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배제한 개인의 건강은 없다
그는 사회역학자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을 한다. 병리학자가 인체 조직을 통해 원인을 찾고, 정신과 의사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찾는다면, 사회역학자는 인구통계, 경제지표, 작업장의 실태와 같은 숫자로 이루어진 팩트를 통계로 분석하여 규명하는 일을 한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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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의학적 관점’ 


어떤 진통제로도 호전이 되지 않는 만성 통증 환자가 있다. 수년 동안 통증클리닉에서 주사 요법, 신경차단술, 마약성 진통제 등을 복용했지만 잠깐 좋아졌다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직장을 그만둔 지 몇 년이 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 내 갈등도 높아졌다. 우울과 불면이 심해져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 사람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한다고 해도, 지금 그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과 24시간 괴롭히는 통증이 존재 하는 한 기분이 좋아지는 데에는 아무리 좋은 약과 상담이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이 “더 노력해라. 네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누구는 더 아픈 데도 일을 하더라”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자책을 반복하며 심리적 좌절감은 더해진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매년 서류를 내야 하는데 아직도 중증 질환을 앓고 있어 근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본인이 증명을 해야 한다. 몸이 좋아지면 그나마 받고 있는 혜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심리적 딜레마에 처한 것도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사회가 도우려는 복지 혜택조차 어떨 때에는 그의 미약함, 문제점을 본인이 입증하라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고전적 의학모델에서는 환자 개인의 심신에만 집중한다. 협심증은 심장의 혈관이 막힌 것이니 뚫거나 스텐트를 넣으면 되고, 폐렴은 폐에 세균이 침투해서 염증을 일으켰으니 원인균을 찾아서 그에 맞는 항생제를 쓰면 된다. 의사가 할 일은 여기서 끝난다. 덕분에 21세기 의학은 엄청나게 발달했고, 평균 수명도 올라갔다. 이제는 몇 가지 암은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환자를 여럿 만나고, 다양한 상황들을 접하면서, 이제는 사람 개인에게만 포커스해 온 현대의학적 질병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점검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바로 위의 사례와 같은 사람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되고, 치유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 의학기술의 발달로 세균, 난치성 암 조직과 같은 의학적 원인의 장벽은 낮아져 가지만, 반대로 공고한 사회환경적 장벽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의학적 관점’이다. 질병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질병과 인간, 질병에 걸린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발병과 같은 산업의학적 접근뿐 아니라, 경제적 빈곤과 자살률의 증가와 같은 경제적이고 거시적인 접근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치료자인 의사 쪽 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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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질병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원인을 찾아 그 해결책을 제시해야

 

반갑게도 한국의 사회의학자 김승섭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사회역학자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을 한다. 병리학자가 인체 조직을 통해 원인을 찾고, 정신과 의사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찾는다면, 사회역학자는 인구통계, 경제지표, 작업장의 실태와 같은 숫자로 이루어진 팩트를 통계로 분석하여 규명하는 일을 한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외국 역학 연구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원진레이온, 소방공무원 작업환경, 성소수자의 건강과 같이 그가 그동안 해온 생생한 한국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건강문제의 현재를 소개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7월 한 달 사이에 700명이 숨졌다. 미국 전체에서 평균 매년 400명 정도가 사망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에 연구자들이 원인을 연구해 보니, 타고나게 더위에 취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가난해서 에어컨이 없는 사람,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이 고립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3배 이상 사망위험도가 높았다. 시카고란 도시의 삶이란, 환경의 척박함이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4년 후 폭염대피소를 열고 그곳까지 접근할 무료 버스를 운영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더 나아가 경찰과 공무원이 혼자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여 건강상태를 체크하게 하였다. 덕분에 99년의 폭염에는 1/4로 사망률이 떨어졌다.

 

더위가 이랬다면 굶주림은 어떨까?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감비아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갈린다. 지난 50년간 상대적으로 식량이 넉넉한 건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우기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서 40세가 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다. 산모가 임신중에 태아에게, 또 아주 어린 영아기에 적절한 영양이 제공되지 않은 것이 40세 이후 생존률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에 독일의 포위로 몇 달간 하루 800칼로리만 섭취할 수 밖에 없었던 네덜란드에서 이 시기에 태아로 있다가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건강상태 추적에서도 드러났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높았던 것이다.

 

이를 ‘절약형질 가설’이라 하는데, 임산부 엄마가 부족한 칼로리를 받으면 한정된 영양을 필수적인 뇌와 같은 곳에 주로 공급하고,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췌장의 발달에는 덜 공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성인병에 걸리더라도 일단 태어나게 하는 것,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사회적 경험은 내 몸 안에 새겨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강력한 주장이다.

 

여기까지 읽고 ‘아 역시 태교가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을 듯하다. 저자는 그런 자의적으로 확대된 해석을 경계한다. 그는 무엇보다 데이터에 기초한 생각을 해야하고,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을 합리적 의심을 하면서 관찰하고,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변명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질병의 문제를 개인의 이슈로 국한해서 보려는 기본적 태도를 가진 것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잉태된 것이라 밝힌다.

 

하버드대학의 낸시 크리거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1953년 DNA구조가 발견되면서 질병과 건강의 유전적 원인이 획기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2차 대전이후 소련과 냉전으로 서구에서는 사회주의국가와 대치하면서 개인이 아닌 사회적 구조의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접근법에 대해서도 메카시즘적 공격이 우려되어 급격히 위축되었던 점이 지금의 질병 관점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냉전이 끝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에서 자기계발의 열풍이 끝난 후, 이제 사람들이 다시금 사회의 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로소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2000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이 미군의 걸프전 참전 군인보다 높은 점을 지적하며 한국의 사회적 불안정성을 비판한다. 그리고, 폐쇄적이고 보수적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열악한 인권과 정신건강 문제를 사유적이고 당위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와 팩트를 기반으로 한 연구로 객관화 시키고, 공론화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활동으로 삼고 있다. 의대를 들어갈 때 누구나 희망했을 임상의사의 길을 떠나 그는 개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질병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원인을 찾아 그 해결책을 제시해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빅픽쳐를 그려온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의사나 대중이 상시적으로 경험하는 개인화된 질병 모델의 한계로 인한 좌절을 극복하는데 필수라고 생각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이 최대의 강점이다. 외국의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것도 전문가가 충분히 이해해서 알기 쉽게 잘 소화해서 전달하며, 더욱이 구어체로 쓰여있어 마치 저자가 내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듯한 친숙함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아무리 건강해지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사료를 먹는다고 해도 어항의 물이 더럽다면 곧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우리가 내 한 몸과 마음, 가족의 건강만 잘 지켜나가면 된다고 여긴다고 완벽한 성공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숨쉬는 이 곳의 환경이 어항의 물과도 같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관점을 전환을, 서로 다른 영역이라 생각하기 쉬운 사회와 의학의 접점을 주는 반가운 책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저 | 동아시아
혐오발언, 구직자 차별, 고용불안, 참사… 사회적 상처는 우리 몸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데이터가 말해주는 우리가 아픈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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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