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대고 싶은 도재명의 음반
늘 보여주던 것에 나름대로의 음악적 시도를 덧붙여 발전했다. 많은 것을 담았지만 결코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글ㆍ사진 이즘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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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앨범이다. 밴드 시절부터 주력해온 포스트록의 맛을 살리면서도 그쪽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장르적 노선을 타되 그 안을 재즈, 오케스트라, 합창, 내레이션 등의 요소로 채워 독특하고 새롭다. 사용된 다양한 악기와 목소리는 솔직하고 차분한 가사와 만나 저마다 진한 서정을 표현한다. 5개의 인스트루멘탈 곡 또한 멜로디와 제목만으로 이야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음악적 서사가 돋보인다.

 

10년간 몸담았던 밴드 로로스의 향이 느껴지지만 결론적으로 변했다. 그때처럼 체계적인 곡의 배치와 유기적인 음반의 호흡은 여전하나 곡 단위 구성이 더 다채로워졌다. 전작의 음악이 차분히 음을 쌓고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에서 폭발했다면 이번에는 변칙적이고 기습적이다. 더하여 록의 구성에서 벗어난 악기는 통일감보다는 다양성에 방점을 실으며 앨범을 흥미롭게 이끈다.

 

「Diaspora」는 이러한 구조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현악기와 긴박하게 연주되는 드럼, 높은 음의 전자음을 강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오케스트라와 반죽했다. 가사는 없지만 디아스포라의 비장미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타이틀곡인 「토성의 영향 아래」에는 외로움을 담았다. 피아노와 느린 드럼 비트로 반주를 깔고 기이한 서사의 내레이션을 얹은 이 곡은 신선하고 훌륭하다. 안정적인 목소리 톤과 담담한 가사는 노래와 내레이션의 만남을 불편함이 아닌 공감으로 풀어냈다. 후반 몰아붙이는 박진감과 엠비언트 역시 일품이다.

 

많은 재료를 잘 사용해냈다. 「죄와 벌」의 하몬드 오르간이나 「pas de dex」의 첼로, 바이올린, 퍼커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목소리의 색을 잘 선별했다. 거칠고 시원한 보컬의 정차식, 남상아의 건조함, 소리꾼 이자람의 후크(hook)는 앨범을 풍성하게 채우며 곡의 완성도를 높인다. 자신의 지향점에 맞춰 폭넓게 꺼내든 여러 가지 사운드는 그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는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성장했다. 늘 보여주던 것에 나름대로의 음악적 시도를 덧붙여 발전했다. 많은 것을 담았지만 결코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사운드의 자기복제가 아닌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반갑다. 단발성 싱글이 남발하는 세상에 꽉 채운 13곡의 탄탄한 앨범이라니. 여러모로 정신없는 시대에 오랜만에 마음을 기대고 싶은 음반이다.


박수진(muzik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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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