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수 “시베리아 횡단열차,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전 구간을 여행하고 나면 ‘이제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까 횡단열차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아주 멀지 않은 시간대의 한국인들의 사연이 녹아 있으니까 계속 가고 싶은 거죠.
글ㆍ사진 임나리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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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박 19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베를린에서 막을 내린 여정이었다. 그는 줄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걸음 내딛는 곳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들이 있었고 위대한 자연의 민낯과 만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황무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던졌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러했고, 억압받는 소수자를 위해 그러했다. 그 시간을 더듬으며 가슴이 텁텁해질 때쯤이면 그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것들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지’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시베리아 시간여행』 은 철도 기관사 박흥수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기다. 2015년 8월부터 2016년 3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박흥수 기관사의 유라시아 기차 횡단기’를 엮었다. “잊혀 가는 역사적 인물들을 되살리는 것은 후대를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라 말하는 저자는 독립운동가와 이주 한인들의 흔적을 되짚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희미해져 버린 그들의 삶은 우리를 오래지 않은 과거로 이끌었다가, 현재를 곱씹게 하고, 미래를 그리게 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로 23년째 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박흥수 저자는 첫 책 『철도의 눈물』 을 펴내며 철도 민영화 계획을 비판하고 철도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이기도 한 그는 철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왔다. 두 번째 저서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에서는 철도의 역사를 통해 ‘근대’를 설명하며 ‘책 덕후’, ‘철도 덕후’의 면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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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열차,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2015년에 떠나신 여행이었죠?

 

네, 그해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하신 기간은 상당히 길었어요.


분량이 많아서 매주 연재할 수 없었고요. 2주에 한 번씩 연재했었어요.

 

이전에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셨었나요?


3박 4일간 맛보기로 갔다 온 적이 있었고요. 이 여행을 다녀온 후에 너무 좋아서,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다녀오기도 했어요. 같이 갈 사람을 찾아서 떠난 적도 있고, 노조에서 조합원들과 떠나는데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가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갔다 온 게 여섯 번쯤 돼요.

 

책에 실린 여정에서는 전 구간을 여행하신 거죠?


네, 횡단열차의 전 구간을 간 건 그때 한 번이에요. 18박 19일 동안.

 

그 뒤에도 또 떠나신 이유는 뭔가요?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전 구간을 여행하고 나면 ‘이제 안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까 횡단열차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아주 멀지 않은 시간대의 한국인들의 사연이 녹아 있으니까 계속 가고 싶은 거죠. 횡단열차를 한 번 탔다고 해서 횡단열차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열차를 운전할 때도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들까지 조금 더 넓게 보려고 하다 보니까 시간을 내서 가게 되는 거죠.

 

한동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시베리아 여행 이야기만 하셨다면서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같이 다녀온 친구들도 사람들만 만나면 시베리아 이야기를 한대요. 한 친구는 저한테 전화를 해서 ‘네가 애 망쳐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술만 마시면 여행 이야기를 한다고요.

 

요즘도 그러세요?


래퍼토리가 계속 바뀌는데, 요즘은 더 이야기하죠. 남북이 조금 화해 모드가 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원래는 서울역이 국제역이었거든요. 국제선 표를 파는 창구가 있어서, 거기에서 베이징 가는 표를 사고 그랬어요. 지금도 경의선만 연결하면, 아침 일찍 서울에서 떠나서 저녁쯤 베이징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철로는 아니지만, 육로 경의선으로 북한 방문단이 온다고 해요. 서울역에서는 KTX를 타고요.


그래서 요즘에 제가 점쟁이 소리를 듣고 있어요(웃음). 1월 초에 남북 직통전화가 연결됐다는 뉴스를 보고 <프레시안>에 기고를 했었거든요. 북한 대표단이 서울역에서 평창 가는 KTX를 타는 상상을 해본다고요. 그리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썼었는데, 일이 급진전되더니 실현이 됐어요.

 

감회가 남다르시죠?


네. <프레시안>이 저한테 북한과 내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말한 대로 되고 있다고요.

 

경의선 철로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으신 것 같던데요?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때는 임진강역이나 도라산역도 없을 때여서 선로를 놔야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완전히 중무장이라서 도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선로가 놓인 끝 지점에 자재를 갖다 놓고 조금씩 연장시키는 중이었어요. 그때 자재를 실은 화물열차를 몰고 갔었죠. 어느 날은 임진강을 넘어가는데 ‘아, 이게 경의선이었지. 신의주랑 만주까지 갔던 노선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동료 두 분이 여행에 동행하셨어요.


네. 한 명은 지금 해고 생활을 하고 있어요. 철도민영화 반대 관련한 파업에 참여했다가 해고당해서... 아마 올해 복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죠.

 

해고자가 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가장 오래된 분들은 15년 됐어요. 15년 전에 해고된 제 친구 기고나사는 가끔 기관차 운행하는 꿈을 꾼대요. 가슴이 너무 아프죠. 그리고 여행을 같이 다녀온 이만호라는 친구는 9년 정도 됐어요. 올해 복직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드셨을 텐데, 견뎌낸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황폐해지고, 조울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이 세계에서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 삶인 거잖아요. 한 때는 정말 당당한 철도노동자였는데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도 없고, 그런 삶이죠. 그래서 쌍용차라든지 다른 해고노동자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해고 노동자 치유 프로젝트’로 친구들을 시베리아에 데려갔는데, 치유가 많이 됐어요. 120% 치유된 것 같아요.

 

치유에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세계라는 창을 보면서 다시 내가 존재하는 세계를 보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땅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다른 곳에서는 이상한 것일 수도 있고, 여기에서는 굉장히 이상하고 문제가 되는 것들이 다른 세계의 창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다른 세계를 본다는 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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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

 

독립운동가, 이주 한인들의 흔적을 되짚기도 하셨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계획하셨던 건가요?


네, 사전에 공부를 많이 했고요.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연해주 지방은 굉장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더라고요. 그 분들의 발자취나 흔적들을 찾아가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 현장에서 대해서 어떤 기분을 느낄지 궁금했고요.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중요한 흔적들은 남아있어요. 세울스카야 같은 거리의 이름도 그렇고요. 그런 의미에서, 발터 벤야민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과 저의 은밀한 약속 같은 걸 찾는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김 알렉산드라,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한편으로는 그 두 분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어요.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면서 네 달 차이로 죽음을 맞이했고, 거의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당해서 똑같이 강물에 내던져졌죠. 이들의 삶을 보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출신의 이주자였고 여성이었고 장애인이었어요.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던 거죠. 김 알렉산드라도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여성이었고 조국이 아닌 이역만리 땅에서 살았어요. 두 여성에게는 자신들이 사랑했던 인간과 그 인간들에 대한 해방의 생각들이 있었고 그래서 혁명가로 나섰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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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취들을 따라가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씁쓸할 때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건 강제 이주 열차에 타신 분들이에요. 상상을 해보면, 10월 말의 시베리아는 되게 춥거든요, 그럴 때 널빤지로 만들어진 화물 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하면서 얼마나 열패감을 느꼈겠어요. 저는 직접 기차를 운전하다 보니까, 이주 열차의 운행 과정들을 세심하게 들춰볼 수 있었는데요. 너무 힘겨운 과정이었어요. 그 험한 땅에서 새 삶을 일구는 것도 그렇고요. 또 많은 한인 혁명가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는데,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기도 한 거예요. 내가 반대하는 체제에 의해, 혹은 전투하다가 적에 의해서 죽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숭고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고 아직도 그 가치는 내 삶의 전부인데, 그걸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형장에 끌려갔던 거예요. 그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죠. ‘인간은 무엇인가’를 계속 되물어보게 하는 현장들이었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찾으셨어요?


굉장히 열악한 상황 속에서 소수자였지만 그래도 그것이 인간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갔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들 때문에 역사는 이어져왔고, 그래서 삶은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마지막 여행지로 베를린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원래는 손기정이 갔던 길을 따라가 보겠다는 의미도 있었는데, 단순히 손기정으로 대별되는 건 아니고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전쟁의 큰 상처와 분단을 겪었잖아요. 그런데 베를린은 분단을 극복한 땅이고, 이주라든지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고, 그러면서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적대시하고 악마화하고 단절할수록 공포는 더 확대되고, 열고 만나고 소통할수록 오해마저도 이해로 바꿀 수 있는 길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사회도 더 많은 것들에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소수자들도 그렇고, 종교적 이념적 성적 배제를 뛰어넘는 걸 가르치는 게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열차 안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신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최대 오래 있었던 건 4일이고요. 짧게는 8시간, 평균적으로는 15~20시간 이상씩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긴 시간이 아니고요, 러시아에서는 그 정도가 기본적인 거예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도 사람들이 같이 있어서 좋아요. 문제는 더위였죠. 냉방이 되는 차도 있고 안 되는 차도 있었는데요.

 

냉방이 안 되는 열차가 있었다면서요?


네. 되는 차도 있고 안 되는 차도 있었는데요. 처음에 4일 동안 탔던 차는 냉방이 안 됐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랑 더 친해졌어요. 제가 콜라를 주면서 ‘동무, 미제의 쓴 물을 마셔 보라우’ 그러면 ‘남조선 동무가 농담도 잘 하시네’ 하면서 마셨죠.

 

말씀하신 것처럼 열차에서 우연히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하셨어요. 서로 기념품도 교환하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로어회화책이요. 오늘 가지고 와서 직접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러시아어 회화책을 교환하셨던 거죠? 그런데 북한 노동자는 남한의 책을 돌려줬더라고요.


그 친구랑 같이 연결 통로에서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책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거나 기념품을 하나 건네 주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저도 기념품을 하나 더 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갔었고요. 그런데 책을 돌려주는 거예요. ‘아, 이게 아닌데...’ 싶었죠.

 

그 분의 입장이 짐작되기도 해요. 남한의 책을 가지고 있으면 본인이 곤란해질 수도 있잖아요.


책 한 권 가지고 곤란해지는 일이...

 

북한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그 책을 주변 동료들이 너무 부러워했거든요. ‘나도 한 번 보자, 너 너무 오래 보지 마라’ 하면서.

 

남한의 회화책이 신기했나 봐요.

 


로어회화책을 보셨다면 왜 그랬는지 아셨을 거예요. 종이 질도 좋지 않고 인쇄도 조악하거든요. 그런데 제 책에는 상황에 대한 그림도 그려져 있고, 인쇄도 깨끗하고, 빳빳한 종이에, 표지는 코팅돼 있어서 물을 흘려도 안 젖을 것 같잖아요. 제가 그 입장이었어도 그런 회화책이 있으면 너무 갖고 싶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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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들과 한 객실에 머무르신 거잖아요. 같이 사진도 찍고 잘 지내셨는데, 나중에 관리자가 와서 사진을 지워달라고 했죠?


진짜 관리자들은 4인실 고급 객실에 탔고요. 현장 관리자 중에 한 명이 감시 아닌 감시를 계속 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중에 와서 사진을 지워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 뒤로 북한 노동자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들도 알고 나도 아는 게 있었어요.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우리 본래 마음이 이게 아닙니다’라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걸 저도 알고, 또 그 사실을 그들이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열차 안에서 침대가 바로 마주 보고 있는데 그 마음이 안 통하겠어요? 지금 우리처럼 가까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바이칼! 바이칼!


열차 내에서, 더위만큼 힘든 문제가 화장실이었던 것 같아요.


네, 특히 6인실은 방문도 없고 파티션이 9개 정도 있어요. 사실 옆 6인실도 고개만 돌리면 대화가 돼요. 그래서 12명이 같이 모여서 밥을 먹기도 하는데요. 복도 양 끝에 화장실이 있어요. 54명 정도가 두 개의 화장실을 쓰는 거예요. 특히 아침 식사 후가 제일 문제죠. 그때는 생체 리듬에 의해서 신호가 오는 시기잖아요(웃음). 또 씻어야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화장실에서 시작된 길이 객실까지 쭉 이어지는 거죠.

 

러시아 열차가 우리나라보다 열악하지 않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한국 전체 선로가 3,700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노선 하나가 9,288킬로미터거든요. 그 엄청난 선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게 벌써 100년이 넘은 거잖아요. 그건 나름대로 노하우와 기술이 있다는 거거든요. 낙후된 면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철도가 더 뛰어나가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의 고속철도도 뛰어나지만, 러시아도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까지 다니는 고속철도는 훌륭하거든요.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던 구간은 어디였나요?


바이칼이죠.

 

여름에 가셨으니까, 녹음이 드리워진 호수를 보셨겠네요.


네, 훌륭하죠. 초록의 나뭇잎들이 계속 빛을 반사하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보니까 ‘저거 호수 맞아? 호수에 웬 파도가 쳐?’ 싶기도 하죠(웃음).

 

3박 4일의 짧은 일정으로도 바이칼호수를 보고 올 수 있을까요?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인아웃을 한다면 3박 4일 코스나 4박 5일 코스로도 갈 수 있는데요. 그래도 4박 5일 정도는 갔다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더 추천을 하자면 바이칼 안에 알혼섬이라는 데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시간여행을 할 수 있어요.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알혼섬에서 후지르 마을을 가는데요. 거기는 18세기 말의 서부와 유사한 분위기가 있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걸어 나올 것 같고, 문 열고 카페를 나서면 갑자기 보안관이 나타날 것 같은 거죠. 그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바이칼의 부르한 바위와 토테미즘도 볼 수 있어요. 봉고차를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북부투어’도 멋지고요. 저녁에 보드카 한 잔 마시고 여름의 바이칼에 쏟아지는 별을 보면 너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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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을 이야기하셨어요. 시베리아 여행이 곧 시간 여행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 중소 도시든 대도시든 규격화된 삶이 있잖아요.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를 타고, 저녁에 술을 한 잔 하고, 아니면 토익 학원에 가고, 여러 가지 정해진 삶이 있는데요. 시베리아라는 공간에 가면 굉장히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한국의 1970~80년대처럼 차장이 버스 안에서 돈을 받고 표를 끊어줘요. 그리고 한국에도 1960년대까지 트램이 있었다고 하는데,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트램이 다녀요. 그렇게 예전의 한국과 같은 모습도 볼 수 있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 전의 건물도 그대로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더 노력하면 그 안에 있는 사연들을 캐낼 수도 있죠. 베를린까지 가다 보면 첨단화된 곳도 있어요. 또 바이칼 같은 대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도 경험할 수 있고요.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겸허해지거나 왜소해지잖아요. 이렇게 아웅다웅 살 필요가 있나 싶고. 물론 돌아오면 또 아웅다웅하게 되지만요(웃음). 시베리아는 그렇게 끊임없이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값이 싸요(웃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죠(웃음).


이 여행에서는 제가 미리 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요. 같이 간 친구들도 놀랐어요. 거의 20일 동안 여행하면서 1인당 270만 원을 썼거든요. 그렇게 많이 아끼지도 않았어요. 술도 많이 마시고 밥도 맛있는 거 사 먹었는데 항공권이랑 열차, 호텔 이용 비용 다 합쳐서 그 정도 금액이었어요.

 

왕복 비행기 값이 포함된 금액이에요?


네, 들으면 사람들이 놀라죠(웃음). 여행사에 맡기면 금액은 더 높아져요.

 

유럽 여행은 교통비가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러시아는 교통비가 싸고, 또 열차가 안전하다면서요?


그렇죠. 저는 유럽의 열차만큼 좀도둑 스트레스가 큰 데가 없는 것 같아요. 러시아는 안전해요. 타보시면 왜 안전한지 알게 되실 거예요. 또 다른 승객들과 알게 되면 훨씬 더 안전하거든요. 거의 20시간씩 같은 열차를 타고 가는데, 처음엔 서로 모른다고 해도 초콜릿이라도 하나 나눠먹게 되고 눈인사라도 하게 돼요. 그러면 훨씬 더 안전해지는 거죠. 저는 카메라도 자리에 놓고 다녔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어떤 사람들에게 가장 권해주고 싶으세요?


어떤 분들이라도 가셨으면 좋겠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 받은 영혼들이 열차에 몸을 싣고서 그곳을 치유의 공간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낯선 사람이 되어 보면 세상을 한 번 낯설게 볼 수 있고, 낯선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 기회도 가질 수 있잖아요. 저는 사람이 끊임없이 낯선 사람, 이방인이 되어 보는 경험이 좋다고 생각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을 때의 고독과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내가 주류인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 이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더 우호적이거나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책에서 추천 명소도 소개하셨어요. ‘이곳만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하는 장소가 있나요? 세 곳만 꼽으신다면요?


세울스카야 같은 곳이 그렇죠. 지난 해 언론보도를 보니까, 재건축을 하는지 개보수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다 헐고 있더라고요. 그 거리는 비싼 주택 단지도 아니고 버려진 창고 거리예요.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 거리에 집 한 채가 간판을 걸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특히 러시아나 상해 임시정부 같은 곳의 유적들은 우리가 조금 더 찾아보고 보존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세울스카야 거리가 한적하고 좋아요. 그리고 바이칼을 빼놓을 수 없죠.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이야기하면, 모스크바일 것 같아요. 지하철도 역 하나하나가 다 깊으면서도 웅장하고요. 유명한 관광 명소가 다 있지만, 이즈마일로보 시장 같은 곳도 한 번 구경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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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시간여행박흥수 저 | 후마니타스
인문서로나 여행서로나 손색없는 전방위한 이 책을 들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여정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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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