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예술을, 미술을 사랑하는가?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함일 수도, 마음 치유의 수단이 필요해서 일수도, 그저 조금은 그럴듯해 보이는 취미를 갖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미술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진단은 ‘나’와 그 주변을 함께 살피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이건수 전 <월간미술> 편집장의 새 미술산문집 『미술의 피부』는 오늘날의 미술에 대한 사색의 기록이자 애정 어린 쓴소리다. 전작 『에디토리얼』과 비교해 보다 보다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예술의 현실에 대해 담아내고자 했다는 이 책은 어쩌면 예술이 절실한 현대인들을 위한 하나의 처방이 되지 않을까.
오랜 기간 세계미술의 현장을 다양하게, 또 널리 목격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미술시장의 문제, 예술을 다루는 미디어의 언어,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동시에, 예술을 감상하는 일반의 경험에 맞닿아있는 사례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독자의 의식에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그래서 예술을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를 슬그머니 눈치채게끔 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진정 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예술의 다수화, 확산화, 확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소비하는 것을 예술의 대중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예술이 대중의 삶과 피 속에 녹아 들어가는 것, 예술의 수적이고 외적인 확산이 아닌 질적이고 내적인 잠입潛入이 일어나는 것, 나는 그것을 ‘대중의 예술화’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의 삶이 예술적으로 계속해서 열려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과 예술이 하나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p.56-57)
이처럼 ‘대중의 예술화’를 말하는 『미술의 피부』는 예술과 삶이 결코 동떨어져있지 않음을 거듭 밝힌다. 대중은 예술이 필요하고, 예술 또한 대중으로 인해 다시 한번 태어난다. 저자의 말과 같이 예술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이들이 ‘근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는 모두가 그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을,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이제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묻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다.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예술을 어떻게 공급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꾸준한 관심과 문제제기 그 자체가 무엇보다 분명한 답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 길잡이가 될만한 앞선 고민의 자취가 있다.
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