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스릴러 『더블』과 『악의 - 죽은 자의 일기』를 통해 “놀라운 페이지터너(page turner)”라는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의 유망주로 떠오른 정해연 작가의 신작 소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흡인력 있게 다루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절도, 실종, 사망 등 다양한 사건들을 트릭에 집중하여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단편집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쾌한 일상 미스터리 소설이다. 만사가 귀찮고 무엇에도 참견하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우수한 수사 감각으로 사건을 족족 해결해가는 주인공 캐릭터는 다분히 매력적이며 그를 둘러싼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도 연신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가는 프로다. 글을 쓰는 얼개가 뚜렷하며, 작의를 은밀하게 드러내는 법을 안다.”는 심사평과 함께 예스24에서 주최한 e-연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해연 작가와 만나 작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사실 아파트에 얽힌 황당한 이야기는 더 많지만
데뷔작 『더블』과 전작 『악의 - 죽은 자의 일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추리 소설입니다. 경쾌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파트의 이야기를 쓰기로 생각한 이후로 무거움을 조금 덜어내자고 콘셉트를 잡는 초반부터 생각했습니다. 아파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기에 너무 무겁고 공포스럽게 표현하는 것 보다는 정말 지금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현실감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담패설을 일삼는 아주머니들이나, 슬리퍼 끌고 다니는 남직원 같은 캐릭터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캐릭터잖아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추구하다 보니 그런 캐릭터가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밝아지더라고요.
주인공 정차웅과 강주영 사이의 묘한 기류와 신경전이 또 다른 재미로 읽히는데요. 이런 관계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원래 이 이야기는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5]에 단편으로 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여자였고, 형사가 남자였는데요. 이걸 장편으로 만들다가 둘의 성별이 바뀌었습니다. 관리사무소의 여직원은 경리직원 정도인데, 경리직원이 관여하는 업무가 한정적이다 보니 둘의 성별을 바꿨지요.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가 얽혀 있어서 로맨스가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친구이기도 하고 과거 때문에 미운 감정도 있는 양가적 감정을 두 사람 모두에게 주었더니, 알아서들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묘한 기류를 타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소설은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양각색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아파트’는 어떤 공간인가요?
삶과 공포가 맞닿아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긴장하게 되고, 복도에서 처음 보는 남자와 마주치면 두려운 감정이 들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만 봐도 그렇잖아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갑질 논란이나,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쉬쉬하기도 하고, 시장에 형성된 가격보다 싸게 부동산에서 내놓으면 부녀회에서 난리 나는 아파트도 있다고 하죠. 고양이 카페에 가서 고양이를 만지는 것은 좋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싫고. 그러면서도 또 살기에는 아파트만한 곳도 없다고 말해요. 정말 독특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 중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 있는지요?
크게는 102동 12층 복도 투신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에요. 12층에서 한 여성분이 투신했는데 지문 검색이 안 나왔다고 해요. 그 아파트 입주민도 아니었고요. 왜 15층 건물인데 12층 복도에서 뛰어 내렸을까. 지문도 안 나오는 그녀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서 발전된 이야기죠.
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이 많아서 미화원 분들이 힘들다는 이야기에서 발전된 스토리가 오물테러 사건이에요. 작게는 102동 1207호의 피해망상증 환자가 자기가 움직일 때마다 호루라기를 분다는 이야기나, 자신이 출장 간 동안 아내가 집을 나가면서 써놓은 편지를 읽어달라고 관리소에 전화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아파트에 얽힌 황당한 이야기는 더 많지만 소설에 썼다가는 ‘말도 안 돼!’하는 반응을 얻기 십상이라.. 하하하.
방문교사 실종사건에서 시신의 사망일자가 모호한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진 강원도 우물 속 시신사건을 보고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에요. 우물 속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습하고 서늘한 공간이라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일을 밝힐 수 없어 부검을 통해 위에 남아 있던 음식물로 사망일과 사망시각을 추정했죠. 그걸 보면서 사망일을 누군가 조작하기 위해 실종 당일에 먹었던 음식을 먹이고 죽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것이 사람이 죽은 사건일지라도 그저 하나의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인공 정차웅의 태도를 통해 작가님께서 하고 싶은 말, 혹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 느끼셨던 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건 아파트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경찰차가 돌아다니면 무슨 일이 있나 기웃거리고,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잖아요. 나의 일이 아니면 흥미가 본위일 수밖에 없어요. 결혼한 친구가 좋지 않은 얼굴이면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그 물음이 정말 100퍼센트 걱정에서 출발한 것이냐고 한다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궁금증은 흥미에서 출발한 것이에요. 『더블』에서 저는 이런 말을 썼어요.
“남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내가 더 잘됐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남이 잘못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들.”
그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제가 너무 인간을 추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하하. 작가 소개에도 주로 쓰는 말이지만 저는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이나 표현이 이기심에 자율적 제동을 걸어주거나 경계할 수 있는 시초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관리비 인상 때문에 경비실의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에 대한 논란이, 우리는 그러지 말자, 라며 자율적으로 경비실 에어컨 달기를 시행하는 아파트가 생기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처럼요.
많은 분들이 아파트에 살지만 관리사무소 안의 삶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관리사무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주인공의 직장을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죠. 저는 이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했습니다. 그걸 알게 되신 선배 작가님께서 아파트에 관련된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면서 단편을 쓰게 된 것이 계기에요. 생각해보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아파트 사람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면서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면 관리사무소 사람들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쓴 덕분에 YES24에서 상도 타고 책도 출간할 수도 있었으니, 그 선배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요.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준비하고 계시는 작품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소재는 죽음을 욕망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요. 가족만큼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집단도 없는 것 같아요. 가장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보호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을 배신당했을 때 가장 잔인한 상처를 남기는 것도 가족이죠. 가족 사이에서 ‘나의 죽음’과 ‘너의 죽음’을 바라고 욕망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jijiopop
2017.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