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롯데시네마 합정에서 영화 <택시운전사> 스페셜 GV가 열렸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이 큰돈을 받기로 하고 독일기자 위르겐 한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데리고 광주로 들어가 5.18 민주화 운동을 목격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가 상영된 후,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진행 아래 황석영 작가와 <택시운전사>의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택시운전사> 이야기뿐 아니라 황석영 작가의 개인적 경험, 한국 현대사 전반에 걸친 이야기 역시 오갔다.
황석영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지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감동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외부자의 시선을 따라 광주를 묘사했기 때문에 크게 감동했다고 밝혔다.
“이전에 광주를 다룬 영화들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었는데 이 영화는 국외자의 시선을 통해 보편적 휴머니티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도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훈 감독 역시 외부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사건을 묘사한 점이 다른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와 차이라고 밝혔다.
황석영 작가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언급하며 광주항쟁이 시대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이야기는 힌츠페터 기자가 직접 겪은 실화잖아요. 광주에서 보낸 며칠이 그의 평생을 결정했어요. 당시 광주에 있었던 외신기자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이 독일 외신기자의 경우에는 광주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이 깊었던 모양입니다. 죽을 때 5.18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을 정도니까요. 따라서 광주항쟁은 지역과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휴머니티와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면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어느 한 시점에만 있었던 불빛이 아니라요.”
장훈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츠페터 기자를 만난 뒷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2015년 겨울에 힌츠페터 씨를 만나 뵈었습니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니 아주 좋아하시고 응원해주셨어요. 실제와 달리 극적으로 구성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해주시기도 했고요.”
힌츠페터 기자에게 주인공 만섭의 실제 모델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에 대해서도 물어봤지만 정보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힌츠페터 씨와 김사복 씨가 1박 2일간 같이 다녔는데 그분이 기억하시는 건 제한적인 정보뿐이었어요.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느낌이었고, 군인이 광주 접근을 통제하는데 샛길을 잘 찾아서 가는 점으로 보아 기지가 있으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힌츠페터 씨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였어요. 두 분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사담을 나눌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주인공 만섭의 심리 변화가 아주 근사하게 그려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묘사하면서 주안점은 택시운전사 만섭, 그리고 그의 심리 반전에 두었어요. 영화 초반에 주인공은 시사 상식, 정치의식이 없는 소시민이었거든요. 그런 인물이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아주 근사하게 그렸습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송강호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마치 현실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았어요. 송강호 씨가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잘 연기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로 비유하자면, 그리움을 묘사할 때 작가가 직접 나와서 ‘아! 그립다.’라고 아우성치는 게 아니라 그리운 상황을 잔잔하게 묘사한 느낌의 연기였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영화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장면이 약간 쑥스러웠다고 말하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장면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에 총성이 울리기 시작할 때, 광주의 운수 노동자가 무등 경기장에 집결했어요. 수백 대의 버스와 택시가 광주 금남로로 몰려들어 죽고 체포되면서 계엄군을 밀어붙였죠. 그로 인해 군대는 도청에서 철수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충분히 타당성 있는 장면이고, 광주 택시운전사의 서울 택시운전사에 대한 인정,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준비하며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갔을 때 문인들이 광주항쟁에 대해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광주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984년 9월에 『장길산』을 완성하고 본격적으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광주항쟁 직후부터 팀을 짜서 어느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85년 5월 18일까지 이 작업을 마쳐야 한다’라고 해서 『장길산』 마케팅도 내버려 두고 이 작업을 했죠.”
최근 자전 『수인』을 펴내 광주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진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작업이 끝나 85년 3월에 원고 뭉치를 가지고 서울로 떠났어요. 그 후 여러 일을 겪으면서 30여 년간 공식적으로 광주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7월 7일인가요? 광주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면증보판과 『수인』 출판기념회를 해 방문을 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더라고요. ‘작가로서 중요한 시기를 여기에 바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다혜 기자는 <택시운전사>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아주 멋지게 그려냈다는 말과 함께 행사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장훈 감독과 황석영 작가에게 끝인사를 부탁했다.
장훈 : 영화를 준비하며 직접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많은 간접적인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오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대표 저자이신 황석영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뜻깊고 좋았습니다.
황석영 : 다시 영화에 대해 칭찬을 하고 싶어요.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정치적 신념이 있거나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단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소시민 내지는 서민이었죠. 그래서 <택시운전사>가 더 큰 힘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정치세력이나 특정 일파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화여서 아주 좋았어요.
박재형(예스24 대학생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