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의해 태어난 뮤지컬 <캣츠>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다. 1981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후 30여 개국, 3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되며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지 않던가. 국내에서도 2003년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누적 공연 1,300회(8월 12일 기준)를 달성하는 등 식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캣츠>를 뮤지컬 입문작으로 추천하는 경우도 있던데, 과연 <캣츠>를 처음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볼거리 많고 들을 거리 많고 무척 화려한 공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캣츠>는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상당히 열렸을 때 봐야 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무턱대고 관람하기 보다는 조금은 공부를 해야 훨씬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무방비 상태에서 <캣츠>를 보고 열광하는 다른 관객들과 달리 큰 재미를 못 느꼈더라도 자책하지 말자. 기자도, 지금껏 기자와 함께 <캣츠>를 관람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모두 그랬으니까. 그래서 준비해보았다. <캣츠> 객석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을!
캣츠 입문 : <캣츠>를 드디어 봤군.
캣츠 중급 : 재미있었어?
캣츠 입문 : 볼거리 많고 화려하고, 정말 고양이들처럼 분장하고 움직이잖아. 춤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인 것 같아.
캣츠 중급 : 그래서 재밌었느냐고!
캣츠 입문 : 사실 스토리는 잘 모르겠어. 언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나 지켜봐도 계속 고양이 소개만 하던데.
캣츠 중급 : 제대로 봤네(웃음). 나도 오래 전에 <캣츠>를 처음 봤을 때는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내 정체성을 크게 의심했던 것 같아.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데, 솔직히 지루했거든. 그때만 해도 무대 연출이나 의상, 배우들의 움직이나 동선, 노래나 안무 그 어떤 것보다 스토리가 중요했으니까 기승전결의 확실한 스토리라인이 없는 <캣츠>가 여러 면에서 신기하기는 했지만 재밌지는 않았어.
캣츠 입문 : 그렇지? 나도 엄청 기대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당황했어. 캐릭터가 워낙 많은 데다 이름도 생소하고 게다가 자막까지 봐야 하니까 무대를 좇아가기 더 힘들기도 했고. 그런데 <캣츠>는 코믹한 작품은 아닌 것 같아. 고양이들이 객석을 누비며 관객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재밌는 구석도 있고 캐릭터별로 웃기는 장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철학적이던데? 고양이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잖아.
캣츠 중급 : 맞아, 고양이들은 1년에 한 번 축제를 열고 다시 환생할 수 있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찾지. 축제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서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삶을 펼쳐 보이는 거야. 재밌는 건 고양이들에게는 사람처럼 저마다 이름이 있고, 직업도 있고, 다양한 성격과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의 경험도 있어. <캣츠>는 T.S. 엘리엇의 시집이 원작인데, T.S. 엘리엇에게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손주들이 있었고 그래서 고양이를 소재로 시를 썼다더군.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했고, 그 시집에 곡과 안무를 붙인 게 <캣츠>의 시작이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토리라인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캣츠 입문 : 그런 정서적인 차이도 크겠군.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어렸을 때부터 이 시집을 좋아했다는데, 우리는 아이나 어른이나 시를 많이 즐기지는 않잖아. 무대로 표현되긴 했지만 원작에서 표현한 함축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가 싶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캐릭터 중에 섹시하고 화려한 몸짓을 선보이는 반항아 고양이 럼 텀 터거와 고난위도의 안무를 자랑하는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가 가장 인기가 많은 거 아닐까?
캣츠 중급 :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캣츠>를 여러 번 보고 그와 함께 나이를 들다 보면 왕년에 스타였지만 이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극장 고양이 거스와 한때 매혹적이었지만 나이 들어 볼품없어진 그리자벨라에게 더 정이 가는 것 같아.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메모리’에서도 그냥 유명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전후사정을 다 알게 된 진한 감동이 있고.
캣츠 입문 : 결국 아는 만큼 느끼는 거네. 그런데 2014년 12월 웨스트엔드에서 리바이벌 버전이 공연된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캣츠>라고 하던데 많이 달라졌나? 더 재밌었어?
캣츠 중급 : 큰 변화는 없는데 분장과 의상이 좀 더 고양이답게 달라졌다고 해. 또 과거에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 노래를 부르고. 해외에서는 럼 텀 터거가 힙합 스타로 바뀌었는데, 국내에서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인지 기존 록 스타로 간다더군. 각 나라에 맞게 적절히 수정하고 보완했나봐.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봤던 <캣츠>보다 더 재밌지는 않았어. 바뀐 버전 때문이라기보다는 고양이들의 움직임 자체가 예전만큼 감탄이 나오지는 않더라고.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도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호소력이 떨어진다고 할까? 전혀 뭉클하지 않았어. 사실 ‘메모리’는 수많은 팝스타들이 노래했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는 감흥을 주려면 극 안에서 그리자벨라의 서글픈 쓸쓸함이 충분이 스며 나와야 하잖아. 아마도 이번 내한공연을 위해 새로 꾸려진 팀이고, <캣츠>를 경험한 배우들이 많지 않아서인 것 같아.
캣츠 입문 : 그래? 안무는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처럼 표현하느라 얼마나 연습했을까 싶더라고.
캣츠 중급 : 지금껏 봐온 <캣츠>만 못하다는 거야. 잘하긴 하지. 그만큼 연습도 많이 하고. 예전에 배우들에게 들었는데, 연습 초반에는 서 있는 것도 허용이 안 된대. 기어 다니면서 고양이의 움직임을 배우고 그 과정을 마쳐야 서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초연 때부터 <캣츠>에 나오는 고양이들은 스스로 메이크업을 한다고 해. 까다로운 매뉴얼에 맞춰 스스로 분장을 하면서 점점 고양이로 변해하는 거지. 사실 국내에서는 작품보다 스타배우를 보고 티켓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캣츠>만큼 모든 캐릭터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는 작품도 흔치 않아.
캣츠 입문 : 확실히 여느 뮤지컬과는 다른 작품이구나. <캣츠>를 다시 보게 되면 왠지 좀 더 재미를 느낄 것 같은데?
캣츠 중급 : 가장 중요한 건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음이 아닐까. <캣츠>는 발레를 관람할 때처럼 음악과 안무에 초점을 두고 그 위에 스토리를 얹으면 훨씬 재밌는 것 같아. 그리고 고양이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돼. 그러면 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한바탕 난장을 벌일 때 어디선가 커다한 신발 한 짝이 날아오는 모습에 이른바 ‘빵’ 터지게 될 걸. 세탁기, 치약튜브 등 쓰레기로 뒤덮인 무대도, 마지막 장면에서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너미와 그리자벨라가 폐타이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될 거야!
캣츠 입문 : 그런 부분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웃음). 그나저나 왜 중급이야?
캣츠 중급 : 요즘 한 작품을 수십 번 관람하는 관객들이 좀 많아야지. <캣츠>도 열혈팬이 상당하다고. 장면, 대사, 넘버를 다 외우고 있는 덕후들한테는 명함도 못 내밀어(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