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정우열이 그린 개 올드독(olddog)은 『영화노트』, 『제주일기』,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등으로 우리에게 종종 감동을 선사했다. 뒤늦게 시류에 편승한 컬러링북 신간 『올드독, 날마다 그림』 속에 그림 잘 그리는 ‘대박’ 비결을 감춰두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안녕하세요? 현재 안녕의 정도를 그림으로 답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림으로 보는 작가의 근황
14년 전 올드독을 처음 그릴 무렵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나이 들수록 옛일이 또렷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아! 올드독 그리기 전의 이야기도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나이 들수록 옛일이 또렷해지나요? 음, 그렇다면 전 나이가 아직 덜 들었나 봐요.
억지로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올드독을 그리기 전에는 6, 7년 정도 시사만화를 그렸어요. 신문에 실리는, 정치나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만화요. 그런데 그 일을 계속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나저제나 그만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어느 날 우발적으로 진짜 그만뒀죠.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니까 당장 돈벌이가 없고 막막했는데, 그래도 어렵게 그만둔 거니까 좋아하는 걸 그리자. 연재할 곳은 없었지만 일단 블로그에 꾸준히 그려보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무어냐. <섹스앤더시티>,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 그리고 개. 이런 것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섹스앤더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처럼 종알종알하는데 말투는 하루키 문체 같고, 영화 얘기를 즐기는 개. 그런데 어리고 귀여운 캐릭터는 많으니까 늙고 까칠한 캐릭터. 그렇게 버무리다 보니 올드독이 태어났습니다.
이번 책은 올드독 일러스트 선집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 중에 각별하거나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그림에 대해 들어 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낸 책 『올드독의 영화노트』에 그렸던 그림 몇 가지가 있어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과정에 관한 그림인데, 그중 두 장이 이 책에 실렸습니다. 특히 하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카페에 앉아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메모하는 시간을 그린 것인데, 실제로 그 시간을 제가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 그림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든 책이든, 또 그 밖의 무엇이든 경험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경험이 풍요로워지니까요. 말해놓고 보니 요즘은 통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네요.
또한 뒤늦게 시류에 편승한 컬러링북이기도 하죠. 작가님 그림이 원래 채색이 화려한 편이 아니라 다른 컬러링북처럼 너무 열심히 색칠할 필요가 없을까요? 어떻게 칠하면 좋을까, 몇 가지 컬러링 시연으로 답해 주신다면.
어떻게 칠하는 게 좋다, 또 어떻게 칠하는 건 별로다 하고 말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컬러링북을 좋아하는 건 복잡한 세상살이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게 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칠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컬러링을 시연하기 싫어서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절대.
컴퓨터로 해 본 컬러링 시연
책 속에 쉼표 혹은 양념처럼 신작 카툰 '그림 잘 그리는 법에 관한 작은 비밀'을 수록하셨는데요. 카툰 속 올드독의 '못 그린 그림이 좋다'는 관점은 (좀 더 폭넓은 일들을 향한) 어떤 힌트 같기도 합니다. 카툰 스토리의 창작 배경이 듣고 싶고요. 작가께서는 '못 그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른바 ‘그림 잘 그리는 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잘 그린다는 게 무엇인가, 잘 그리는 능력과 잘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능력은 같은 것인가, 과연 잘 그려야만 하는가 등등. 그런 고민들을 이 책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핵심은 역시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점에 관한 카툰을 그렸습니다.
대개 우리가 그림 그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학교 때 미술시간을 통해서일 텐데, 그때는 그게 숙제가 되고 또 점수가 매겨지고 그러다 보면 즐기는 경험이랑은 좀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죠. 또 친구들끼리 비교되거나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우선 자기검열에 가로막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못 그렸다고 부끄러워하고, 찢거나 지우고 다시 그리고.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못 그리는 게 죄도 아닌데 그래야 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카툰에서도 말했듯이 못 그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멀어진 그림이야말로 개성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데... 오랜 습관이 있다 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밋밋하게 재현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해요.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씁니다. 여전히 잘 안될 때도 많지만요.
(날마다) 그리면 좋을까요? 그림, 글, 사진, 영화... 많은 사람들이 창작에 호기심을 갖고, 뛰어들고, 열띠게 매진하고, 상당수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봐야겠죠? 인간에게 창작이란 뭘까요? 작가님에게는 무엇이었고 무엇일까요?
날마다 그리는 습관은 매우 좋은 것이죠. 아니 꼭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이든 운동이든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것 치고 나쁜 게 있을까 싶네요. 창작은, 꼭 그걸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고 해도 삶에 활력과 위안을 주는 좋은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게 고단하고 각박할수록 영혼의 숨통을 틔워줄 놀이가 필요한 거 같아요. 하지만 저에게 창작은 직업이죠. 일단 직업으로 삼았다면 마치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 거나요. 다만 그 와중에서도 놀이로서의 창작의 기쁨을 새카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올드독을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올드독과 무엇을 하고 어디로 향하고 싶으세요? 올드독의 영화 이야기가 좀 그립기도 하네요.
꽤 오래 올드독을 그리다 보니 가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기도 해요. 다 큰 어른이 반갑게 인사하며 ‘와, 올드독! 초등학교 때 무지 좋아했어요!’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때 저는 두 번의 내상을 입는데 첫 번째는 ‘초등학생이 어른이 되도록 난 무얼 했나’하는 자책감 때문에, 두 번째는 ‘또 과거형 호감이구나’하는 약간의 낙담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형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뭐 더 많이 쓰고 그려야겠죠. 요새는 제주도에 산 이후로 제주도 이야기만 너무 우려먹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앞으로는 여행 이야기를 좀 많이 그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핑계 김에 여행도 더 많이 다녀야 하겠고요. 그리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극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데, 도대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게 된다면 거기도 올드독을 우정출연 시킬 생각입니다.
영화 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 영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저도 매우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한 번에 여러 가지 원고를 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앞서 말한 여행 이야기나 극화 같은 걸 해낸 다음에야 또 그리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