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인 시인의 작업실 -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난 열심히 살다가 흉해졌다"는 시인의 말을 건네며 시작하는, 신이인 시인의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작업 이야기.
글 : 박소미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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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를 펼치면, ‘잘못, 실수, 기형, 괴담’과 같은 단어들이 하나씩 무릎 위로 툭툭 떨어집니다. 검은 물방울처럼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썩어가고 있다는, 뒤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읽는 이를 초조하게 만드는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쩍쩍 말라붙은 땅 위에 아름다운 가정이 원활하게 구르기 시작했다.” (「외계인 가족의 시 」, 49쪽)


말라붙은 땅 위를 거침없이 원활하게 굴러가는 아름다운 가족…을 떠올려 봅니다. 거대하고 단단한 구, 오랜 세월에 걸쳐 모난 부분 없이 완벽에 가까워진 구. 매끈한 대형 구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쌩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길 위에 있던 사마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뚱히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마귀의 얼굴. 불안해진 저는 그만 무릎 위에 검은 자국으로 남은 '잘못, 실수, 기형, 괴담' 같은 단어들을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봅니다.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드디어 끝! 👽 단행본 작업을 마친 직후에는 고생했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책이 나오고 한두 달이 지난 요즘은 누워만 있습니다. 시집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휴식기를 보내고 있어요. 출간하고 나면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전반부를 읽다 보면 무엇보다 사랑, 관계, 가족 같은 것들이 가장 무시무시하게 느껴집니다. 사랑, 관계, 가족이라는 영토에 발을 붙이고 있다 보면 “미친 사람과 무지한 사람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순간”(55쪽)이 불시에 찾아들기 때문일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살다 보니 '너 미쳤어?', '그때 네가 미친 줄 알았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것 같아요. 경계 없이 흘러 다니는 해파리처럼 지낼 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확고한 기준을 갖고 바람직한 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의 경계를 짓곤 하니까요. 기준 안팎의 어느 입장이든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부정하게 되는 현상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지, 보다 외계인스러운(?) 시선에서 사람들 전부를 이해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다만 그 욕심에 대해서는 쓸 수 있겠더라고요.

 

구멍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특히 「새」에서는 딱따구리가 내 안에 내버린 구멍 때문에 비로소 쓰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흔히 쓴다는 일은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는 일처럼 여겨지곤 하는데, 혹시 글쓰기가 구멍을 내는 일처럼 느껴진 적이 있을까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몸과 마음을 닳게 해서 글을 쓰다 보니까, 어쩐지 작가로 산다는 게 점점 스스로에게 구멍을 내가며 늙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일까? 구멍이 생기면 바람도 통하고, 귓구멍, 목구멍, 숨구멍이 트이면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있겠지, 싶었어요. 구멍을 뚫는다는 게 상해와 손실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능력을 부여하거나 내면을 해방시키는 기능도 하니까요. 내게 생기는 구멍을 두려워하지 말자! 다짐하는 마음으로 시를 써왔습니다.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시 「젊은 날―우주정류장」은 시인이 외계로 추방된 이후 쓴 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외계로 추방될 수밖에 없었던 연유는 마지막 시 「꿈동산」과 「낙원 없이」에 이르러서야 밝혀집니다. 시간순이 아닌 셈이죠. 이런 배치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이제 책을 덮어야 하는 독자에게, 추방의 감각을 이중으로 안겨줍니다. 첫 시와 마지막 시의 배치는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일까요?

실은 책 제목이 정해지면서부터 급히 쓰게 된 시들이에요. 원래는 시집 제목 후보로 '꿈동산'을 같이 놓고 고민했어요. 제목에 꿈이 들어가는 시가 많은데 우주적인 감성의 시도 많아서, 어느 것이 제목이 되어야 작품들을 잘 아우를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액자식으로 배치해 두 시를 모두 껴안아 보고자 「낙원 없이」를 덧붙였습니다. 「젊은 날우주 정류장」은 「낙원 없이」를 받쳐주는 프롤로그인 셈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입체적인 독서의 경험도 더해주나 봐요. 기쁩니다.

 

시집의 문을 여는 「꿈동산」에서 시인은 ‘사이가 좋은 무해한 글자들’ 사이에 단어 하나를 투척합니다. 바로 ‘못돼처먹은’입니다. 결국 이 단어가 큰 파장을 일으키죠. 왜 많고 많은 단어 중에 ‘못돼처먹은’을 고르셨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 단어를 쥐게 되었을까요...! 찾아보니 이 시는 2023년 5월 『현대시』에 처음 발표했네요. 시기상으로 첫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을 낸 직후였지 싶어요. 첫 시집이 사실 부끄러웠어요. 시에 숨겨놓았다고 생각한 못나고 못된 마음이 물성을 지닌 채 저와 직면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책을 내고도 편하게 소개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무해하겠어요. 나나, 타인을 그대로 인정하고 안아달라고 제 시가 말하고 싶어하는데 그걸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2년 전에는 저 시를 좀 망설이며 발표했습니다. '못돼처먹은 시인들'이라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에. 하하하.)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돋보기와 안경이에요. 눈이 좋지 않아서 글자를 크게 키워주는 도구를 씁니다. 그래도 오타가 자꾸 생겨 민망합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작업 공간을 가질 겸 독립도 하고 싶어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작업실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애칭은 '뒤주'입니다. 작고 귀여운 공간이고, 갇힌 기분도 들어요. 여기서 접이식 소파를 펼쳐놓고 누워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시를 씁니다. 아무 때나요.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수영이요! 책이 나오자마자 평택에 사는 친구의 나무 집에 가서 수영을 했어요. 친구가 멋진 휴양 시설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비가 쏟아졌지만 아주 행복했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시집 만들기처럼 큰 작업을 하는 중에는 다른 콘텐츠를 최대한 안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를 구상할 땐 영화 <로봇 드림>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재밌게 본 모양이에요. 블로그에 감상 기록이 있네요. 특이한 내용은 아니고, 사랑과 관계를 다룬 다소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에요. 원래 뻔한 게 제일 재미있는 법인가 봅니다. 그때의 제가 참 좋아했네요.


엄마는 전축을 틀고 요리와 청소를 했다. 아빠는 현관에 서서 자랑하듯 넥타이를 매고 끌렀다. 아들은 농구를 하고 해외 축구를 보고 울부짖는 남성 발라드를 들었다. 딸은 네일을 하고 다이어트 약을 사고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으러 갔다. 모두의 옷과 모발이 풍성했다. 하나도 괴상하지 않았다.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다. 쩍쩍 말라붙은 땅 위에 아름다운 가정이 원활하게 구르기 시작했다. 옥상은 폐쇄되었다. 거기에 뭐가 자라고 있는지 뭐가 썩고 있는지 뭐가 소리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옥상은 언제나 그들의 위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홈통에서는 끝도 없이 검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구경했다.


비가 점점 더 거세져서 마침내 물의 색깔이 맑아지기 시작했을 때 에이, 이제 재미없다, 누군가 말했다.

(「외계인 가족의 시」 부분,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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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신이인>

출판사 | 문학동네

검은 머리 짐승 사전

<신이인>

출판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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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