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중 내가 가장 통이 커지는 날은, 역시나 월급날이 아니던가. 월급날이 25일인 여의도 일개미(나)는 25일에 제일 맛있는 걸 사 먹고, 카트에 담아두었던 책을 3권쯤 산다. 그리고 월급날이 금요일이면 금상첨화이고, 월급일이 주말이라면 앞당겨 받기 때문에 더 기쁜 적도 있더랬다. 잠자는 시간 빼고 얘기가 끊이지 않는 친구들과의 카톡방에서는 월급으로 무엇을 할지 토론이 열리기도 한다. 물론 친구들의 월급날은 15일, 21일, 25일로 각기 다르고, 입금시간도 0시, 오전 8시 입금 등등으로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여의도 일개미인 나, 삼성동 일개미, 강원도에서 일하는 일개미, 공덕의 일개미인 우리는 같은 서러움을 나눈다. 월급이 주는 희열을 논의했으면, 그다음은 ‘나의 월급이 얼마나 빨리 소진되는가’를 논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월급 받고 느끼는 극강의 희열은 5초 정도(좀 더 과장하면 0.5초) 되는 듯한데 입금 앱 푸쉬가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보험료, 카드값, 교통대금 등등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각종 대금이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퍼가요~♡’의 씁쓸함을 가열차게 나눈다. 그리고 나면 적금 얘기, 카페라테 효과 (커피값을 아끼면 생활비도 줄일 수 있다는 말) 등등으로 이어진다. 월급을 탕진하기도 했다가 아끼기도 하고, 적금에 가입했다가 해지하기도 하는 등등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속세에 물든 것 같아서 싫었는데, 이제는 즐겁다. 금융상품 정보 얘기도 주워(?)들으면서, 좀 더 나은 30대를 위한 초석이 만들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끼고 싶지만, 아낀다는 건 절대 쉽지가 않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우리가 ‘돈 쓰는 것만 보면 아무도 거지인 줄 모를 것’ 같다. 이런 우리들의 관심사와 더불어, 김생민의 15분짜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나와 같은 월급쟁이 친구들은 김생민의 지독한 절약습관을 보면서 처음엔 이렇게 생각한다. ‘저렇게까지 살아야 해? 저게 더 스트레스 아니야?’ 라고. 김생민도 스스로 찌질(?)한 절약 방법을 말하면서도, 너무 찌질한 나머지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한다. 아낄 수 있는 모든 수단에서는 아끼지만, 가족 일엔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우리 아빠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김생민이 제시한 걸 다 따른다는 건 아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해서 대리만족하는 걸 수도 있다. 애청자들은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사연을 보며 ‘스뜌삣!(그렇게 돈을 흥청망청 쓰면 STUPID!)’을 함께 외친다. 스스로 거는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 몇 명의 신흥 귀족이 김생민을 조롱했다. 이 조롱에 대해 상당수의 일개미는 분노했다. 김생민이 조롱의 대상이라서 분노한 것이 아니다. 그 조롱의 끝이 향하는 건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기 때문이다. 조롱이 조롱인 줄 모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분노한 것이다. 가계 부채의 질은 사상 최악, 출산율 최하, 물가상승률은 나날이 최고치 등 놀랍지도 않은 사회에서 학자금을 갚고, 주택자금을 갚고, 좋아하는 것을 잠깐 미루기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절실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글픈 개미들은 잠시 분노를 내려 놓고 다시 또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월급날까지 24일이 남았다. 월급의 마법은 들어온 지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24일간 잘 버텨봐야겠다. 세상의 조롱은 무시하고, 우리 모두 알뜰한 소비습관으로 GREAT! 하자.
월급날 만세!
김지연(예스24 굿즈MD)
좋아하는 것에는 아끼지 않습니다.
yogo999
2017.09.04
꼬별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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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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