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 출판사는 통영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통영에서 어떻게 책을 만들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합니다. 하지만 사무실이 통영에 있다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업무와 소통은 전화와 이메일, 메신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개의 ‘일’이란 컴퓨터 앞에서 이루어졌고, 몇 년을 함께 일한 저자, 파트너와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경우도 여럿 있었으니까요. 이른바 디지털 시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일하고 살면서도 한 번도 스스로 ‘원격’으로 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사무실이 통영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고 오늘의 점심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해 왔지요. 그런데, 그런 제가 ‘원격근무’라니요?
“잘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이미 원격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업무 협의가 필요할 때마다 직접 다른 부서까지 찾아가서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면 대 면 소통은 이메일과 각종 메신저 프로그램 등으로 완전히 대체된 지 오래예요. 그런데도 굳이 직접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만 할까요?”
-베이스캠프 CTO,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 중에서)
매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디지털 노마드 혹은 원격근무라고 하면 뭔가 IT회사에서나 가능할 법한(첨단 기술과 결합된,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것처럼(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를 찾기 어렵더군요) 지금까지 의식조차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원격’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출판사는 (아시다시피) 통영에, 저자는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대만을 넘나들었고, 디자이너는 때마침 유럽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자가 부산에 있거나, 디자이너가 서울에 있었다고 해도 결과물이 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책을 편집하면서 ‘관성적인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절로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고 정해진 일과를 따라 흘러가는 삶.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큰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이 삶의 방식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관성적인 삶의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삶을 이야기 합니다. 아직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을 뿐, 변화는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으며,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 선택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말이지요. 겨우 출퇴근 하나 사라지는 것만으로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냐고요? 대답은 책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이 이상을 보여줄 거라 확신합니다.
박소희(남해의봄날 편집자)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통영을 찾아온 지 4년 2개월, 전국을 넘나들며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팔기도 합니다.
춘희
2017.07.04
jijiopop
2017.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