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특집] 하루키 월드를 이해하기 위한 음악 - 배순탁 음악평론가
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테두리는 클래식과 재즈, 팝과 록을 넘나든다.
글ㆍ사진 배순탁(음악평론가)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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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가 오랜 음악광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글쎄. 저 자신은 이런저런 에세이를 통해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부인할 수 없는 골수 레코드 컬렉터이자 음악 마니아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은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래식과 재즈는 기본이요, 팝과 록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에 대한 지식도 상당해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꽤나 많은 음악가의 이름을 접하는 건 이제 보편타당한 일 비슷한 게 되어버렸다. 하긴, 1990년대를 취향의 시대로 정의한다면, 그런 경향의 첫손에 꼽히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었나. 그는 자신의 취향을 음악을 통해 꽤나 직접적인 각인으로 새겨넣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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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테두리는 클래식과 재즈, 팝과 록을 넘나든다. 그중에서도 『기사단장 죽이기』의 음악적 중심축이 되는 건 클래식이다. 즉, 전작 『1Q84』와 어느 정도는 닮은꼴인 셈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사단장 죽이기』는 구성 면에서도 『1Q84』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이 꽤 많다.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Q84』의 주제가처럼 사용되는 레오시 야나체크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는 클래식 팬이 아니고서는 좀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오마메가 표적이 된 남자를 아이스픽으로 찔러 죽일 때 소설 속에 흐르던 <신포니에타>를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다. 이 외에도 소설 전반에서 이 곡이 워낙 자주 활용되었기에 책의 성공과 함께 CD가 엄청나게 팔리기도 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좀 다르다. 간단하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을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나게 유명한 이름들이 호명되기 때문이다. 핵심을 이루는 건 당연히 저 유명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다. 다름아닌 책의 주요한 테마가 바로 이 오페라로부터 가져온 것인 까닭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와 주연에 가까운 조연이라 할 ‘멘시키’가 이 오페라를 감상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둘 중 이 오페라를 프라하의 작은 가극장에서 직접 봤다고 말하는 ‘멘시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덧붙인다.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의 견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 같은 작품에 필요한 것은 실내악적인 친밀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프라하의 가극장에서 본 <돈 조반니>는,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돈 조반니>였는지도 모릅니다. (……) (클라우디오) 아바도, (제임스) 러바인, (세이지) 오자와, (로린) 마젤, 또 누구더라…… 조르주 프레트르였던가. 그런데 가수건 지휘자건 전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던 프라하의 <돈 조반니>가 희한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실내악적인 친밀함이라. 마땅한 사례가 떠오르지 않아 클래식에 아주 정통한 지인에게 자문을 구해봤다. 잠시 고민한 뒤 그가 내놓은 대답은 글라인드본 음악제(The Glyndebourne Festival)의 초창기 시절 연주된 <돈 조반니>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널리 유명한 축제로 변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프리츠 부슈(Fritz Busch)가 1936년 지휘한 <돈 조반니>를 감상해보면, 실내악적 친밀함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데 내가 굳이 글라인드본 음악제를 언급한 것에는 다음의 작품 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이 소설에서 <돈 조반니>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장미의 기사>다.


무명 음악가들에 의해 연주된 것으로 나오는 <돈 조반니>와는 달리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장미의 기사>는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지휘는 게오르그 숄티(Georg Solti), 가수는 레진 크레스팽과 이본 민턴(Yvonne Minton).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봉을 잡은 <장미의 기사>는 영국 <그라마폰>으로부터 초기 스테레오 시대의 마스터피스로 인정받는 작품이며, 이를 포함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과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의 것이 초기 스테레오 시대를 정의한 <장미의 기사> 삼대 걸작으로 거론된다.


그렇다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에리히 클라이버는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 마시라. 우리의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께서는 두 거장의 <장미의 기사> 역시 ‘멘시키’가 “이미 들어봤다”는 식으로 친절하게 언급해놓았으니까. 무엇보다 삼대 걸작이라는 정의는 내가 아니라 저명한 영국 <그라마폰>이 내린 평가이므로 의심하지 말고 믿어도 좋다. 또, 게오르그 숄티는 1954년 글라인드본 음악제 무대에 <돈 조반니>를 올린 적이 있다. 바로 내가 위에서 글라인드본 음악제를 꺼내다 쓴 또다른 바탕이다.

 

클래식 외에 대중음악이 빠질 수 없다. 우선 셰릴 크로(Sheryl Crow). 주인공이 차를 타고 여행할 때 침묵을 이기기 위해 셰릴 크로의 1집 을 틀어놓는데, 이 앨범은 정말이지 팝 음악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초대형 히트작이다.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 그래미 시상식 총 3개 부문 수상 등의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주인공은 3번 곡까지만 듣고 플레이를 중지한다. 심란한 마음에 음악이 너무 시끄럽게 다가간 까닭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런 상황에서 셰릴 크로라니,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주인공의 상태를 밝힐 수는 없지만, 나라도 스톱 버튼을 눌렀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도 한번 들어보고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시라. 이후 주인공은 셰릴 크로 대신 MJQ(Modern Jazz Quartet)의 앨범 < Pyramid>를 들으며 마음을 추스른다. 확실히 이편이 효과가 좋을 것 같다. 주인공의 표현대로 “밀트 잭슨(Milt Jackson)의 기분좋은 블루스 솔로”를 직접 만끽해보길 바란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브라폰 연주자들 중 한 명이다.


주인공인 ‘나’가 애정한 재즈 뮤지션은 또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Thelonious Monk)다. 그중에서도 콜먼 호킨스(Coleman Hawkins)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솔로가 빛나는 이 주인공의 설거지용 사운드트랙으로 인용되어 있다. 책에서는 텔로니어스 멍크의 음악을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그 기이한 화음을 조리나 논리에 맞춰 생각해낸 것이 아니야.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의식의 암흑 속에서 두 손으로 건져올렸을 뿐이지.”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도 직접 썼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라는 가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를 주인공이 굳이 LP로 구입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LP가 A면과 B면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A면 마지막 곡인 를 듣고 판을 뒤집은 뒤 B면 1번 곡인 를 플레이하는 게 ‘제대로 된 감상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를 “자주 들었고, 거기에 수록된 를 특히 좋아했다”라며 고백한 바 있다.


이 외에도 『기사단장 죽이기』에 나오는 음악은 부지기수다. 정확히 세어볼 순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블리오그라피 중에서도 숫자 면에서 최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위에 거론한 이름들 외에도 우리는 베르디, 푸치니, 슈베르트, 베토벤 등과 만날 수 있고, 도어스(The Doors)의 데뷔작 와 밥 딜런(Bob Dylan)의 컨트리 시절 명반인 등이 그의 애청 목록에 들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도니 해서웨이(Donny Hathaway)의 듀엣 앨범 에서 왜 굳이 를 꼭 집어 “멋진 보컬”이라고 써놓았는지, 직접 찾아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 주인공의 절친이 차에서 트는 뮤지션들도 꽤나 중요하다. 듀란듀란(Duran Duran), 휴이 루이스(Huey Lewis), ABC(), 바나나라마(Bananarama), 그리고 고고스(Go-Go’s) 등. 모조리 80년대 뉴웨이브/신스 팝으로 이뤄진 이 날렵하면서도 경쾌한 플레이 리스트는 주인공의 친구가 그의 아버지와는 성향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음악적으로 암시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내게 아버지(라는 상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그가 무의식적이지만 또한 필연적으로 조직한 게 아닐까 싶은 음악 취향처럼 보였다.


기실 음악을 잘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서 음악은 어디까지나 돋보이는 엑스트라 역할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러나 이 음악들을 챙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가장 내밀한 포인트를 놓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품이 들더라도 당신이 꼭 찾아서 감상해보길 바라는 이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걸 다 LP나 CD로 갖고 있어도 당신에겐 스트리밍이라는 편리한 도우미가 있지 않은가. 어디선가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테마파크’라고 정리한 글을 봤다. 요컨대, 그 테마파크에서 가장 재밌는 놀이기구 중의 하나, 그게 바로 음악인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더 잘’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꽤나 큰 격차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 잘’이라는 수식을 가능케 해주는 건, 단연코 음악이리라. 

 

추신: 작품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자주 되뇌인다. 꼭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곡 제목 같다고 하면서. 바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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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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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2018.01.15

이것은 하루키 팬에게는 너무나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음악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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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2017.07.19

마자영 전체적으로 분위기 자체가 골든에이지인데 음악두 골든에이지라 좋았슴미당 장미의 기사 솔티두 보구시푼데 어케봐야히하나 안 구래두 헤매고 있었던...ㅡ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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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