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로 읽는 세상] 미터에서 광년까지
아침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바로 무언가를 ‘재는’ 일이다.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를 점검하고, 버스의 주행 속도, 가속도,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와 시간을 파악한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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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실은 전부 단위 때문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저자는 난생처음 0점이라는 기막힌 점수를 받는다. 전자기학 중간고사에서였다. 아무리 봐도 시험 준비가 0점을 맞을 정도는 아니었고, 분명히 답을 맞게 써 낸 것도 있는 것 같아 이의를 제기하자 노 교수는 이렇게 일갈했다. “단위를 표기하지 않았잖아. 10과 10V가 어떻게 같은 것이냐?” 단위를 우습게 보았다가 호되게 당한, 썩 즐겁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일이야 지나고 나면 웃으며 회상할 수도 있겠지만, 단위를 소홀히 했다가는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83년 7월 23일, 61명의 승객을 싣고 캐나다 몬트리올을 떠나 에드먼턴으로 향하던 에어캐나다 항공사의 최신형 여객기 보잉 767은 연료 부족으로 김리 공항에 불시착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장의 뛰어난 조종 덕택에 10명만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거듭 연료량을 점검했는데, 어떻게 비행 도중에 연료가 바닥날 수 있었을까?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항공 산업은 미국의 지배력이 압도적이어서 미터법이 아닌 (미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야드파운드법 단위계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보잉 767 기종은 개발비 절감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일본, 이탈리아 등 미터법을 사용하는 나라들과 공동으로 개발, 미터법을 기반으로 제작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연료량도 미터법 단위인 킬로그램 단위로 파악했어야 하지만, 야드파운드법에 익숙한 기장은 연료점검봉에 찍힌 수치를 파운드 단위를 쓸 때처럼 환산했고, 그 결과 실제보다 두 배가 넘는 연료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 예를 들어 1리터의 연료가 주입되었다면 중량으로는 0.8킬로그램의 연료가 들어간 것인데, 기장은 파운드로 무게를 계산할 때처럼 1.77을 곱했고(1킬로그램=1.77파운드), 1.77킬로그램의 연료가 주입된 것으로 착각해버린 것이다.


1999년 9월, 나사의 화성기후궤도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중 불타버린 것도 탐사선 개발업체인 록히드 마틴사와 나사의 정보 교환 과정에서 양쪽이 사용한 단위가 달랐던 것이 원인이었다. 엉뚱한 값이 두 조직의 관제소 사이에 오갔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무려 1억 2,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한 사업이 ‘고작’ 단위 착오 때문에 수포로 돌아버린 것이다.


단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특히 항공 산업 분야의 예가 대표적인데, 1976년에 취항한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여객기가 높은 유지비용 탓에 상업적으로 전혀 성공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나, 보잉 787 드림라이너가 어이없게도 부품 결합 나사가 확보되지 못해 애초보다 3년이나 인도 일정이 늦어진 것은, 개발과 제작에 참여한 국가와 기업들이 서로 다른 단위계를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단위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

 

이처럼 단위는 문제가 불거져야 비로소 주목을 받지만, 실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이며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임을 이 책은 많은 흥미로운 예를 통해 보여준다. 아침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바로 무언가를 ‘재는’ 일이다.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를 점검하고, 버스의 주행 속도, 가속도,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와 시간을 파악한다. 방 안의 밝기, 미세먼지의 농도, 옷의 빛깔과 촉감 등을 파악한다. 지금도 우리는 활자의 크기, 주변의 온도와 습도, 들려오는 소리의 크기를 감지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일상은 이러한 측정 행위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측정의 대상이 되는 물리량에 대한 지식의 결정체가 바로 단위이며, 오늘날 인간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얼마나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단위들에 대한 정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오늘날 인간의 각종 활동들은 대체로 단위라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상거래에서는 거래 당사자끼리 교환 대상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량형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고파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도량형은 가장 기본적인 도구,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소통의 도구

 

단위 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저자의 뼈아픈 경험에서 볼 수 있듯, 객관성과 확실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숫자조차 단위가 없으면 무의미해지고 만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단위이다. 단위가 함께할 때 비로소 숫자를 통한 객관적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통의 도구인 단위가 사람들마다 다르다면 소통에 애를 먹게 되는 만큼, 단위를 통일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진시황의 가혹한 도량형 통일이 그러했고, 프랑스대혁명 당시 혁명정부가 미터법을 도입한 것도 이와 같은 통일 노력의 소산이었다. 변하게 마련인 인공물보다는 불변의 것을 기준으로 삼고자 ‘자연표준’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일례로 1미터는 ‘자연물’인 지구 자오선의 4천만분의 1로 정의되어 미터원기가 만들어졌고, 이후 ‘자연물’인 빛의 파장으로, 다시 빛이 일정 시간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된다. 지금은 미터법을 발전시켜 만든 ‘국제단위계’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표준 단위계로 사용하고 있는데, 국제단위계의 7가지 기본단위 중 6가지가 자연표준을 따라 정의되었으며, 유일하게 인공표준(킬로그램원기)에 따라 규정된 질량도 곧 자연표준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구약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에 견주어, 국제적으로 단일한 단위계를 구축하려는 ‘국제단위계’는 첨단과학을 손에 쥔 현대인이 ‘다시 짓는 바벨탑’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을 보는 멋진 창

 

이 책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통의 기준이 어떤 식으로 삶에 녹아들어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인간이 자연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이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단위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도구였던 만큼 역사가 길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문화권마다 다양한 단위가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왔다. 어떤 단위는 생명력이 길지만, 그렇지 못한 단위도 많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단위가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했던 단위도 물론 있었다.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단위가 있는가 하면, 공권력이 아무리 사용을 강요해도 사람들이 외면한 단위가 있었다. 또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한 도구라는 특성 때문에 단위에는 그 사회의 다양한 측면이 투영된다. 이 책은 단위라는 창을 통해서 바라본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터, 제곱미터, 킬로그램, 연, 일, 시, 분, 초, 인치, 킬로와트, 캐럿, 브릭스, 포인트, 평... 이 무수한 단위들은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을지 궁금한 청소년은 물론, 일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단위들, 그리고 그 단위들로 구성된 세계에 관해 호기심을 품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는 분명 제품 라벨에 적힌 내용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될 것이고, 일상을 이전과 달리 보게 될 것이다.

 

 

 

 


 


 

 

단위로 읽는 세상김일선 저 | 김영사
세계에 대한 인간 지식의 결정체이며 문명을 이룬 도구이자 더 분명한 소통을 위한 엄밀하고 보편적인 언어인 단위, 그 멋진 창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세상살이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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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