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어쩔 수 없이 찌푸려지고 힘든 날이 찾아오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지켜줄게. 그 힘든 날들을 내가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네가 힘들 때 언제나 옆에서 나도 같이 힘들게.
글ㆍ사진 전희성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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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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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자라고 닦달해놓고 사진으로 또 보고 있네.

 

 

어릴 적부터 나는 아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좋은 아빠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이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보고 즐길 수 있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그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런 아빠가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철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와 비슷한 걸 좋아하고 함께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혹시나 네게 해가 될까 봐 위험한 건 시도도 안 하게 되고, 절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잔소리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보호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너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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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닭 한 마리로는 부족하겠지?

 

해질 녘 퇴근길에 한 가장이 과자며, 장난감이며 양손에 선물을 바리바리 들고 가는 걸 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괜히 뭉클해진다. 가족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선물을 고르고 샀을 가장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져 흐뭇하고, 그 선물 중에 본인 것은 하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울컥해진다.


어릴 적,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아버지 월급날이었다. 아버지는 월급날이 되면 시장에 들러 은박지로 싼 통닭을 사오시곤 하셨다. 가끔 나를 데리고 통닭을 사러 가실 때도 있었는데, 조각난 닭이 담긴 파란색 바가지에 밥주걱으로 덜그럭거리며 반죽을 묻히고는 기름 안으로 와글와글 들어가던 닭의 자태가 아직도 선명하다.


벌써 5살이 된 1호기 아들과 이제 막 3살이 된 2호기 딸은 어렸을 때의 나처럼 치킨을 아주 좋아한다. ‘아내와 둘이 먹을 때는 한 마리만으로도 충분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함께 추억을 쌓을 가족이 늘었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묵직한 책임감이 생긴다. 가족들이 좋아할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치킨을 포장해 집에 가는 길, 너희들도 어렸을 때의 나처럼 행복한 하루이기를 바라본다. 닭다리를 모두 양보해도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요즘, 나도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가고 있다. 


가족이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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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폭풍 같은 하루였겠구나.

 

 

엄마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빠의 육아에도 깊은 고뇌와 피곤함, 심리적 압박과 수많은 인내의 한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반짝거리며 빛나는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바로 나를 살게 하는 순간들이다.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에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너의 쉼 없는 재잘거림이 ‘그래, 다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힘을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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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응원 한마디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솟는다.

 

네가 나중에 자라서 나에게 효도를 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건강하고, 잘 웃고, 나와 함께 놀아주고, 밥 잘 먹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양의 효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너는 내가 없어도 너의 인생을 잘 헤쳐 나가며 살고,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면서 너와 따로 살아갈 날이 오겠지. 나는 아마 내가 꿈꿨던 아빠의 모습으로 늙지 않아서 후회하고 네게 많이 미안하기도 할 거야.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너는 너의 ‘존재’만으로도 나의 꿈이고, 삶의 원동력이며 에너지가 된다.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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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힘들 때 나도 같이 힘들게.

 

어느새 제법 커버린 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함께 추억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릴 수도 있게 됐다. 분명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어쩔 수 없이 찌푸려지고 힘든 날이 찾아오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네 옆에서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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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언제나 웃을 수 있게.

 

그 힘든 날들을 내가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네가 힘들 때 언제나 옆에서 나도 같이 힘들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너의 그늘막이 되어 줄게. 벌써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구나. 나도 이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구나. 

 

 


 

 


 


 

 

집으로 출근전희성 저 | 북클라우드
아이를 키우는 잔잔한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낸 인터넷 만화가 ‘육아툰’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빠만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내어 엄마보다 아빠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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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가족 #효도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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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성

1980년 여름에 태어나 부천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 학원을 다니다가 디자인학과에 진학해 게임 회사와 에이전시를 거쳐 현재 신문사에서 10년차 인포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외벌이 가장이다. 집 안 청소와 생활비 충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이와 놀아주다가 이겨먹는 것과 쓰레기 분리수거를 가장 잘한다. 현재 두 살 터울의 1호기 아들과 2호기 딸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