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러운 것들을 한 데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잡지였다. 의도만큼이나 이름도 담백하다. 『월간 정여울』 .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재료들이 하나의 그릇에 담겼다. 어떤 고민은 파랗고 어떤 사유는 노랗고 어떤 감정은 붉다. 그런 다채로움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콜록콜록’ 아파하고 ‘와르르’ 무너지고 ‘와락’ 끌어안으며 이어지는 삶, 그 속의 이야기를 일 년 동안 펼쳐 보일 계획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서 정여울과 당신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릴 이야기들이다.
5년 전에는 못 썼을 책이에요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하신 책이 아닐까 싶어요.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10년쯤 전이었어요. 『월간 정여울』 은 잡지의 형식을 반 정도 빌려온 거고, 수필집에 더 가까워요. 단행본처럼 하나의 주제가 있는 게 아닌 잡스러운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글들이 왜 한 권에 실렸지?’ 싶을 정도로 안 어울리는 글들도 섞어 놓고 싶었던 거죠. 그게 잡지의 성격이잖아요. 저는 ‘잡’이라는 글자를 너무 좋아해요. 잡스러운 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욕망들이 있잖아요. 그건 하나로 연결되거나 일관되게 정리되는 게 아니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지만 조화롭게 담아내고 싶었어요. 아직은 처음이라, 수줍은 마음에 과감하게 다 넣지 못한 것 같은데요(웃음). 점점 더 과감해질 예정이에요. 새로운 글을 많이 써보려고 해요.
수필은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잖아요.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5년 전만 해도 못 했을 것 같아요. 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많았거든요. 내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를 솔직하게 보여줄수록 독자들이 더 많이 공감하더라고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이 첫 번째 에세이집인데, 그때부터 독자들과 더 친밀해졌어요. 새로운 독자도 많이 생겼고요. 저를 드러낸 이후에 생긴 변화인 것 같아요. 상처나 부끄러운 부분도 이야기하면서 저도 자유로워졌고요. 독자들도 저를 편하게 여겨준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졌고 글을 쓰는 보람을 느꼈어요. 생각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공감대를 찾는 게 훨씬 더 쉬워졌어요. 그게 에세이의 힘인 것 같아요.
‘이것까지 드러내도 될까?’라는 자기검열을 하셨던 건가요?
많이 했죠. 그게 오히려 나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많이 엷어졌어요. 자기검열을 낮추니까 글쓰기가 더 자유로워졌고요. 매일 조금씩 자기검열을 낮추려고 노력해요. 『월간 정여울』 1월호에도 저의 흑역사에 대해 썼지만, 2월호에서는 첫 챕터부터 나오는데요(웃음). 그런 걸 쓸 때는 정말 힘들어요. 별 거 아닌 이야기 같아도 거기에 얽혀있는 사람들이 있고,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니까요. 그런데 막상 써놓고 나면 상처와 거리두기가 되면서 객관화되더라고요. 그때 잘못했던 것들이 조금 더 잘 보이는 거죠. 치유는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한 거예요. 일단 나 자신에게 툭 터놓고 이야기해야 되죠. 상처로부터 일단 도피하는 건 제일 안전한 방법이지만, 치료는 안 되더라고요.
단행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을까요?
단행본의 경우에는 조금 묵혀놓은 글이 들어가게 돼요. 2~3년 전에 썼던 글이 들어가기도 하고. 정리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월간 정여울』 은 3~4일 전에 쓴 글도 실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며칠 전에 쓴 글들을 제일 많이 넣어요. 예전에 썼던 글 중에서 단행본으로 묶기 힘들거나 저의 소중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도 넣기는 하지만요.
잡지인 만큼 시의성을 놓칠 수 없겠죠.
네, 그런데 시의성이라는 게 트렌디함이 아니고요.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 지금 같이 고민하고 싶은 걸 넣고 싶은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게 스릴 있고 좋았어요. 지금 여기의 생각이나 고민들을 담는 게 『월간 정여울』 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재밌어요.
마음의 빗장을 열고 싶어요
열두 권의 제목이 이미 정해졌더라고요. 다 의성어, 의태어인데 이유가 있나요?
글의 느낌에서 뽑아온 거예요. 제 글 속에 의성어나 의태어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의성어는 글인데 음악 같고, 의태어는 글인데 그림 같잖아요. 그래서 의성어, 의태어를 좋아해요. 그림을 그린 듯이 말하고 음악을 듣듯이 글을 쓰는 게 너무 좋아요.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어떤 주제에 함몰되지 않고 느낌만 비슷하면 되는 거죠. 아주 느슨한 어울림인 거예요. 1월호에 실린 글들만 봐도 어떤 건 길고 어떤 건 짧아요. 어떤 건 에세이 같고 어떤 건 칼럼 같죠. 인터뷰도 들어가 있고요. 다 달라요. 통일성이 있는 단행본과 달리 훨씬 더 자유롭죠.
1월호 제목이 ‘똑똑’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되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정한 거예요. 처음 만나면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더 친밀해지려고 다양한 시도들을 하잖아요.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농담은 잘 못하고(웃음), 단도직입적으로 저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에는 다 빗장이 있는데, 내가 열어야 다른 사람도 열거든요. 그러니까 ‘똑똑’은 제 마음의 빗장을 여는 소리이기도 하고, 독자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소리이기도 하죠. 그런데 꼭 열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똑똑’ 두드리기만 한 거니까요. 응답은 독자 분들이 해주시면 되는 거죠.
안진의 화가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고, 작품에 대한 글도 쓰셨어요.
안진의 화가님에 대한 작가론을 짧게 써 놓은 게 있었어요. 그게 책에 실린 글인데요. 해설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제가 그림을 보는 방식과 느낌을 썼어요. 쓰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굉장히 즐겁더라고요. 이런 글도 계속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적인 미술 평론이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감상자의 입장에서 쓰고 싶은 거죠. 지금 고흐에 대한 책도 준비하고 있어요. ‘고흐로 가는 길’이 가제인데요. 『헤세로 가는 길』처럼 고흐에게 가는 길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요.
매 호마다 화가들의 그림이 실리나요?
그림과 글이 대화하는 모습이 됐으면 좋겠어요. 잡지는 광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 잡지는 저랑은 조금 안 맞는 것 같아요. 광고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만들잖아요. 더 욕망하도록 자꾸 부추기죠. 그렇게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를 쉬게 하고 사유하게 만들고 영감을 자극해주는 그림을 싣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창조적인 영감이 있거든요. ‘똑똑’이라는 제목에는 예술의 입김, 글쓰기의 따뜻함이 일상에 활력이 되고 영감을 불어 넣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겨 있어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건데요.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 같아요.
아직 쓰임을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2월호 표지는 남경민 화가의 작품이죠?
네, 고흐의 방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의 그림이에요. 고흐는 자신의 아픔을 담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최고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됐잖아요. 2월호는 ‘고통과 아름다움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은 책이 될 것 같아요. 당신이 앓고 있는 고통이 결코 혼자 앓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공감한다면 제3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창조하는 이유는 ‘고통을 통한 승화’인 것 같아요. 고통을 승화시켜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굉장히 강한 거죠.
‘콜록콜록’이라는 제목이 고통과 관련 있는 것 같아요.
아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나타낸 거예요. 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예요. 아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제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처음에는 제가 아파서 글을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 비슷하지 않아도 혼자 아파하고 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글을 더 써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과 치유라는 길로 가기 위해서 글도 있는 것 같거든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상처를 통해서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치유하는 방법도 알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콜록콜록’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한 몸짓을 담은 책이에요. 상처를 통해서 예전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비상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판단은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지만 사유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판단적으로 되어 버렸어요. ‘이게 쓸모 있는 건가, 쓸모없는 건가’라고 생각해요. 그건 판단이지 사유가 아니거든요. 거기에서 이야기가 끝나 버려요. 쓸모없는 거라고 판단되면 생각을 안 해요. 예전에 과학자들이 ‘쓰레기 유전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모든 유전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쓸모없는 유전자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쓰임을 찾지 못한 유전자, 아직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신비로운 유전자인 거죠. 그걸 쓰레기 유전자라고 이름 붙인 과학자들의 폭력성이 굉장히 황당했어요. 저는 그게 판단이고 인간의 성급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판단이 아닌 사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쓸모 있다고 생각해야 돼요. 세상의 모든 생각이 다시 한 번 생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되고요.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실수를 덜할 수 있어요. 어떤 사물의 가치, 존재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고요. 그래서 판단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유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건 유죄야, 무죄야’라고 판정하는 건 생각을 끝내버리는 거예요.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을 때도 있잖아요. 회색의 수많은 스펙트럼 속에서도 다 농도와 채도가 다른 거죠. 그 농도와 채도를 밝히는 게 글쓰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판정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게 글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월간 정여울』 이 개인적으로 미친 영향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글을 써놓고도 잊어버리거나 어디에 뒀는지 모르고 한참 찾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글을 쓰면서 ‘이건 『월간 정여울』 열두 권 중에 어디에 넣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마음속에 커다란 방이 생긴 거죠. 열두 개의 방이 딸린 거대한 저택이 생긴 거예요. 부자가 된 느낌이에요. 방에 어울리는 가구를 배치하듯이 ‘이 글은 어느 방에 어울릴까’를 생각하면서 글을 써요. 그런데 그 집은 저 혼자만 사는 집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집이에요. 누구나 와도 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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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정여울 저 | 천년의상상
어디에선가 아프다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깊고 넓은 ‘마음의 안테나’를 드리워, 우리 안의 비밀스러운 감정, 꾹꾹 눌러 참아도 터져 나오는 응어리들을 감싸 안는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봄봄봄
2018.02.14
그림들이 다 좋았고 나머지 그림들도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