억나요. 제목도 『조국과 민족』 『애욕의 개구리 장갑』 『가르시아의 머리』(『B급 러브 픽처쇼』) 이런데 개인적으로는 되게 제 취향이에요. 웹툰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책으로 보는 편이에요. 최규석 작가님 그림도 좋아해서 『지옥』 『송곳』도 책으로 봤어요.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하게 되면 원작을 검토하는 경우도 많고요.
주로 판타지 만화를 보는군요.
판타지 장르를 좋아해요.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현실에 있을 법한 얘기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늘 있을 법한 얘기보다는 세상에 없는 얘기를 좋아합니다.
『원피스』 팬으로 유명하던데요. 루피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하신 적도 있고요. 100권 넘게 연재되고 있는데 어떤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도대체 언제까지 연재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저는 초반의 어인섬, 하늘섬 에피소드가 진짜 좋았어요. 지금도 계속 재밌지만 그때가 정말 기억에 남아요. 특히 하늘섬에서 ‘에넬’이라는 캐릭터와 싸울 때 어마어마했죠. 『원피스』는 루피의 모험담이다 보니 새로운 섬, 새로운 캐릭터가 매번 등장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진짜 기가 막힌다’라는 생각을 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예요.
그림체, 스토리, 캐릭터 중에서 만화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그림체를 많이 보고, 그 다음으로는 스토리가 받쳐줘야 해요. 만화는 그림체와 스토리만 따지기보다는 콘티 구성도 되게 중요하고요. 전반적으로 제일 먼저 접근할 때는 그림체를 먼저 보기는 해요. 많이 생략된 것보다는 디테일한 그림이 좋아요. 양경일 작가님 그림을 되게 좋아했는데, 『소마신화전기』 『아일랜드』 『신암행어사』같은 작품들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배가본드』 『슬램덩크』를 그리신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님도 좋아하고요.
최근에 100만 원어치 만화책을 샀다면서요?
촬영장에서 시간이 좀 남아서요. (웃음) 인터뷰 보시는 분들께 제대로 소개를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자료를 좀 찾았는데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재미있게 봤던 만화들을 찾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너무 사고 싶었어요. 절판된 것도 꽤 있었는데 상급 컨디션으로 사려니까 비싸더라고요. 이것저것 사다 보니까 가격이 좀 나왔습니다.
만화책도 많이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선호하는 독서 공간이 따로 있나요?
2~300권 정도 있으려나. 많은 편은 아니에요. 『원피스』만 해도 100권이 넘으니까요. 한 번 정리를 했는데 정리한 걸 후회하고 또 사고. (웃음) 이번에 만화를 이북으로 다운 받아서 핸드폰으로 봤거든요. 예전에는 답답해서 못 보겠다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재밌어서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이렇게 보면 되겠다 싶었어요.
책을 따로 읽는 공간을 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집에 서재가 있기는 한데 몇 년째 정리를 안해서요. 차 안에서는 멀미를 해서 아무것도 못 봐요. 집중해서 무언가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기는 해요. 이번에 만화책을 많이 샀으니까 정리를 좀 해서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해 봐야죠.
기억에 남는 만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좋아하는 캐릭터는 진짜 많죠. 제가 진짜 좋아하는, 아직도 늘 생각하는 만화가 있어요. 『용비불패』의 문정우 작가님의 『괴협전』이라는 작품인데 6권에서 중단이 됐어요. 만화를 좀 아는 사람들은 알아요. 여기에 나오는 강동 2괴라는 두 무협 캐릭터가 있는데 ‘힘숨찐’ 같은 캐릭터예요. 진짜 절대 고수들인데 보면 맨날 바보같이 헬렐레 헬렐레하죠. 『원피스』 루피도 마찬가지인데, 평소에는 약간 바보 같지만 싸울 때는 또 진지하고 잘 싸우고 계속 성장하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암스』라는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도 되게 좋아했어요. 몸에 기계가 결합된 캐릭터인데, 기계가 막 변형을 해요. 극강의 병기 같은 거죠. 그 세계관도 굉장히 재미있고, 같은 작가님이 『드라이브』라는 만화도 그렸는데 거기 주인공은 운전을 잘해요. 진짜 뭐든 타기만 하면 생명체처럼 조종해요. 명대사도 있죠. 딱 차에 타서, “내가 너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게.” 하는 이런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닮은, 닮고 싶은 캐릭터
루피처럼 짓궂은 점도 있는 거 같고요. 고등학생 때는 『비트』의 이민 같은 캐릭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드라이브』 주인공처럼 뭐든지 다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지 않겠어요. (웃음)
매력적인 빌런
빌런을 응원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악당은 악당일 뿐. 연기를 할 때는 빌런 캐릭터에 좀 더 매력을 느껴요. 삐뚤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바른 생활 사나이보다 재밌거든요. 평소에 바르게 사니까 영화에서는 못되게 굴고 싶어요. (웃음) 빌런 연기도 많이 했죠. 대표적으로 <그놈 목소리>의 아동 유괴범 목소리,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람을 해치는 캐릭터(<초능력자>), 백성을 수탈하는 양반(<군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냉혈한 같은 캐릭터(<매직>)도 있었고요.
기억에 남는 캐릭터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 진짜 못된 애들이거든요. 근데 정말 웃겨요. 츤데레 같은 애들이라서 나쁜 짓을 하지만 정의가 있고, 싸움도 잘해요. 진짜 옛날 만화 중에 『요괴소년 호야』라고 있거든요. 호야가 실수로 봉인을 깨뜨려서 나오는 요괴가 호야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되게 못된 캐릭터이면서도, 공생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어요. 저 어릴 때 되게 유명한 작품들인데 『상남2인조』나 『GTO』, 한국 제목으로 『반항하지마』죠. 그 만화 캐릭터들도 좋았어요.
기억에 남는 명대사, 명장면
왼손은 거들 뿐. 진짜 우리 시대 최고의 대사였거든요. 최근에 극장판이 나오면서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만화는 오디오로 듣는 게 아니다 보니 대사보다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잖아요. 그래도 이 대사는 늘 따라 했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뭔가를 하다가 “왼손은 거들 뿐” “오른손은 거들 뿐” 이러면서 따라해요. 『영챔프』에서 연재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탕’하는 효과음에 “왼손은 거들 뿐”하고 장면이 끝났던 것 같아요.
명장면은 온리 원 탑, 카카로트(손오공)가 슈퍼 사이언이 되는 순간이죠. 『아이큐 점프』에서 『드래곤볼』을 연재할 때, 슈퍼 사이언이 되는 순간 카카로트 머리가 딱 서면서 전면에 ‘탕!’ 하면서 끝나거든요. 그때 그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야, 이 만화는 앞으로 한참을 더 가겠구나.
실사화가 된다면 참여하고 싶은 작품
영업 비밀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어요. (웃음) 아까 얘기가 나왔으니까 『괴협전』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있어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제작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강동원의 추천 만화
만화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작품
입문자는 일단 단행본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만화를 안 좋아하실까 생각해봤는데 그림과 글을 동시에 보면서 머릿속으로 장면을 떠올리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계속 만화를 보다 보면 뇌가 피곤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최대한 짧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탄탄한 스토리와 만화적인 판타지를 가진 작품을 생각해 봤어요.
만화 『해귀선』은 제목에 바다 해자에 돌아올 귀자를 써요. 바다에서 돌아오는, 바다로 돌아가는 선이라는 거죠. 인어 마을이라고 불리는 어떤 작은 마을에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싸움이 벌어지고, 인어를 모시던 가족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인어 알이 있었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동화같이 아름다우면서 그 안에 인간사도 들어있고, 마을 사람들의 갈등, 자연과 개발의 문제 같은 것도 무겁지 않고 판타지스럽게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 추천해 드려요. 애니메이션 영화 <퍼펙트 블루> 만드신 콘 사토시 감독님이 그린 만화인데 되게 재밌어요.
나만 알고 싶은 숨겨진 명작
숨겨진 명작은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웃음) 숨겨진 명작이라는 게 사실 잘 없죠. 아는 분들은 다 알아요. 단행본에 『고백』이라는 만화가 있고요. 친구 간의 우정을 다루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에요. 『괴협전』도 어떻게 보면 무협 마니아가 아니면 못 보신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아요. 제 원픽 숨겨진 명작이긴 한데, 추천해 드리기에 고민이 되는 지점은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어요. 저는 이제 포기해서 끝났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한 십 년 전까지는 계속 기다리던 작품이에요. 혹시 작가님께서 인터뷰를 보고 계신다면,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캐릭터를 정말 너무 잘 그려주셨거든요. 옛날 한국 만화 중에서는 연재하다 중단된 것이 꽤 있어요. 항상 기다리는데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제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재미있게 봤던 만화들을 생각해 봤어요. 너무 많더라고요. 다 고르지도 못하겠고요. 『암스』 『드라이브』 『이나중 탁구부』 『괴짜가족』 『오늘부터 우리는』 『사이코메트러 에지』 『시바토라』 『바질리스크』 『루키즈』 『비바 블루스』 『우주 형제』 『오메가 트라이브』 『오디션』… 천계영 작가님하니까 생각나는데 『언플러그드 보이』가 붐이었을 때 친구들이 저보고 캐릭터 중에 한 명을 닮았다고 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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