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과 생리대의 시대
공연히 건강한 아이에게 비타민이나 보약을 먹이거나, 키를 키운답시고 정체불명의 건강식품, 또는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냥 두는 편이 낫습니다.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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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피하자는 이야기


살충제 달걀에 이어 발암물질 생리대가 논란입니다. 따지고 보면 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이 건강을 위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새집 증후군’이란 말이 나온 게 20년쯤 전이지요. 그 뒤로도 먹거리에서 중금속이나 유해한 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즐거운 개탄’ 이상의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지요. 상황을 바꾼 것은 가습기 살균제입니다. 정부와 기업을 믿고 썼던 제품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몸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본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물질이었기에 정확히 어디까지가 그것으로 인한 피해인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그 뒤로 미세먼지와 ‘햄버거병’ 사태를 거쳐 이제는 달걀과 생리대까지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니 참 기가 막힙니다.

 

비난의 화살은 정부를 향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논평 <식품 안전성 위기, 보건당국은 왜 안 보이나>를 인용해 봅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6053)

 

- 한국에서 식품첨가물로 허가된 품목은 화학적 합성품만 370종 이상 
- 올해 초 구제역 방역 대상이 된 장소가 축산농가와 도축장을 포함해 22만 개
- 이번에 검사 대상이 된 산란계 농가만 전국적으로 1,239곳
- 농촌진흥청이 올 상반기에 새로 보급한 농약이 51품목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이 370종이니 피부에 닿는 옷이나 생리대, 휴지나 기저귀, 몸에 바르는 화장품과 피부’관리’용품, 매일 쓰는 생활용품, 집이나 건물에 쓰이는 화학제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화학물질의 위험을 낱낱이 밝히고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능력을 넘어섭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체의 문명을 거부하고 옛날로 돌아가야 할까요?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갓 쓰고 도포입고 직장에 걸어 다니거나, 돌화살로 짐승을 잡으러 산을 누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40대에 그쳤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간답시고 백신접종을 피하거나 현대의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금 당장 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단 느리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아토피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부가 건조해진다는 겁니다. 단순하게 대처하라는 건 수많은 보습제 중에서 향이 없는 제품을 선택하라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향 기나는 물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향은 원초적인 감정과 연결되기에 상품성을 높이는 데 요긴합니다. 그런데 향기가 나려면 상품의 포장을 벗겼을 때 향을 내는 분자가 공기 중으로 퍼져 우리 코로 들어와야 합니다. 휘발성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쓰는 겁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생리대에 쓰인 물질입니다.

 

생리대뿐일까요? 향이 나는 섬유나 화장품, 방향제, 세제, 생활용품 등에 널리 쓰입니다. 물론 화학물질이므로 규제도 하고 허용기준도 있습니다. (허용기준이 없는 물질도 있고, 산업적 사용은 환경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지만 일단 생활 주변 얘기만 해봅시다.) 하지만 워낙 널리 쓰이다 보니 수많은 물질이 우리 몸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런 경우에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되도록 피하자는 거지요. 사실 Do Somethingism, 즉 뭔가 해주는 것보다 그냥 두는 것이 나은 경우가 많다는 건 의학의 오랜 진리입니다. 공연히 건강한 아이에게 비타민이나 보약을 먹이거나, 키를 키운답시고 정체불명의 건강식품, 또는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냥 두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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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거꾸로 옛날로 돌아가자는 주장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였지요. 약으로 상징되는 현대의학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무리하게 밀고 나가다 보니 보습제고 로션이고 바르지 말자, 약도 바르지 말자고 했던 겁니다. 뭔가 특이하고 대단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거짓말이란 한 번 하면 점점 큰 거짓말을 해야 막을 수 있습니다. 일단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고 나니 열이 많아서 그렇다, 긁어서 피부에 큰 상처가 나면 열이 빠져 나가니 더 좋다, 이런 식으로 점점 배가 산으로 간 겁니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 느리고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덮은 상황에서 창문을 닫아 걸고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별 도움이 안 되지요.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법입니다. 위험이 일상화된 모습은 두렵고 참담하지만, 반도체를 만들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나 원전 주변에 암 유병률이 높다는 통계에 무감하던 시민들이 뭔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친환경 농법으로 닭을 키우던 농장의 달걀에서 DDT가 발견되어 큰 충격을 던졌지요. 70년대까지 사용했던 DDT가 반 백년이 지나도록 토양에 잔류했는지, 현재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이 허용된 지역에서 글로벌화된 교역의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들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편리에 길들여져 위험에 무감각해진 우리 자신을 일깨워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고, 새로운 삶의 방편을 모색하지 않으면 위험은 기나긴 시간과 머나먼 공간을 가로질러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점은 확실히 입증된 셈입니다.

 

우리는 자유무역, 시장경제, 효율성, 경제성 같은 말을 신봉합니다. 여기에 반기를 들면 불온하거나 심지어 대역죄라도 짓는 것처럼 생각하지요. 원전을 폐쇄하고 태양과 바람의 힘을 이용하자고 하면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비웃고, 동물복지를 외치다가도 고기를 덜 먹으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고, 돈을 조금 더 내고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물건을 쓰자고 하면 지갑을 움켜쥡니다. 하지만 생존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그걸 보장해주지 못하면 자유무역이고 시장경제고 죄다 쓸데없는 겁니다. 지금 원전을 닫고, 조금 덜 먹고, 불편해도 무엇이든 아껴 쓰며 좀 쩨쩨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인 우리의 생명과 아이들을 내주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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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