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은총 없는 신과 절망하는 인간, 당신은 이 세계를 끝장낼 것인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한복음 14:22)
글 :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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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저 | 래빗홀



나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회 유년부 시절엔 ‘어린이 전도왕’으로 상을 받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기독교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교회 집사였던 부모와 반목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장 오래된 기도 제목은 언제나 ‘당신의 존재가 믿어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나는 배교자가 됐다. 이유는 간명했다. 삶이 죽음 이후 맞닥뜨릴 심판을 위해 복무한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고통이 하느님의 무심이 아니라 다만 인간 저마다의 탐욕 때문에 비롯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나에게는 납득 가능한 진리였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구원이란 요원하고 세계의 비참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단요의 장편소설 『피와 기름』을 읽으며 나는 아주 오랜만에 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가룟이 아닌 유다가 그랬듯, 다시 물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한복음 14:22) 

 

이야기는 서른네 살 무직자 우혁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도박중독으로 부모를 실망시키고 자기 인생도 시궁창으로 만든 인간. 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10대 시절, 우혁은 백운산 계곡 물에 빠져 죽었어야 했다. 죽을 ‘뻔’ 했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물리 법칙에 따르자면 죽는 게 합당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를 어느 소년이 나타나 기적처럼 살려냈다. ‘오늘의 일은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소년은 사라졌고 이후 우혁은 끝간 데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스릴 중독자가 된다. 도박은 삶과 죽음 경계에서 우혁이 찾아낸 일종의 타협안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막장 인생을 살던 우혁에게 오래전 친하게 지낸 김형이 전화를 걸어온다. 김형은 자신이 운영하는 강남의 한 입시 논술 학원의 보조강사 자리를 제안하고 우혁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그런데 학원에 출근한 첫날, 오래 전 그 소년이 다시 우혁 앞에 나타난다. 신비한 능력으로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 사고 팔 주식까지 정확하게 예지하는 소년의 이름은 ‘이도유’. 세간에 따르면 그는 1999년 12월 31일을 세계의 마지막 날로 예언하고 이를 믿고 따랐던 서른 두 명의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로 이끈 ‘새천년파’의 교주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그 소년이 우혁의 앞에 다시 나타나 이번에는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도유는 두 집단에게 쫓기고 있다. 먼저는 20년 전 집단 자살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꾸린 ’치리회’다. 이도유가 재림 예수라 믿는 이들은 그가 메시아로서 종말을 예언해 놓고도 그걸 실현하지 않아 세계의 구원이 미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구원’이란 “전 세계의 기근과 빈곤, 질병, 전쟁, 그로 인한 분쟁과 슬픔과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종말을 불러오는 일이다. 그러려면 재림 예수를 죽이고 다시 심판이 시작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반대편에는 성공한 기업가 조강현이 있다. 신학도 출신으로 한때 이도유를 추종했던 그는 이제 다른 신념을 따른다. 그는 “풍요로운 이들에게서 돈을 걷어 배고프고 주린 자들을 거둘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보다 좋은 곳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지금의 고통을 내버려두지 않을, 세상을 바로잡을 새로운 신의 대리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신권통치’다. 

 

이도유를 돕던 우혁이 치리회와 조강현 사이를 오가면서 이야기는 점차 전모에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우혁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한다. 

 

“신은 셈법 바깥의 은총을 내리는 존재이므로 이 세계에 거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자뿐이다. 따라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동시에 죽도록 내버려둔다.” (381쪽)

 

이 잔인한 진실 앞에서, 굶주리는 수 백만명의 어린아이와 탐욕 속에 살찌는 자본주의가 동시에 존재하는 부조리 앞에서, 신은 무심하고 인간 개별은 무력하다. 그런데 만일 세상의 운명을 정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그를 설득할 자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불평등한 고통을 끝장낼 것인가? 아니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이 세상이 비참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견디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다면 구원은 과연, 죽음인가, 아니면 삶인가?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는 논리들을 설득시키는 건 짧고 긴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다. 정확하게 투입된 단어와 문장이 묘사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대환난’이라는 상황마저 납득하게끔 한다. 햄버거 가게의 자동문이 순금으로 변하고 랄프 로렌 등 각종 상표명이 불타는 묵시의 환각에서는, 독자인 내 상상력의 협소함이 억울해질 정도다. 

 

한편으로 대치동 학원가가 소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소설의 독특한 힘이 생겨난다. 영미권의 어느 걸출한 스릴러 작가가 이 소설을 다시 쓴다 해도 한국, 대치동, 학원가라는 무대를 이토록 적절히 활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단요 작가는 사교육 현장을 취재한 논픽션 『수능 해킹』을 출간하기도 했다.) 작가의 시선이 머문 곳이 대치동이 아닌 여의도나 광화문이었다면 그곳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가 됐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재능은 압도적이다. 

 

요컨대, 『피와 기름』은 정밀하게 설계된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초자연적 현상과 허구적 세계를 통해 철학, 신학, 윤리학, 정치학을 탐구하는 사변소설이다. 영화 <맨 프롬 어스>의 형식을 닮은듯도 하고, 오래 전 천명관의 『고래』나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었을 때의 얼얼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영미권의 유명한 신학 스릴러 작품들 계보에 놓였다가도, 신이란 존재를 정면으로 겨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옆자리도 적절할 듯싶다. 그러나 전부 충분하지 않고, 결국엔 단요 그 자신의 계보로만 설명될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2022년 데뷔한 이후 3년간 논픽션, 청소년 소설, SF, 스릴러 등 장르를 넘나들며 13권의 책을 냈다. 『피와 기름』은 그의 11번째 책이다. 3개월에 한권 꼴. 이 비현실적 숫자들 앞에서 나는 흡사 신을 증거하는 메시아의 권세에 압도된 맹목적 신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제 나는 어린 시절의 신에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라는, 다른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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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출판사 |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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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