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키는 언제라도 부활할 겁니다
건강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는 데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인터넷 너무 믿지 마세요. 책을 고를 때는 되도록 의사가 쓴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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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를 쓰기로 했는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이야기를 한번 더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통해 정보 과잉 시대에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 사회가 의학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안아키 사태는 계속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얼마나 많은 기사가 검색되는지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선정성과 비전문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아동학대라는 분노 어린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좀더 ‘의식 있는 척’하는 논조가 등장합니다.

 

“의사들이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안아키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거지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런 면도 있지요.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옳게 보지 못한 채 이것도 나쁘지만, 다른 것도 문제라는 어설픈 양비론을 펼치는 건 오히려 해롭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문제든 사고든 없으면 제일 좋죠. 하지만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위기를 ‘위험 기회’로 보라고 합니다.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처만 남길 수도 있고, 사회가 성숙할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차분히 들여다보고,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궁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며 공감과 합의를 끌어내어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는 한걸음 나아갑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김두식 교수가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희생양부터 찾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약자가 희생양이 되죠. 그리고 희생양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만신창이를 만듭니다. 개인이라면 죽이거나 나라 밖으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흡족해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잊혀집니다. 얼마 지난 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됩니다.

 

안아키 문제를 이 구도에 대입해봅니다. 일단 비난의 화살은 당사자인 한의사에게 향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런 황당무계한 소리에 휘둘린 엄마들이 도마에 올랐죠. 다음 차례가 의사들이었습니다. 설명을 제대로 안 해준다는 거지요. 안아키에 관한 언론 보도와 논쟁은 이 구도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단 아토피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피부가 끔찍하게 상한 아이 사진과 함께 사태를 한바탕 개탄하고 나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부모들이 이런 야바위에 빠졌으니 의사들도 반성해야 한다는 양비론으로 끝이 납니다. 이런 식으로 한 달이 흘렀네요. 아직까지 수습책이 나온 것은 없습니다. 선정적인 보도에 힘입어 당사자는 전국민을 수두파티하고 싶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며 다시 한번 화려하게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재발방지책?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네요.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의사들이 설명을 잘해주면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요? 왜 의사들이 설명을 안 해준다는 얘기가 수십 년간 되풀이될까요? 누군가는 3시간 기다려 3분 진료 받는 시스템을 탓하며 의사들에게 분통을 터뜨립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다녀도 잘 낫지 않는데 속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의사를 탓합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의사들이 잘못하는 것도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탓도 큽니다. 어떤 의사도 3분 안에 환자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진저리를 칩니다. 위험하기도 하고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지만 그런 의료 시스템은 의사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바꾸고 싶어도 의사들에게는 바꿀 힘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하면 논점이 흐려질 테니 다시 안아키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의사를 비난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좋은 쪽으로 바뀌고 의사들이 제대로 행동한다면 이런 야바위가 없어질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건강에 관한 야바위는 없어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의료 시스템이 좋고 의사들이 많은 시간을 환자 교육에 할애하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이렇게 비과학적인 사기꾼들이 판을 칩니다. 의사들이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안아키 사태는 아주 무관하다고는 못해도 결정적인 인과관계가 있거나 전자가 후자의 재발방지책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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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 박힌 만트라만 되풀이하는 언론 보도 가운데 김새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이 프레시안에 실은 ‘안아키’, 단지 ‘반反지성주의’만 문제일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0482)’와 사회진보연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한 육아를 위해 필요한 것’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healthnews&nid=7316)이란 글은 주목할 만합니다.

 

전자는 ‘예방접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유발하는 주요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는 것’과 ‘이들이 구사하는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 전략’을 언급하면서 ‘왜 자연주의 육아가 부모들의 관심사가 되었는지,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와 사회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필요(needs)는 과연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합니다.

 

후자는 ‘육아의 책임을 혼자서 떠안게 되는 엄마의 고충에 공감하면서 병원의 상업화된 현실을 비판하고 소아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현대의학을 지목’하는 안아키의 주장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여성에게 일과 육아를 모두 강요하는 이중부담의 현실. 알러지 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대증치료만 하는 현대의학. 주변에 어떤 유해 화학물질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여기에서 비롯하는 무력감이 부모들로 하여금 안아키 치료법을 맹신하게’ 만들었지만 ‘현대의학의 폐기가 대안이 될 순 없다. 현대의학의 과학적 성과들은 오히려 사회운동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알러지에 대한 서술은 좀 불만스럽습니다만).

 

두 가지 기사의 문제의식과 해법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저는 거기에 ‘개인의 몫’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의료소비자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각자 알아서 잘 하라는 거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저도 구조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를 근엄하게 지적해야 폼이 난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개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위로해줘야 인기를 얻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보건의료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생태적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도 균형 잡힌 식생활, 적절한 운동 등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 사회는 사회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해야 할 몫이 있는 겁니다.

 

유모차나 분유, 기저귀는 어느 회사 제품을 쓸지 꼼꼼하게 검색하고 발품까지 팔면서 잘 씌어진 육아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않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소양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기본만 알아도 거짓 정보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알아듣기도 훨씬 쉽습니다. 설명을 제대로 안 하는(또는 설명 능력이 부족한) 의사도 많겠지만 열심히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환자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건 정부나 사회가 막을 길이 없습니다. 개인의 소양을 키우지 않으면 옥석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건강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는 데는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인터넷 너무 믿지 마세요. 책을 고를 때는 되도록 의사가 쓴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건강에 관한 한 의사가 전문가입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요령은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뭔가를 사라고 권유하거나, 고치기 어려운 병을 쉽게 나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책은 일단 피해야 합니다(안아키가 대표적으로 그런 책입니다). 안 낫는 병은 안 낫는다고, 낫기 힘든 병은 낫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알려주는 책이 좋습니다. 예방접종은 해롭다, 항암치료는 허구다 등 상식과 너무 어긋나면 일단 의심하세요.

 

안아키를 없애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제2, 제3의 안아키는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직접 담근 간장을 먹으면 간경화가 낫는다, 체온을 1도 올리면 면역이 향상되어 암도 나을 수 있다, 찬 물을 마시면 절대로 살이 빠지지 않는다, 다리 찢기를 하면 모든 건강 문제가 해결된다 등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주장이 난무하고 절박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의료 시스템, 자본주의의 병폐, 설명 안 하는 의사 등의 문제는 당장 바뀌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은 아프고 엄마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기초 체력이 약하면 쉽게 세균이 침입하여 병에 걸리듯,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안아키는 언제라도 부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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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 #욕망해도 괜찮아 #의사 #면역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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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cl

2017.06.21

많은 정보를 올려주셨네요. 다 맞는 말이고 의사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과 손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것이 의료입니다. 조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씌어진 책을 읽어 보면 어떨까요. 제가 쓴 칼럼에서 해당 부분을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에 대해 쓴 부분 같은 것들 말씀입니다. 자기 구미에 맞는 정보만 모으면 기존 생각만 강화될 뿐 편견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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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joon

2017.06.20

항생제의 역습 좋은 세균 죽인다 / MBC 뉴스데스크

[요약]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감기약에 대수롭지 않게 항생제가 들어갑니다.

바로 이 항생제가 우리 몸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좋은 세균들까지 파괴해 각종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류가 개발한 항생제가 나쁜 세균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맹군인 세균들도 괴롭히는 것입니다.

심장병이나 당뇨병은 물론 심지어 자폐증과 비만, 대장암, 천식, 습진 등 우리가 상상치 못한 많은 질병이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세균 교란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항생제가 좋은 세균을 변화시키면서 발생하는 특정장염은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 박상원 교수/서울대 보라매병원
"설사가 나타나고 심하면 장을 썩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해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그런 예가 있습니다."

인류를 위해 개발한 항생제가 한 쪽에선 우리의 동맹군인 좋은 세균을 교란시키는 한편, 다른 쪽에선 항생제 남용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괴물, 즉 '슈퍼박테리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슈퍼박테리아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매년 유럽에서는 2만5천명이 목숨을 잃고, 미국에서도 1만 9천여명이 사망하는데, AIDS로 인한 사망자수를 넘어섰습니다.

- 셀리 데이비스/영국 최고의료책임자(SKY뉴스 인터뷰)
"항생제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항생제 내성을 키우게 되면 우리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미래를 물려주게 됩니다."

항생제의 내성을 우려한 세계 각국은 몇 년전부터 감기와 기침에 항생제를 쓰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 2년간 3만건 넘는 슈퍼 박테리아 발견 사례가 보고된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은 OECD 최고 수준이고, 항생제 내성률도 평균치의 두 세배를 웃돌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CwF8eyX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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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joon

2017.06.20

"항생제 내성 사망자 2050년 천만 명 육박" / YTN

[요약]
"항생제 내성이 확대되는 것을 막지못하면 2050년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망자가 해마다 천만 명씩 발생할 수 있다."

영국의 항생제 대책 위원회는 전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 확산이 심각하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114개국의 보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모든 지역에서 항생제 내성 강화 현상이 확인됐다며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항생제 오�남용은 더욱 심각해 폐렴 등을 일으키는 폐렴간균의 경우 내성률이 44%로 영국과 일본의 8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AZ5-7MqyBI&app=desk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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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