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신동아>에서 최우수 르포상을 받은 글이라고 한다. 채널A와 함께 취재해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도 된 적이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다. 아무도 곁에 지켜주는 이 없이 혼자 죽은 남자들의 이야기라니. 원고를 받아들고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한 채 그들이 사경을 넘은 장소를 상상해본다. 죽는 순간,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기나 했을까?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 골방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에서 지척에 사람들이 있는데, 혼자 세상을 떠나는 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죽음의 고통과 혼자 세상을 떠나는 심정 중에 무엇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원고에는 사진이 없었고, 구글을 뒤져서 그런 이들이 떠난 흔적을 보았다. 병원의 하얀 침상 위가 아닌 죽음은 이상했다. 색 바랜 분홍 꽃무늬 이불이나 누런 장판 위에 그들의 마지막 자세가 검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책에는 이웃 주민이 외벽에서 수십 마리 구더기 떼를 발견하면서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챈 경우도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서울에서만 한 달에 스물다섯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마지막이 그토록 허망할까. 노숙인이겠지 대개. 아니면 안됐지만 개인적인 불행일 것이다. 처음 든 생각은 그랬지만, 원고를 보면서 '개인적인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시간을 들여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알아챌 수 없는 사회의 허점이 있다. 그들 중에는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사람도 있었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우연한 일로 일자리를 잃고 가정이 해체되면서 거리에서 죽음을 맞은 이도 있었다. 복지제도의 허점 때문에 비극적인 말로로 향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죽음에는 '사회적 부검'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오른다. 다니엘의 마지막 장면만 본다면 안타까운 개인적인 불행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을 보았다면 그의 사인을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실하고 꽤 도덕적인 목수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혼자 사는 노인이 먹고 살 방법은 별다른 게 없어서 실업수당을 신청하려 하지만 목수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복지제도의 벽은 높기만 하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국가의 보조금을 받으려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서민의 진짜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복지제도는 그에게 절망만을 안길 뿐이다. 보는 사람도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당사자는 심장병이 안 도질 수가 없을 게다.
다니엘이 실존인물도 아니고, 바다 건너 영국의 현실이지만 그의 죽음에서 이 책의 무연고 사망자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 책에서 무연고 사망자는 '아무도 시신을 인수해가지 않은 사망자'라는 뜻으로 쓰였다. 물론 다니엘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죽음에 이른 과정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고자 했던 사람의 죽음에 만약 사회의 책임이 있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이 책에는 보다 직접적인 증언도 나온다. 오창현 씨(가명)는 고시원에서 혼자 세상을 떴다. 고시원 주인은 그가 떠난 자리를 치우느라 돈 쓰고 손님 놓쳤다고 하소연하지만 그러면서도 오창현 씨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중략) 수급 받는 사람들이 46만 원 받아서 방값 내고 나면 30만 원 남는데도 일을 못하게 하잖아요. 일을 좀 하면 20만 원이 끊긴다 하더라고. 그럼 나라에서 60만, 70만을 주지. 딱 40만 원만 주니까. 이것만 먹고살라고 하니까. 이런 것도 나라에서 일한다고 돈 뺏지 말고 그냥 일을 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나. 왜 안 되죠? 조금 도와주고 일은 일대로 할 수 있게 하고 그럼 좋잖아요.” 고시원 주인은 “그런 사람들이 다 아프다”고 말한다. 복지제도의 허점은 그들이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오히려 막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1998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2000년대 초반 구조조정을 당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외환위기”와 “대량 구조조정”, “금융위기”는 한국사회의 비극으로 역사에 굵은 글씨로 쓰이겠지만, 이를 감당한 개개인 ‘사람들’의 사정은 누가 들여다보겠는가. 그래서 무연사의 연원을 쫓다보니 20년 전 외환위기가 나왔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고 만다. 혼자 죽은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사회의 굵직한 상처들, 한국 특유의 가부장 문화, 각자도생의 세태의 흔적들이 깊게 남겨져 있다.
반쯤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취재는 대학생들의 패기와 정열이 더해지며 4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어느 언론사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떤 보상도 약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만한 노력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귀중하지 않은 원고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편집자가 이만큼 많은 땀방울이 배어 있는 원고를 만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되거나 서른을 앞둔 저자들이 첫 책의 뜨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하길, 그리고 오래도록 건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유승재(생각의힘 편집자)
김대중, 노무현 때는 학교에서 시 공부하면서 밴드하고 앨범 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명박 때 처음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졌고, 진보 정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제 문재인이니까, 게다가 문재인 때 나는 불혹에, 편집자 10년 차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도, 시도, 음악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iuiu22
201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