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순정만화로 알려진 <꽃보다 남자>. <꽃보다 남자>는 일본 슈에이샤의 소녀만화잡지 ‘마가렛’에 연재된 가미오 요코의 작품으로, 지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되며 누적 발행부수만 6천만 부를 훌쩍 넘겼고, 대만, 한국 등에서 드라마로, 일본에서는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다. 전 세계에 ‘F4 열풍’을 일으킨 원작은 지난해 일본에서 뮤지컬로도 제작됐는데, 1년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초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슈퍼주니어의 성민, BTOB의 이창섭, VIXX의 켄, 제이민, 미쓰에이의 이민영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캐스팅되며 개막 전부터 주목받은 뮤지컬 <꽃보다 남자>. 과연 원작 만화와 드라마의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인터미션까지 170분의 제법 긴 러닝 타임 동안 공연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객석에서 들었던, 관객들이 나눴을 법한 얘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B구열 12열 4번 : <꽃보다 남자>가 이렇게 ‘오글거리는’ 작품이었나?
B구열 12열 5번 : 뮤지컬이 훨씬 담백한 것 같은데? 드라마는 훨씬 오글거렸어.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봤나 싶다. 드라마가 2009년에 방영됐으니까 벌써 8년 전이네.
B구열 12열 4번 : 관객들이 재미있어서 대놓고 웃는 게 아니라, 민망해서 ‘저걸 어떡해~’ 하는 마음으로 피식피식 웃는 것 같은데(웃음)? 하긴 제목부터 <꽃보다 남자>, ‘꽃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이잖아. 외모뿐 아니라 재력까지 갖췄으니 얼마나 멋있을 거야.
B구열 12열 5번 : 원래 그런 재미로 보는 작품이 있잖아.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은 ‘꽃보다 경단’이라는 일본 속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 우리식으로는 ‘금강산도 식후경’ 정도의 뜻인데, 원작에서는 대놓고 미소년 마케팅을 펼쳤지. ‘F4’도 ‘꽃미남(Flower) 4’의 약자잖아. 국내에서는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이 드라마에 F4로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꽃미남 열풍을 일으켰고 말이야.
B구열 12열 4번 : 그래서 뮤지컬 무대에는 아이돌 가수들을 대거 캐스팅했나? F4에게는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는 100% 소화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함’이 필요하잖아. 그 특별한 인물들이 대놓고 멋있는 척 연기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이렇게 가깝게 볼 수 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겠냐고. 글쎄, 뮤지컬 <꽃보다 남자>를 보러 온 관객보다는 F4의 누군가를 보러온 팬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B구열 12열 5번 : 스타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지. 그런데 역할에도 잘 어울리지 않아? 이창섭이나 이민영 씨는 뮤지컬 데뷔 무대 치고는 잘 하고, 성민이나 켄, 제이민 씨는 뮤지컬 경험이 있는 만큼 썩 잘하고 말이야. 그리고 아이돌이 아닌 배우들도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 해줘서 나름 재미가 있는 것 같아.
B구열 12열 4번 : 그러게, 루이 역을 맡은 정휘 씨도 아이돌 가수 못지않게 관심을 받는 분위기야. 다음 작품이 기대되더라고. 아사이 역의 이다솜 씨도 노래나 춤이 뛰어나서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게 되던데? 그런데 전체적으로 극이 재미있다기보다는 특정 인물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관심이 더 쏠린 건 사실인 것 같아. 예를 들어 이창섭 씨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객석에서 난리가 나잖아. 츠쿠시와 입을 맞추는데 객석에서 ‘어떡해, 안 돼!’ 등을 외치며 깊은 탄식이 쏟아지고, 넘어지거나 재밌는 표정을 지으면 또 귀엽다고 자지러지고. 솔직히 작품 자체보다는 그런 객석 반응이 더 재밌더라고.
B구열 12열 5번 : 하긴 어떤 공연장에서 주인공 남녀가 입을 맞춘다고 객석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겠어. 그리고 내용이 시대적으로 안 맞는 면도 있지. 첫 연재를 기준으로 하면 벌써 25년 전 얘기잖아. 최고의 부자들만 다닌다는 명문 학교, 그 안에서도 학교를 쥐락펴락하는 F4, 그들에게 맞선 평범한 집안 출신의 츠쿠시. 학생들의 극단적인 행동이며, 재벌가 2세와 형편이 어려운 여학생의 러브스토리까지 불편하고 진부한 얘기들이니까.
B구열 12열 4번 : 입에 담기 힘든 대사도 있지 않았어? 츠쿠시 부모가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며 일부러 그 학교에 보내고, 계속 재력으로 사람을 비교하는 모습도 불쾌하고. 그냥 하나의 소재라고 해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얘기를 도대체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 그것도 90% 이상이 여성 관객인 공연장에서 말이야.
B구열 12열 5번 : 원래 순정만화라는 게 여자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원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잖아. <꽃보다 남자> 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그런 작품이 주는 재미’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국내 초연이니까 작품을 좀 더 수정할 필요도 있을 테고. 대사에서 넘버로 넘어가는 부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넘버가 너무 많아서 감정 과잉 상태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 도를 넘는 대사나 장면도 다듬어야겠지.
B구열 12열 4번 : 내용에 비해 170분 러닝 타임도 지나치게 긴 편이야. 일본 뮤지컬들이 대체로 잔잔하고 자잘하게 긴 편인데, 우리 정서에 맞게, 그리고 시대에 맞게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 무엇보다 인기 아이돌 가수들을 캐스팅하지 않아도 뮤지컬 <꽃보다 남자>만의 특별한 재미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겠지?!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willhelm
2017.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