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6일. 어둠 속에 야멸찬 빗소리에 깨어 일어나 집 안 곳곳의 창문을 닫았다. 시계를 보니 3시 조금 넘었다. 6시쯤 수영장에 가려고 밖으로 나섰는데 비는 그쳤지만 이른 아침답지 않게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오전 내내 먹구름 덩이가 혼잡하게 뭉쳤다가 풀어지고 소나기가 산발적으로 오간다. 비가 내리면 창을 닫고, 그치면 열고, 다시 비가 내리면 창을 닫고, 다시 그치면 열고. 실내 가득한 습기는 제습기로 뽑아내고. 나는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를 하녀처럼 모시며 분주하게 시중든다. 땀과 제습기의 훈풍에 온몸이 뜨뜻하게 젖은 채로, 그러다, [......], 하루에도 여러 차례 버섯처럼 돋는 충동을, 억누른다. 무어라 써야 정확할지 몰라 공란으로 남긴다. 심신의 박자 깨진 울렁임과 그에 따른 구토감을 심호흡으로 달랜다.
나는 기억력이 약하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공동체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운 사건일수록 더 그렇다. 심리적 회피와 방어 기제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징한 기억의 힘으로 지난 일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경외심이 우러난다. 박물관과 아카이브를 향해 한없이 매혹되는 까닭도 이 장소들에서 나라는 한 개체의 초라한 기억력을 인류 전체가 종적으로 보완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며칠 전, 최근에 번역한 책에 관한 북토크에서, 나는 에코랄리아와 팔리랄리아라는 언어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에코랄리아는 타인의 말끄트머리 몇 마디를 따라 하는 것이고, 팔리랄리아는 자기 말을 거푸 반복하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자동적으로. 이는 한편으로는 치료해야 하는 언어 장애로 간주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본질적으로는, 시와 음악의 역량을 내포한 기억술의 형식이기도 하다. 공기 중에 소리가 퍼지자마자 그것이 사라질세라, 그것을 잊을세라, 갈급히 되받아 따라 하기. 엇박자의 합창. 나는 에코랄리아와 팔리랄리아가 아니면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바로 그래야만 가장 절박한 시이고 음악이어서 그런 건데, 하지만 실제로 그러면 덜떨어진 머저리라고 취급받는 것을 잘 알아서, 아예 말을 머금어 버리는데,
나 지금 그래도 된다고 부디 허락해 주기를.
여러 사람에게 반복한 이야기. 여러 번 썼던 이야기. 그것을 다시 해 본다. 곰팡이 메아리, 곰팡이 시, 곰팡이 음악, 또는, 메아리 곰팡이, 시 곰팡이, 음악 곰팡이가 생겨날 때까지 이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기를.
십수 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장마의 리듬이 깨졌다. 장마란 모름지기 6월 말에 찾아와 며칠을 주기로 퍼붓고 그치기를 반복하며 7월 말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었던가. 찌는 듯 더운 날에 굵은 비가 한 차례 쏟아지면 급격히 식은 찬 공기에 작은 소름이 감돌기조차 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장마는 아예 찾아오지 않거나, 신선한 소나기가 아니라 뜨뜻미지근한 게릴라 스콜이 일순간 퍼부었다 마르며 지표면에서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고, 국지성 폭우가 대비할 수 없이 다발하며 파괴적 재난을 일으킨다.
2020년의 장마는 유례없이 길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중부 지방에서 장마는 6월 24일에 시작되어 8월 16일까지 무려 54일 동안 이어졌다. 어느 곳에서 거주하든 늘 그랬듯, 비가 내리면 창을 닫고, 날이 개면 창을 열어 환기하고, 나는 여름내 두 동작을 반복했다. 집은 산자락을 깎아 만든 골목의 맨 끝에 위치했는데, 기다란 구조의 집에서 양쪽 끝 창을 열면 산바람이 통과하며 실내 공기가 금세 시원하고 쾌적해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지루한 장마를 견디며 창 여닫기를 반복하던 8월 어느 날. 산 숲에 면한 서재의 창문 옆 벽에서 꺼림칙한 얼룩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흰 벽지에 아주 연한 푸른 기미가 도는 곰팡이 무리가 탁구공 크기로 동그랗게 세 군데 돋아 있었다. 보드라운 석채분이 묻은 것 같았다. 기겁해서 당장 곰팡이 제거하는 법을 검색하고, 지침에 따라 헝겊에 락스 희석액을 적셔 지웠다. 다음 날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으므로, 밀폐된 실내에서 곰팡이가 더 증식하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곰팡이가 있던 자리부터 살폈다. 너무나 끔찍하게도 곰팡이는 똑같은 색과 크기로 다시 돋아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낙심했지만, 힘을 내어, 다시 지웠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요리하고, 귀가 후 첫 식사를 하려 했다. 오염 물질을 제거한 다음, 개운한 기분으로 상차림을 예쁘게 하려는 마음에, 찬장 서랍을 열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옻칠 수저를 꺼냈다. 그런데 문득 석연치 않은 느낌에 숟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그란 가장자리를 따라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돋아 있는 게 아닌가.
두려운 직감에 정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혹시 집 안의 모든 유기체 사물에 곰팡이가 생겨나 있는 게 아닐까. 선풍기 바람에도 에어컨의 차가운 공기에도 불편해지는 몸이어서, 그런 가전제품 없이 맑은 날이면 창을 열고 비가 내리면 닫는 생활을 해왔는데, 비정상적으로 기나긴 이 여름의 장마 동안, 집 안에 오래 고인 습기가 내가 신경 쓰지 않은 여러 구석에 곰팡이를 배양한 게 아닐까.
즉시 주방 찬장을 활짝 열고 한 칸씩 점검했다. 직감대로, 나무 수저 외에 대나무 채반과 목제 찬합에 푸른곰팡이가 얇게 피어 있었다.
이때만 해도 곰팡이와 맞서려는 투지가 충만했다. 나는 당장 찬장의 생활 집기들을 다 끄집어내 한 칸씩 꼼꼼하게 소독했다. 대나무 채반은 과감하게 버리고, 목제 찬합에 새겨진 붓꽃의 가느다란 홈을 알코올 적신 솜으로 일일이 후벼 닦았다. 도자기, 유리, 스테인리스, 플라스틱... 재질이 무엇이든 주방용품을 전부 새로 설거지하고, 락스 희석액에 일정 시간 담갔다가, 다시 물 세척했다. 물이 닿으면 안 되는 것들은 키친타올에 알코올을 적셔, 모든 면마다, 모든 틈새마다, 모든 주름마다, 모든 구멍마다, 눈에 안 보이는 포자 한 톨까지 절대 살려 놓지 않으려, 힘주어 닦았다. 이 모든 번거로운 일을 완수하는 데 사흘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나무 제품만 피해를 입어 다행이라 여겼다. 책은 무탈해서 안도했다. 당시 나는 곰팡이를 발견하고 닦아 없애는 일과를 트위터에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는데, 그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전화한 H.에게, 제가 평소에 책을 잘 안 읽으니까 책들이 다 멀쩡한가 보아요, 깔깔거리며 농담할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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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문학평론가. 비교문학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산문집 『그림자와 새벽』과 『분더카머』를 쓰고, 앤 카슨의 『녹스』를 비롯하여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여러 권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