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정리해야 했어요
“어느 날 그 비밀이 온 세상에 공개됐다”라고, 그녀는 적었다.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바람은 조각나 버렸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현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5년 5월, 하나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니란 걸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호수 위의 백조처럼 쉼 없이 물 아래 다리를 저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의 물살은 더욱 거세졌고, 물 아래 다리만으로는 부족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더 이상 우아한 백조가 아니란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희』 12쪽)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정희는 어둡고 긴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길도 끝이 보였고,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빛줄기도 만났다. 『정희』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내딛는 그녀의 첫 걸음이다.
“이전에는 누가 뭐라 해도 제 삶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된 부분이 있었죠. 설명하고 살지도 않았고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아프지만 꼭 정리해야 될 부분이 있었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매일 하던 일과가 글을 쓰고 묵상하는 거였어요. 그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막바지에 이르러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숨고 싶었어요, 영원히. 그런데 숨을 수만은 없었던 거예요. 버티고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을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많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어도 잊어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인생 전반을 정리하고 새로 출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어요. 저처럼 말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분들과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마음이 불붙이듯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녀 위로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위로의 목소리 사이에 힐난의 목소리도 섞여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다 가식이었냐고, 왜 참고 살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너무도 쉽게 뱉어진 말들이었다. 32년 동안 한 여성이 지켜온 삶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정희는 맞서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항변하지도, 당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정희』를 보며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짧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유년 시절의 경험, 결혼 이후 벌어진 사건들, 엄마로서 느끼게 된 감정 등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했다. 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책 속에 담겼지만, 서정희에게는 ‘엄마’라는 한 단어로 귀결될 뿐이었다.
“가족에 대해서, 특히 남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가장 좋은 남편으로 보여지기를 원했고, 그게 저의 자존심이자 제 가정을 지키는 하나의 힘이었다고 생각돼요.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계속 살았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끝까지 이야기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이 땅의 엄마들은 다 똑같아요.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헤어졌을 거예요. 아니, 뛰쳐나왔을 거예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힘들면서도 왜 살았냐고, 그건 가짜 아니냐고 말씀하시잖아요. 제가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지켜왔던 거예요. 여전히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가정을 지키고 있고, 저도 그래요. ‘엄마였기 때문에’라는 말 외에는 대답할 말이 없어요. 엄마의 입장이 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겨요. 제가 여자라는 입장으로 돌아가면 못 받아들여요. 그런데 엄마라는 입장으로 보면 감당이 되더라고요. 그게 엄마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요.”
‘엄마이기 때문에’ 그녀는 절망적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결혼 생활이 지속될 때에도 끝이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딸 동주는 “엄마가 이제 한 여성으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하며 응원을 보냈다. “열여덟 살에 멈추어버린 엄마의 시간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지금의 자신보다 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여자 서정희’의 또 다른 시작을 기뻐했다.
“아이들이 항상 저를 위로해줬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그래도 해야 돼’ 하고 밀어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제가 힘들 때 다독여줬고, 힘드니까 쉬라고 했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계속 격려해줬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친구예요.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해요. ‘나는 엄마가 어른인 줄 알았어, 그런데 우리를 낳을 때 엄마도 어렸잖아’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 짠한 마음이 드나 봐요.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나눌 때 친구가 되어주는 거죠.”
마음껏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었어요
그녀가 자기 안의 이야기를 삼키고 또 삼키는 동안, 대중의 오해와 편견은 공고해졌다. 서정희는 비로소 『정희』를 통해 입을 떼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 결국 이혼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솔직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비난이 일고 있는 ‘쇼핑몰의 전말’에 대해서도 밝혔다. 당시 가계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녀의 이름과 살림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라는 남편의 강요가 있었다.
어떤 물건을 판매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는 내가 아끼는 살림을 내놓으라고 종용했다. 서정희가 쓰던 물건이라고 하면 잘 팔릴 거라고 말했다. (중략) 그의 속내를 알게 되자 나는 당장 쇼핑몰을 접고 싶었다. 역시 주도권이 없는 내 의견이 통할 리 없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아직 열지도 않은 쇼핑몰이 망하길 빌었다. 화가 나 어쩌지 못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만큼의 가격을 매기자는 것이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일 수 있었다. 그러나 손때 묻은 자기 물건의 가치는 누구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희』 133~134쪽)
‘서정희 쇼핑몰 폭리’, ‘서정희 쇼핑몰 사기’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그녀는 ‘폭리를 취하는 사기꾼’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서정희는 “하나도 팔리지 않은 채 오픈하자마자 문을 닫아 실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고 말할 뿐, 비난의 화살을 되돌려주지 않았다.
“이혼 준비 중에 비밀을 보장 받으면서 따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개를 안고 가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당시에 사진 속 강아지는 이미 죽고 없었거든요. 그런데 마치 제가 그 날 강아지를 안고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간 것처럼 된 거예요. 사람들은 ‘지금 강아지를 안고 갈 정신이 있느냐’고 했고, 법조계의 한 교수님은 ‘이 상황에서 개를 안고 조사를 받으러 가는 서정희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분석하는 인터뷰도 하셨죠. 그때와 마찬가지로, 쇼핑몰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도 저한테 물어본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대답할 기회도 없었고,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논란이 생긴 거죠. 쇼핑몰에 올려둔 제 살림에 대해서는 안 팔겠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비싸면 안사겠지’라는 생각으로 가격을 정했던 거고, 레깅스나 물 같은 건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동일하게 책정했었어요. 그런 이유에 대해서 확인하는 절차 없이 기사가 나갔어요. 시간이 지나가면 오해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계속 남아있는 상태에서 악플러들에 의해서 활용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에서도 언급한 거고요.”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덜 상처받을 수 있었을까. 적어도 어딜 가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는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다시 방송 활동을 재개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딱히 방송 생활을 한 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적도 없고 MC를 한 적도 없어요. 유일하게 한 건 광고와 특집 프로그램, 책 출간이에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는 게 신기할 따름이죠. <불타는 청춘>에 나가게 된 건, 울릉도에 가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용기가 안 났었어요. 여전히 저는 혼자이기도 하고요. 친한 분들이 스태프로 계셔서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도 있고, (집 밖에서) 자고 오는 건 안 해봤으니까 혼자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제가 세상에 나오면서 지금까지 안 했던 것들에 도전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였던 거예요. 방송 아닌 다른 일에도 저는 여전히 도전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렇고요.”
쉰다섯의 나이, 서정희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치 세상과 처음 만난 아이처럼 그녀는 호기심에 눈을 빛내고 즐겁게 배우는 놀이에 빠져있다. 그림을 그리고, 발레를 하고, 성악을 배우고, 운전을 익히면서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다.
“한동안은 해방감을 느낄 수 없었어요. 누군가의 코치를 계속 받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나보고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자라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잘 수 있겠는가, 매일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1년 넘게 밖에 나가지를 못했어요. 자유를 만끽하고 행복을 느낀 지 얼마 안 됐어요. <불타는 청춘>에 제가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오버한다고 생각하시지만, 내 감정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입에서 먼저 소리가 나가기 때문에 제가 다스릴 수가 없어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나는 살아야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소리가 나올 때 질러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마음껏 지르니까 재미가 붙어서 막 표현하는 건데(웃음), 이번에 울릉도 다녀와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다 질러봤으니까요(웃음).”
나는 정희니까!
어떤 일을 하든 특유의 감각을 발휘하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지난 시간이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고립무원’에 있었다는 그녀의 표현 그대로, 열여덟의 소녀는 재능을 펼쳐볼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채 갇혀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서정희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 밖으로 나갔다면 재능이 발견되거나 개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립무원의 골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몰입할 것을 찾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했던 거예요. 살림을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저한테 재능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지난 시간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부터 능력이 있거나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고 해도 인정할 만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꽃꽂이도 글쓰기도 인테리어도 배운 적이 없지만, 고립된 나를 일으키기 위해 싸웠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금은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서정희.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 속에서 ‘정희’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고, 자신만의 스타일과 꿈도 더욱 선명해졌다. 남편과 아이들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녀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은 음식도 엉터리로 먹어보고 꾸미지도 않고 살아봤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아니더라고요. 역시 제가 갖고 있는 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도전적인 모습이에요. 그것들을 포기하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정희니까’ 하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저한테 ‘보스베이비’, ‘미친 동안’ 같은 닉네임을 붙여주시는데, 예전에는 거부감이 느껴졌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정희니까’ 하고 받아들여져요. 옛날에는 서로 등 돌리고 있었다면 이제는 마주보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의 독특한 부분들을 공유하는 거죠. 그것들을 후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시 일으켰어요. 그리고 더 예뻐지게 노력할 거고, 더 많이 도전할 거고, 1년을 10년 같이 살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꿈을 꾸지 못하는 분들에게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같이 일어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자신과 같은 여자들의 조력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실패한 여자건, 성공으로 가는 여자건 쉰이 넘은 여성들의 뷰티, 패션, 삶의 모든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할 수 없는 부분 앞에서 무너졌었어요. 예전에는 ‘할 수 있어, 이겨내자’ 하면서 힘을 냈는데, 쉰이 넘어서니까 ‘안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눈앞의 결과에 대해서 포기하면서 인생을 접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되고요. 아이들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까 이제 할 거 다했다는 생각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느낌도 있었어요. 그리고 갱년기가 오고 여성으로서의 모든 것이 끊어진 상태에서 힘이 들기도 했고요. 무력감 때문에 외출하기도 싫고 폭식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는 패턴이 많이 달라졌죠. 들떠서 잠이 안 올 때도 많고요. 많은 일들에 호기심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처음 50대를 맞았을 때 가졌던 극단적인 마음과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포기를 하든 그러지 않고 자신을 일으키든, 결국은 내가 선택하는 거잖아요. 자신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와 함께 살 때는 커다란 구둣발에 밟혀 상처가 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멀쩡한 척했다.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든 지나칠 필요 없이 내 모습 그대로 내가 가진 만큼만 보여줄 수 있어서 편안하다. 해피엔딩을 꿈꿨던 시나리오는 폐기처분됐다. 결혼도 이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다. 인생이란 정해놓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쉰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편안하게 호흡하는 법을 배웠다. (『정희』 86쪽)
한때 백조를 꿈꿨던 그녀는 이제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자유롭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는 다른 이에게 내 삶을 걸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해가면서, 그렇게 “진짜 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 저는 다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서 도전을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도전하고 싶어도 못 하는 시기가 있으니까, 그런 분들에게 ‘그 힘듦 속에도 뭔가가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직 발견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스쳐가는 것들 중에 나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일들이 있을 거거든요. 남과는 또 다른 것들이 있을 거고요. 그걸 많이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강의도 많이 하고 싶고, 책 쓰는 일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어떤 방송이든 저를 필요로 하거나 원하면 출연할 거고요. 옛날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악플이 달렸으니까’ 하고 위축돼서 (방송에) 못 나갔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고 악플러들과도 함께 가는 거죠. 저한테 상처 준 사람과도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의 10가지를 미워했다가도 9개만 미워하게 되고, 점점 나아지겠죠. 다 미워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요.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미울 때가 있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극대화시키지 않고 같이 갈 거예요.”
“정희는 오늘도 도전합니다”라는 말로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한 그녀. 마지막까지 그녀가 전하고 싶어 한 이야기는 ‘가족’과 ‘엄마’에 대한 것이었다.
“가정 공동체는 꼭 지켜야 하고 해체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누가 뭐라 해도 엄마여야 하고요. 용기를 잃으면 안 되죠. 분명 어딘가에는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면 저처럼 실수할 수 있고 아플 수 있으니까, 함께 방법을 찾고 치료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건강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과정을 같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고요. 제가 잘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너무 못했기 때문에 아는 것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 땅의 엄마들이 엄마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엄마를 포기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엄마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정희』라는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http://ch.yes24.com/Article/View/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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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책사랑
201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