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전작의 데커레이션은 빼고 음식 자체의 퀄리티에 집중했다. 전채 요리에서 선보인 음악은 알쏭달쏭한 사랑의 감정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배부르다고 말하는 귀여운 소녀의 느낌이었다. 단조로운 걸 피하는 그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진 EP에서는 대중적인 발라드, 팝 사운드를 비롯해 재즈, 보사노바, 왈츠 등의 다채로운 장르를 담아왔다. 재즈 싱어의 진한 음색과 현란한 스캣은 없어도, 뛰어난 음악성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그의 또 다른 시도!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로 이어질 ‘진아 식당 3부작’ 콘셉트도 이제 중반에 다다랐다.
진아 식당의 주요리는 얼핏 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그 첫맛은 짜릿함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특히나 이번에는 셀프 프로듀싱에 도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감성과 노력이 짙게 배어있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먼저 ‘순서에 상관없이, 편견 없이 듣는 노래’라는 음반의 메시지를 담당하는 타이틀 송 「Random」부터 보자. 왈츠 리듬에 맑은 화음을 더한 도입부 이후 몰아치는 드럼과 팝적인 멜로디의 조우가 무척 독특한 곡이다. 여기에 더티 룹스의
감각을 자극하는 건 단연 그루브함과 경쾌함, 여기에 차분함까지 표현하는 피아노 터치다. 재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편곡 또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단조에서 장조로 옮겨가는 건반 연주가 마치 보이지 않는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만 같은 「계단」, 보사노바 리듬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선율이 돋보이는 「밤, 바다, 여행」, 차분한 피아노 연주와 내면의 진솔한 노랫말이 어우러진 「어디서부터」, 산뜻한 브라스 편곡과 사랑스러운 가사가 담긴 「Everyday」까지! 어디서부터 재생해도 다양한 매력의 노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달착지근한 소스가 음식 위로 흩뿌려지는 듯한 피아노 연주는 그와 호흡하며 변주하고, 동시에 다채로운 맛을 내는 일에 집중한다. 분명히 재즈풍이지만 완벽하게 재즈는 아니며, 잔잔한 악기 운용에 사랑 이야기를 얹었지만 완전한 발라드도 아니다. 그렇다고 장르를 아무거나 마구 섞어 몰개성화한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잘할 수 있는 요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진아’의 고유성이 그득한 메인 디쉬!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맛이기에 더 특별하고, 자꾸만 생각난다.
정효범(wjdgyqja@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