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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는 특이하게도 유럽 현대무용계에서 맹활약 중이다.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비 체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팀에 작곡과 연주자로 참여해 월드 투어를 돌며, 한국보단 해외에서 더욱 알려진 예술가이다. 자신이 개발한 술대(거문고 연주 용 가느다란 막대기)나 혹은 활로 연주하는 자신만의 연주법으로 ‘별난, 신선한’ 음감과 연주 행위까지 보여준다. 연주만이 아니라 무용곡 작곡까지 하는 박우재 씨를 춤과 사람들이 만났다. 어떻게 해외에서 그토록 사랑 받는지 알고 싶어서.
박우재가 어떤 분인지 스스로 소개하신다면?
거문고를 전공하고, 거문고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한국적인 멜로디나 정서를 담고 싶긴 한데, 사람도 모두 다르듯이 거문고는 이런 소리가 나야해, 라는 고정관념을 지양하고요. 소리를 어떻게 담아낼지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c)Eastman.
최근 무용과의 협업을 많이 하신다지요?
올해 시디 라비 체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작품으로 The Goteborg Opera에서
첫 작업은 무엇이었나요?
맨 처음에는 공연을 좋아하는 한 소비자가 유별나게 춤이라는 장르가 좋았던 거죠. 첫 작업은 한예종 재학 중인 무용과 학생들을 위해 전통춤 반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기회가 생겼죠. 진짜 일을 하기 시작한 건 바람곶이라는 팀에서 활동할 때, 2006년 LIG 개관공연에서 김남진 씨를 만나면서부터 제대로 된 작업을 시작했고요.
첫 창작품으로 현대무용과 협업했다는 게 재밌어요. 음악적 접근에서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주로 현대무용 쪽 장르를 해왔습니다. 국악예고 재학 중이던 청소년기 시절부터 무용 관람을 즐겼어요. 그때는, 전통 춤의 매력에 사로잡혔죠. 대학에 와서는, 제 성향 자체가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현대무용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부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유럽 현대무용계 공연을 봤는데, 센세이션 하다고 느꼈습니다. 현대무용수들이 가장 앞서가는 것들을 녹여내고 있다고 느꼈고요. 전통춤은 기존에 해왔던 움직임 틀 안에서 음악을 가다듬는다면, 현대무용은 제 음악에 따라 그들이 제 영역으로 들어와 어떤 시도를 하려는 게 흥미로웠어요. 현대무용수는 개인이 무대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무브먼트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거문고로만 연주하나요?
우선 안무가로부터 의뢰받은 ‘의도’가 중요해요. 뚜렷한 틀이 없다면 거문고를 얹고 얹혀서 거문고 음의 부피감을 키우는 작업 방식을 좋아하지만, 특별한 컨셉을 원하는 경우에는 거문고 소리 이외의 소리를 올리기도 하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2004년 LG아트센터에서 있은 세드라베(Les Ballets C. de la B.) 무용단의 <믿음(Foi)>공연을 보고 같이 한 번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체르카위의 안무였는데, 그게 실현되었어요. 지금 투어 돌고 있는 역시 체르카위 안무의
(c)Eastman.
유럽 현대무용계에서 한국의 악기를 사용한다는 게 흥미로운데, 어떤 점에 이끌렸을까요?
거문고는 아주 빠른 속주들이 용이하지 않고, 음색이 약간 둔탁하지만 그런 소리들이 매력적인 악기라고 생각해요. 저와 함께 작업하는 라르비는 흔히 셋팅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이국적이면서도 개성인 강한, 민속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과 친분을 맺고 그들의 음악을 사용합니다. 한국적인 음들이 이국적이지만 이질적이지는 않은 매력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저는 거문고를 연주지만, 한편으론 확연한 전통을 고수하기 보다는 제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한국전통음악으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제 음악으로 소통한다고 생각하고요. 할 수 있는 악기가 거문고이고, 그걸 제가 제일 잘 다루는 음이죠.
거문고를 바이올린을 켜듯이 활로 연주한다고 들었습니다. 연주법의 변화도 시도 하시나 봐요?
활을 쓰는 것도 일종의 장난을 치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연주법이에요. 거문고를 활로 연주하면 현이 명주실이라 줄 꼬임새 때문에 잡음이 생기는데, 거기서 들리는 잡음이 신선했습니다. 국악기 중에서는 거문고가 상대적으로 개량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중인 악기인데, 악기는 원형이지만 연주법을 다르게 하며 새로운 소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고요.
창작에서의 중요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나 창작하기 위해서는 영감만으로, 느낌만으로 만들기는 어렵고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순전히 자기 앨범을 내는 거라면 영감만으로 만들 수 있지만. 안무자가 연출하고 싶어하는 궤를 어떻게든 쫓아가려면 정보들의 조합이 중요하죠. 예술이란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만들기까지의 과정에서 의미와 정보가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오는 거 같아요. 공연에서는 연출자의 안무의도, 분위기, 움직임의 구성, 전체적인 흐름, 공연이 갖는 미학적 특징을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들어진 음악을 주기보다는, 안무가의 연출에 맞게 음악을 발전해 완성시키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 무용계에서는 무용음악 전문가양성을 위해 전공 트랙이 신설되기도 하는데요. 제 생각에는 좀 불필요한 것 같아요. ‘무용음악과 그냥 음악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절대 다르지 않거든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인데, 무용음악이라는 단어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무용계의 프로세스를 잘 알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용전공자들이 음악/조명/영상/메이크업 등 움직임 외 부수적인 것들을 추가로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는데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무지함에서 오는 문제들 같아요. 언제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예술가를 만들 수 있을까요? 테크니컬한 무용수는 만들 수 있지만,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자유로운 개성, 열린 생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이 배제되고 기술적인 것만 취한다면 좋은 무용작품을 만들긴 어렵다고 봐요.
(c)Eastman.
춤을 추지만, 실제 예술가는 드물다는 말이군요?
현대예술은 그 사람이 무슨 작품을 하는지 보러 가는 거 같아요. 어떤 주제를 얼마나 새롭게, 몸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고 여러 가지 매체를 버무려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를 중점으로 보죠. 외국에서는 공연이 끝난 후 어떤 의미였을까? 를 주로 얘기한다면, 한국에서는 왜 쟤는 저렇게 춤출까? 하는 이야기가 많아요. 관객 입장에서 무용작품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아지고 높아져서, 향유하고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무용의 장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잡힌 일정, 계획이 많나요?
9월에는 쿠바의 슈퍼스타 발레리노, 카를로스 아코스타(Carlos Acosta)공연으로 Sadler’s Wells London에 참가합니다. 듀엣작품인데, 의뢰가 들어와서 조만간 벨기에 엔트워프에 가서 창작작업을 할 예정이고요. 올해는 무브먼트보다 극적인 요소와 주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실험적인 단체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윤단비 (click_dance@naver.com)
춤과사람들
월간 <춤과사람들>은 무용계 이슈와 무용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전문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