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건 뭐야?”
“아빠, 저건 뭐야?”
말문 트인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그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보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기 마련.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다행스럽다’, ‘용감하다’, ‘철렁하다’, ‘고맙다’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말 80개를 사전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 말에 해당하는 상황을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보여주어 말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것은 박성우 시인이 자신의 자녀와 마음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 시인의 자녀가 아홉 살일 때 마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게” 쓴 책으로 마음에 관한 말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난 8월 12일, 화창한 토요일에 예스24 여름방학 특강 2강 ‘어린이를 위한 감정표현사전’이 열렸다. 박성우 시인의 이번 특강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의 사용법과 자녀와의 의사소통에 관한 시인의 말을 서두에 전하고, 특강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마음 표현하기 실습과 발표를 이어 진행했다.
조금 더 귀 담아 들어볼 것
“『아홉 살 마음 사전』은 제 딸과 같이 썼어요. 딸이 아홉 살이 되던 때에 썼는데요. 이때가 되면 마음에 대해 많이 물어보죠. 그 전에는 보는 대로 물어보고요. “아빠, 이건 뭐야? 저건 뭐야?”(웃음)하면서요. 그런데 마음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면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설명하려니까 말이에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읽어줘도 사실 몰라요.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게 써주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쓴 책이 『아홉 살 마음 사전』입니다.”
박성우 시인은 아이들과 대화를 잘하고, 마음을 잘 나누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했다. 아이를 온전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기, ‘그냥’이라는 말로 넘어가지 않기,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하기, 자연과 친하게 해주기 등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자녀와 대화를 하려고 애썼더니 자녀의 표현력도 크게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한 아이가 ‘비는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라고 표현을 해요. 이슬비겠죠. 왔다 간지도 모르게 살짝 온 거죠. ‘비는 피아노의 높은 음’이라면 어떨까요. 아주 경쾌한, 힘 좋게 오는 비겠고요. ‘그냥’이라는 말로 넘어가지 않고, 이야기를 할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저도 아이의 말을 받아 쓴 것만으로 동시집을 두 권이나 냈어요.(웃음)”
요건 찔레고 조건 아카시아야.
잘 봐, 꽃은 예쁘지만 가시가 있지?
아빠 근데, 찔레랑 아카시아는
이름에도 가시가 있는 것 같아.
(「가시」전문, 『우리 집 한 바퀴』, 10쪽)
모든 아이들이 놀라운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다만 시인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동시를 써낸 것뿐이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리지 말고 조금 더 귀 담아 들어볼 것을 당부했다. 특히 아이가 떼를 쓸 때 아이의 말에 더 귀 기울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떼를 쓰거나 짜증을 낼 때는 대부분 아프거나 몸이 안 좋을 때예요. 그걸 표현하는 건데 어른들은 혼을 내죠. 짜증을 낼 때 더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딸아이에게 한 가지 잘못을 해서 지금까지도 구박을 받는 일이 있어요. 아이가 여섯 살 때 과자를 혼자 먹기에 엄마와 나눠 먹으라고 했는데 끝까지 혼자 먹는 거예요. 과자를 얼마나 안 사줬으면 그랬겠어요. 그걸 모르고 장롱 보고 서 있으라고 했죠. 그 얘기를 지금도 해요. “아빠가 그때 나 농 쳐다보라고 했잖아.”라고요. 지금도 그 얘기만 하면 꼼짝 못합니다.”
매일같이 신나는 일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아빠 산책’을 했다. 이 시간은 그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산책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시인은 산책 시간을 아이에게 꾸준히 말 걸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엉뚱하게 대답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을 존중하고, 귀하게 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상상력이 멋지구나, 라면서 계속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며 상상력 실습을 시작했다.
글은 말로 그리는 그림
“주입식 교육이 이런 거죠. ‘쟁반 같은 달’ 같은 것만 계속 알려줘요. 달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게 돼요. 달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굉장히 멋진 말을 많이 하거든요. 이제 달을 보면 이것 같다, 고 하는 걸 적어보겠습니다. 달은 둥글죠? 둥근 것 아무거나 생각해보세요. 종이에 적어볼 거예요. 그림을 그려도 좋아요.”
같은 달을 두고도 어린이들의 표현은 각기 달랐다. 튜브, 바퀴, 단추, 강아지 코, 달고나, 지구, 블랙홀, 달팽이, 수박 등이 등장했다. 여기에 조금만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대로 시가 될 듯했다.
“환한 색의 튜브를 그렸어요. 달 튜브를 타고 밤하늘을 난다고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아지죠. 아이들의 상상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달 표현하기를 마친 후 박성우 시인은 ‘고맙다’와 ‘미안하다’라는 말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 표현해보기 실습을 이어 진행했다. 시인은 “구체적으로” 써보라는 주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글은 말로 그리는 그림. 마음을 눈에 보이게 말하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도 빌려줄게.”
짝꿍이 지우개를 빌려줄 때 드는 마음.
더러운 손톱을 단정하게 깎아 준 아빠에게
뽀뽀를 해 주고 싶은 마음.
누나가 만들기 숙제를 도와줄 때 드는 마음.
(『아홉 살 마음 사전』, 11쪽 ‘고맙다’ 부분)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본들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시인은 이때 예가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말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떤 감정이 생길 때 아이들에게 그것을 표현하게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핵심은 소통이다. 시인은 “시간이 될 때 자녀와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를 골라서 같이 마음 사전을 써볼 것”을 제안하는 것으로 이날 특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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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저, 김효은 그림 | 창비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박성우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동시로 어린이 독자에게도 사랑받는 박성우 시인이 고른 80개의 감정 표현이 담겨 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
책사랑
201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