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여정 “어쩌면 답이 있다는 건 사랑이 아닐지도”
글쎄요. 여전히 저는 묻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뭘까.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을 다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이라는 건 일종의 가설일 뿐이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2018. 01. 11.)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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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현

 

 

은희경의 『새의 선물』, 전경린의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천명관의 『고래』 등 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의 첫 장편소설을 탄생시킨 문학동네소설상의 스물세 번째 수상작 『알제리의 유령들』이 출간되었다. 문학동네소설상은 올해부터 경장편 소설 공모인 문학동네작가상과 통합 운영되면서 어느 때보다 열띤 관심과 호응 속에 심사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경쟁작을 제치고 상을 거머쥔 올해의 주인공은 소설가 황여정이다. 그는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연쇄 혹은 세련되고 효율적인 구성”(심사위원 은희경)을 무기로 압축된 문장과 그 사이사이의 여백에서 ‘이야기되지 않은 것’이 전하는 울림을 최대치로 증폭시켜냈다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는 것과 나는 모르지만 너는 아는 것은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둘 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황여정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을 성기게 교직하여 빈칸으로 남아 있던 삶의 풍경들을 희미하게 그려나간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그렇게 채워진 풍경 위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애틋한 관계들을 아슬아슬하게 연결해낸 가슴 저릿한 소설이다.

 

황여정 작가는 1974년 서울 출생. 전라남도 해남과 광주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20대 후반에 서울로 돌아왔다.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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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은 시간들이 반영된 결과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곳곳에서 기사가 쏟아졌지요.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선생님의 ‘문인 DNA’였습니다. 황석영, 홍희담 선생님께 작가로서 받은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정확히 딱 어떤 점이 그렇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처럼 저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봅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뭔가를 억지로 시키거나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막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제가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점이 그것이에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충고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혹은 하기 싫다고 하면 대부분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셨어요. 두 분이 작가여서 그랬다는 생각도 들고 그저 두 분의 타고난 성향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재능보다는 그러한 환경 자체가 저에게는 더 중요했다고 봅니다.


독자들은 자연스레 『알제리의 유령들』 속 에피소드가 선생님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하는 듯합니다. 어떤 자전적 경험들이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는지 몇 장면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무관할 수 없겠지요. 『알제리의 유령들』은 모두 제가 겪은 시간들이 반영된 결과일 겁니다. 있는 그대로 구현된 장면이 있는 건 아니라서 따로 꼽긴 힘들지만, 거의 모든 장면들이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이 변형된 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칠현회’의 이야기는 인물과 사연이 모두 가상의 것들로 변형되어 있지만, 그러한 일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런 일들로 고초를 당하고, 그래서 이전의 삶을 잃어버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어릴 땐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모른 채 보고 들었다가 나중에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기억들과, 그 기억들을 안고 이후의 삶을 살아오면서 제 안에서 일어난 변화 같은 것들이 소설에 담겼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알제리의 유령들』에 등장하는 가장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은 바로 마르크스인데요. 소설의 중심에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등장시키게 된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책 제목은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일단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요. (웃음) 저는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에서 ‘유령’을 제목으로 가지고 온 것이고, 그 문장 속의 ‘유령’이 뜻하는 내용까지 가지고 온 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학자이며, 그런 점에서 그의 저작은 우리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을 위해 읽어야 하는 여러 고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인 『자본론』을 읽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굉장히 훌륭한 학자이며 동시에 가슴이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 독후감이며, 따라서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독후감 자체가 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을 그리자고 마음먹고 보니 그의 이름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E. 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것만으로도 ‘사람’이 아닌 ‘빨갱이’가 되었던 시절을 대표하는 이름으로서 그를 불러온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절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 또한 어떤 시절을 살아낸 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서로 다른 서술자의 시선으로 쓰인 단편적인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 방식으로 어떤 효과를 주고 싶으셨던 것인지요.

 

어떤 효과를 주고 싶었다기보다는, 저의 성장 과정이랄까, 저의 변화 과정이랄까를 그대로 담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성장 과정일 수도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일단 어릴 때는 모든 일들이 자기중심적으로 경험됩니다. 좀더 자라서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 좀더 자라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삶이 모두 맞물려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 모든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금 자신의 삶이 이해되고 그럴 때 타인의 삶도 이해되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과정이 뭔가 뒤늦게 비밀이 풀리는 과정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그랬거든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을 다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 아닐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그 말씀을 접한 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방황하는 ‘징’, 그리고 같은 아픔을 안은 채 그를 바라보는 ‘율’의 애틋한 관계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는 걸 느꼈습니다. 사랑에 대한 선생님의 지론을 조금 더 청해 들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여전히 저는 묻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뭘까.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을 다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이라는 건 일종의 가설일 뿐이고,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답이 있다는 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답은 답일 뿐, 그것이 내가 가닿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답이 명확할수록 대상은 그 답에서 소외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답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계속 묻고 답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태도 자체가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을 겪은 후 풋풋한 연인이었던 ‘율’과 ‘징’은 이십여 년의 시간 동안 각자의 장소에서 헤맸습니다. 그리고 이제 ‘율’이 ‘징’이 사는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지요. 두 사람이 만나게 될지, 만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독자의 상상이 이어 써줄 텐데요. 선생님께서도 내심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상상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 질문을 받고서야 처음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해보았네요. (웃음) 여러 가지 장면들이 떠올랐고 그 모든 장면들이 모두 말이 된다고 여겼지만 결국엔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게 되네요. 그들이 얼마나 함께 있었을지, 함께 있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율은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고 징은 핀란드에 남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다시금 장편소설 한 편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줄이기로 합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알제리의 유령들』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고 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좀더 좋은 소설로 보답하겠습니다.

 

 

 


 

 

알제리의 유령들황여정 저 | 문학동네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는 것과 나는 모르지만 너는 아는 것은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둘 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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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