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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미완성으로 남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슈베르트가 매독에 감염돼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그 후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이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건망증이 심했던 슈베르트가 곡을 쓰다 말고 깜빡 잊어버렸을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슈베르트 스스로 두 악장만으로도 완벽하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곡은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미완성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이 두 악장은 어느 것이나 내용이 충실하며,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 휘어잡기 때문에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슈베르트를 깊이 흠모했던 브람스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슈베르트를 흠모했던 또 한 사람, 구스타프 말러 역시 자신의 10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1907년, 마흔일곱 살 때 첫째 딸의 죽음과 동시에 자신의 심장병을 확인한 말러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빈 궁정오페라극장 감독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결국 1911년, 쉰한 살의 나이에 교향곡 10번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 말러는 죽기 전에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는다, 알미치."라는 글귀를 유언처럼 자필 악보에 남겼는데 알미치는 말러의 아내 알마의 애칭이었다.
알마는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자기보다 열아홉 살이나 많은 노총각 말러와 결혼하지만 그 무렵 4살 연하의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로피우스가 알마에게 보낸 편지가 그에게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말러는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프로이트를 만나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일 또한 말러의 죽음을 재촉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야 밝혀졌지만, 베토벤도 미완성 교향곡이 있다. 베토벤은 원래 한 번에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작곡하는 습관이 있었다. 교향곡 5번과 6번도 동시에 작곡되었고 7번과 8번도 마찬가지였다. '런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교향곡 두 곡을 의뢰받은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진행하는 동시에, 교향곡 10번을 구상하고 있었던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런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100파운드를 받았기 때문에 일단 한 곡을 먼저 보내야 했던 베토벤이 작업속도가 더 빨랐던 9번을 먼저 넘기면서 본래 10번에 넣으려 했던 성악과 합창까지 9번의 마지막 악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완벽을 추구했던 베토벤의 성격으로 봐서는 10번 교향곡을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했겠지만, 결국 간경화와 납중독으로 1악장도 끝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브루크너도 교향곡 9번에 10년이나 매달렸지만 결국은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브루크너는 작곡하는 행위조차도 신에게 드리는 예배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의 걸작이 될 거라 믿었던 그는 늘 '이 곡을 완성할 때까지만 살아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3악장까지였다.
루터교 신자로 종파는 다르지만 브루크너만큼이나 굳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바흐 역시 작곡을 신이 주신 소명으로 생각했다. 바흐는 마지막 역작 '푸가의 기법'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239마디에 이르러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자 거기서 작곡을 멈추고 한 음도 더 그려 넣지 않았다. 브루크너와는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바로 거기까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끝내 매듭짓지 못하고 세상에 남겨진 미완성 작품들의 운명도 제각각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말러의 교향곡 10번처럼 남의 손을 빌려 마무리되었지만, 바흐의 '푸가의 기법'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작곡가의 펜이 멈춘 곳까지만 연주되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처럼 너무나 짧고 단편적인 흔적만 남아 있어, 작품보다는 연구 자료로 더 큰 의미가 있는 경우도 많다.
위대한 예술가가 마지막 작품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우리는 마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사람은 그 누구도 주어진 삶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뭔가 잔뜩 벌여놓고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미완성인 법이다. 그러니 삼가 그 운명을 받들어 살아 있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할 따름이다.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