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첫 방송된 JTBC <착하게 살자>에 대한 평은, 점잖게 말해 미지근하다. 방송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이라고는 “조금 더 지켜보자”가 전부인 상황에서, 유의미하게 호평을 받은 구석은 제작발표회에서 유병재가 던졌던 농담이 유일하다. “‘YG에서 연예인들을 감옥에 보내는 건데 왜 나랑 진우가 가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말고도 YG에 갈 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내가 가야 하는 거지?” 모두가 입이 간질거렸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유병재는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을 곁들여 기어코 입 밖으로 꺼내고 만다. 포식자 앞에 놓인 고라니 같은 눈빛을 무기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그 어색함을 견뎌내는 유병재의 코미디는 독보적이다.
한국 코미디에서 유병재와 닮은 스타일의 코미디를 구사하는 선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적극적으로 제 끼와 재능을 밖으로 발산해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외향형 인간들이 가득한 한국 코미디계에서, 유병재는 안으로 수그러드는 목소리와 갈 곳을 잃은 눈빛의 내향형 인간을 자처하는 것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tvN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스티브 카렐이나 윌 페럴과 같은 영미권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무기였던 ‘내향인의 어색함’을, 유병재는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고발하는 도구로 쓴다. YG와 계약한 직후 SNS에 올린 새 집 사진에서 유병재는 거대한 양현석 사진을 어디에 걸어두면 좋을지 고민한다. 대표이사의 사진을 집에다 걸어두는 것으로 충성을 과시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의 농담은, 일일 MC로 나갔다가 김구라의 기세에 질려 제대로 분량을 확보하지 못한 채 끝났던 MBC <라디오스타>에서도 빛을 발했다. “‘내가 (앞으로 고정MC를) 하고 싶은데 안 불러주시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인 게 불러주실 것 같지도 않고 저도 앞으로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다신 오고 싶지 않습니다. 11번도 지울 거예요. TV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유병재의 억울한 눈빛은 코미디가 갈등을 웃음으로 무마하는 데에만 유용한 게 아니라 웃음 뒤에 갈등의 실체를 슬쩍 숨겨 폭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했다. <착하게 살자>는 흥미롭지 않아도, 포식자가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고라니 같은 눈빛의 유병재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리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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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