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섬별 칼럼] 외로움과 추위는 얼씬도 할 수 없기를
이 삶을 계속 같이 살자 ③ : 천둥같고 바늘 같지만 동시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아주 조용한 외로움처럼 찾아 온 어느 겨울의 깨달음에 관하여.
글 : 송섬별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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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가 병원을 전전하는 시기는 하필이면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한겨울이다. 혹한 속에서 나는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던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솜이 두둑한 패딩을 벗어 요람 속 고양이에게 덮어 준다. 뜨거운 물주머니와 핫팩과 담요를 아무리 잔뜩 챙겨 넣어 주어도 가만히 엎드린 내 고양이를 따뜻하게 해 주기에는 너무 부족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고양이 한 마리를 살릴 만큼의 온기도 없는 것 같다. 


두 번째 수혈을 마치고도 고양이의 건강에 큰 진전이 없자 나는 잠깐 바깥에 나갔다 와도 되느냐고 묻는다. 고양이에게 벗어 준 패딩을 다시 걸칠 마음이 들지 않으니, 팔을 드러낸 맨몸으로. 


지금까지는 두 고양이의 정기검진 외에는 올 일이 없었던 병원 바깥에는 청과물 가게와 금은방과 정육점이 나란히 있고 나는 내 고양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게들이 전부 담합해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는 잘못된 확신에 차 있다. 나는 잠이 너무 부족해 발목까지 헐거운 채 걸어 다니고,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앙심과 분개로 가득 차서 추운 줄도 모른다. 가게 앞에 내놓고 파는 사과와 귤은 지나치게 단단하고 찬란해 보인다. 둥근 과일들이 내 눈을 때리는 것 같다. 금은방, 나는 저 철통같은 보안이 기분 나쁘다. 내 고양이에게도 단단한 자물쇠와 경보회사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리는 파란 표지판이 있었더라면 어떤 급성 질환도 쳐들어오지 못했을 것 같아서다. 


정육점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짧게 악! 하고 소리를 한 번 지른다. 두 번 지를 힘은 없다. 

  

*


고양이가 기어코 떠난 뒤에, 나는 계속해서 화가 나 있었다.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에 “그렇구나,”라고 말한 뒤 곧이어 자기 안부를 무심코 늘어놓기 시작하는 친구에게, 더 이상 지불할 병원비가 없으니 고양이의 조의금을 받지 않겠다는 나에게 “결혼식이나 돌잔치 부조 대신”이라는 부적절한 비유를 쓰고도 그 말이 얼마나 어떻게 무신경한지 모르는 친구에게. 그러나 분노한 한편으로, 대개 고양이의 죽음이 친구의 죽음보다 더욱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 기묘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내 가족인 고양이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고양이의 상주였기 때문에, 나는 집에 못 들어갈 수 있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도 되었다. 계속 슬퍼해도 되었다. 원한다면 미친 사람처럼 굴어도 되었다. 


그러나 폴이 죽었을 때는 모든 게 곤란했다. 때로 나는 폴의 죽음이 나를 얼마나 산산이 부수고 있는지, 내가 줄곧 버려진 형광등을 가득 담은 자루로서 살아왔으며 폴의 죽음은 그 자루를 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일 같았다고, 그 자루를 끌고 다니는 지금은 유리 파편이 나를 안에서부터 찔러 댄다고 설명해 보려 애썼지만 언제나 잘되지 않았다. 


남자친구야? 그렇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야? 그 또한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만나는 사이였고, 가장 어두운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거실에 가만히 앉아서 울기도 했다. 우리들은 나중에 서울이 아닌 곳으로 다 같이 떠나기로 했다. 돈을 모아 땅콩집을 짓고 한가운데 작은 마당을 만들어 저녁마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확히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절대 그 약속을 어겨서는 안 되니 모두에게 땅콩집을 지을 충분한 돈이 모일 때까지 살아 있기로 했다. 


그러니까 폴의 죽음과 함께 땅콩집도, 우리의 미래도 다 부서져 버려서 내가 입을 벌릴 때마다 형광등 조각이 마구 튀어나온다고. 


나란히 땅콩집을 짓고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가족은 아닌 거니까. 가족이 아니면 그런 건 다 허황된 약속이니까. 그건 낭만적 맹세이지 진짜 삶은 아닌 거니까. 

 

 

고양이의 병원비는 처음에는 사흘에 백만 원이었다가, 잠시 후에는 하루에 백만 원이었다가, 마지막에는 한 시간에 백만 원이 되었다. 큰돈이 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고 나는 처음에는 걱정하고 잠시 후에는 두려워하다가 마지막에는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고양이의 심장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갈수록 묽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다 말다 했다. 


그러다가 기억에 남는 수의사를 만나기도 했다. 새벽에 구토를 시작한 올리버가 토사물 위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를 안고 여태 다니던 병원이 아닌 큰 병원으로 간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고양이의 숨이 끊어질까 봐 택시 안에서 줄곧 손가락을 조그만 코에 대고 있다. 병원 데스크에서는 고양이를 보기 전에 내 상세 주소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느라 긴 시간을 쓴다. 수의사를 만나자마자 나는 테이블 위에 고양이 요람을 올려두고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지만, 수의사는 고양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기다리라고 한다. 먼저 서류에 사인하라고 한다. 당황스럽게도 그것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 민형사상의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서류다. 이 병원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내 고양이가 몇 살이고, 또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아직 말하기 전인데, 수의사는 고양이의 심장이 멎으면 심폐소생술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30분당 235,000원이라는 숫자에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나서 볼펜 끝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린다.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거의 믿을 수가 없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그는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 만약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 그러면 전화만 드리고 오실 때까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죠.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예”에 힘주어 체크한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슬프고 다급한 나머지 내 귀 또는 머리가 이상해진 게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쯤에서 고양이를 봐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병원비 안내가 시작된다. 나는 치료비가 얼마나 나오건 상관없으니, 고양이부터 봐 달라고 한다. 그러나 수의사는 우리 병원의 치료비 정책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내 다급한 마음을 훼방 놓는다. 들어 보니 과연 귀 기울여 들어 두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었을 만한 중차대한 액수였다. 나는 이 또한 2~3일 간격으로 성실히 지불하겠다고 서약한다. 병원비를 체납하면 채권 확보를 위한 법적 조치를 할 것이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도 서약한다. 진료 내용을 녹음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한다. 정말이지 다양하고 구체적인 맹세가 오가는 자리였다. 내 고양이의 목숨이 걸려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요란하게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의사가 열어보지 않은 요람을 그대로 들고 진료실을 나가고 난 뒤에, 그 뒤, 수의사가 따라와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개의 카드로 병원비를 성실히 지불한 뒤에 나는 병원을 나가서 요란하게 울었다. 

  

*


추운 날에 아픈 고양이를 안고 있던 어떤 날에, 사실 올리버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렇게 느꼈다. 모두가 이 고양이를 어떻게든 낫게 하려고 찌르고 만지고 뒤집고 바늘을 꽂고 있는 이 고양이를, 정말로 사랑하는 건 나밖에 없는 것처럼. 겨울에, 그런 깨달음은 천둥 같고 바늘 같지만 동시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피 한 방울 내지 않게, 아주 조용한 외로움처럼 찾아왔다. 우리는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외롭게, 외롭게 살았구나. 이 외로움이 우리의 피부를 타고 고양이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좋을 텐데. 고양이는 왜 나랑 살려고 했을까? 그는 처음부터 별 이유도 없이 나를 사랑했다. 만나자마자 마치 드디어 집에 왔다는 듯이 곤히 잤다. 그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잊은 것 같았다. 


나는 올리버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주 조금 뿐이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이 뼈저린 외로움과 추위는 금은방 창문을 둘러싼 금속제 셔터에 가로막힌 것처럼 나의 고양이에게 얼씬도 할 수 없기를, 그의 털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고작 기분이 별로야, 뭐야, 싫어, 따뜻하구나, 포근하구나, 조금 흐릿하고, 헷갈리는구나, 그런 것 뿐이기를.

  

*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고양이가 나오는 꿈을 많이 꿨다. 올리버가 살아 있는 꿈도, 죽어 있는 꿈도 있었다. 어떤 꿈에서는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내면 올리버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 무리를 이끌고 그것을 찾기 위해 물에 뛰어들고, 난파선을 수색하고, 총을 맞고, 악의 세력과 맞서 싸웠다. 내게 총을 쏜 사람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끝없는 맹세를 시키던 수의사의 얼굴이었다. 악의 세력 역시 단단히 걸어잠긴 동물병원을 그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총을 맞고 죽었지만, 다시 태어나서 계속 모험을 이어갔다. 너무나 일차원적이던 그 꿈 속에서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만해.’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반드시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하자, 친구들이 말했다. 


- 찾을 수 없다는 게 아니야,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별 수 없이 꿈속 올리버의 죽은 몸을 안고 걸어가서 따뜻한 흙에 묻어주었다. 그 잠에서 깼을 때 부은 눈은 이틀을 갔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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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puma

2025.04.13

어머니 병원 입원해서 퇴원 때 기억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라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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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