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는 몸의 일이다. 여성의 몸, 특별히 질 그리고 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은 공유되거나 기록되는 대신 잊히고 삭제된다. 이토록 오랜 시간 이 피를 금기시한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방치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그 피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 뒀다.
김보람 감독의 저서 『생리공감』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생리’라는 단어가 나와서 당황하셨나요? 오늘 저희는 인류의 절반이 평균 30년 이상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감춰져 온 이야기이기도 하죠. 이 시간을 통해 누군가는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또 누군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더 잘 피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 김보람 다큐멘터리 감독 편>
김하나 : <피의 연대기>가 3월 초까지 상영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가 화제 속에서 두 달 가까이 상영됐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김보람 : 화제가 되긴 했는데요(웃음)
김하나 : 네(웃음),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나요?
김보람 :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고 거기다가 생리 다큐멘터리라는 이중 장벽이 있었던 것 같고, 날도 굉장히 추웠고, 상영관도 적은 편이었고요. 그래서 관객 분들이 극장까지 와서 보시기에는 여러모로 힘든 장벽이 있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저희가 처음에는 조금 아쉽고 우울한 기분도 있었는데 전국에서 매일 어떤 때는 300분, 어떤 때는 100분이 이 영화를 보러 와주셨거든요. 그런 기록들을 보면서 이렇게 접근하기 힘든 영화를 수고를 들여서 극장에 가서 봐주신 분들이 계신다는 게 어떻게 보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굉장히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고요. 2월 말이면 많은 극장에서 종영되고 3월에도 한두 군데에서 계속 상영이 될 거라서 혹시 극장에서 보고 싶은 분들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김하나 :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은 남녀노소 다 가서 보셔야 돼요. 왜냐하면 너무 교육적이에요. 교육적인데 딱딱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도 있고 너무 예쁩니다. 예쁘다는 말을 하는 게 유리한 걸까요? 저는 되게 좋았는데...
김보람 : 예쁜 영화예요(웃음).
김하나 : 책의 제목은 <피의 연대기>가 아니라 『생리공감』 이에요. 왜 『생리공감』 이라고 지으셨나요?
김보람 : 그건 전적으로 출판사의...(웃음)
김하나 : 아, 그래요(웃음)? <피의 연대기>가 너무 “피의 연대기!”라고 외치는 느낌 같아서, 좀비 영화 같아서 그랬나요?
김보람 : 컨셉 자체를 조금 다르게 가고 싶어 하셨어요.
김하나 : 영화와 책이 다르게요?
김보람 : 네, 책에서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겪으면서 일어났던 변화에 대한 고백을 담고 싶어 하셔서, 제목도 영화와 다르게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마땅한 제목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저희 편집 주간님의 의견이었어요(웃음).
김하나 : 관객이 엄청나게 들어서 자본이 넘치고 다음 작품을 만드는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우리나라의 한정된 관객 수 안에서는요. 그래도 앞으로 만든다면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 있으신가요?
김보람 : 아이템은 정말 많은데요(웃음).
김하나 : 얘기해 주세요. 어떤 걸 해 보고 싶으세요?
김보람 : 지금은 갑자기 너무 이른 시일 내에 이슈의 중심에 서게 돼서 이걸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자 코미디언을 엄청 좋아해요. 국내외의 코미디언, 특히 해외 시트콤이나 코미디쇼를 너무 좋아하는데요. 국내에서는 송은이 김숙 씨가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를 처음 하실 때부터 ‘뭔가 되게 새로운 작업이 되겠다, 이 분들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조금 용기도 없고 경력도 없어서 연락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피의 연대기>를 마무리 지을 즈음에 한 번 용기 내서 연락을 해볼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그 사이에 너무 바빠지셔서, 이제 와서 끼어들면 유명해지니까 따라붙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김하나 : 와, 이거 너무 좋은데요?
김보람 : 사실 ‘한국의 최초의 여성 코미디언은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는데요. 송은이, 김숙 씨를 메인 캐릭터로 해서 그런 계보와 새로운 물결을 담아보고 싶었던 아이템이었어요.
김하나 : 그 아이템, 합시다. 해야 될 것 같은데요(웃음).
김하나 : 혹시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의...
김보람 : 네, 『여왕마저도』 요. 저희가 원래 코니 윌리스를 인터뷰하고 싶었어요.
김하나 : 와, 진짜요? 너무 멋있다!
김보람 : 네. 어떻게 생리하지 않는 게 보편화된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는지, 그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저희가 에이전시와 출판사에 메일도 보냈는데 끝내 섭외가 되지 않았어요.
김하나 : 답이 없었나요?
김보람 : 네. 저희가 스카이프로라도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죠. 그것만 됐으면... 사실 코니 윌리스를 인터뷰 해놓고 영화에 안 쓸 수는 없잖아요(웃음).
김하나 : 엄청난 일이죠.
김보람 : SF가 갖춰야 될, 문학이 갖춰야 될 상상력이 있다면 『여왕마저도』가 정수라고 생각이 들 정도예요.
김하나 : 언제나 갑자기 시작되는 ‘스피드 퀴즈’ 시간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주세요.
김하나 : 지금 생각해 보면 등단을 하지 못한 건 행운이었다.
김보람 : Yes
김하나 : 작품성은 없고 흥행성은 보장되는 영화가 있다. 연출 제의를 받는다면 수락할까?
김보람 : Yes
김하나 : 이런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 일생 동안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한 감독, 또는 다양한 주제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한 감독.
김보람 : 후자예요.
김하나 :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짜릿하다, 아니면 누구에게 권할 일은 아니다.
김보람 : 누구에게 권할 일은 아니다.
김하나 : 알겠습니다. 누구에게 권할 만한 일은 아니군요.
김보람 : 네(웃음).
김하나 : 하지만 본인은 이런저런 고생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끼고 계신 거죠?
김보람 : 네.
김하나 : 그럼 권할 수도 있어야죠.
김보람 : 아... 그런데 제가 뭔가 책임을 못 질 것 같아서요(웃음).
김하나 : (웃음)맞아요. 그러면 혹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나 조금 더 큰 무대에서 활동했다면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김보람 : 어쨌든 영어권에서는 시장이 훨씬 크잖아요. 저희가 프로젝트를 들고 독일의 마켓에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주제로 영미권에서 만든 작품이라면 진짜 시장성이 큰데, 이게 한국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거예요. 한국 히어로물을 미국에서 안 보듯이, 같은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영화가 이렇게 예쁜데요(웃음)? 넷플릭스에서 연락 왔으면 좋겠네요.
김하나 : 다양한 주제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한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다큐멘터리에 한정되는 걸까요? 아니면 극영화 같은 걸 할 수도 있을까요?
김보람 : 극영화는 제가 생각을 안 해봤고, 여전히 소설은 써보고 싶어요. 전에는 굉장히 작가주의적인 소설을 쓰고 싶었던 반면 지금은 많은 분들이 편하게 읽으실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생리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계속 생리 관련, 혹은 몸에 관련된 주제만 다루게 되지는 않을 것 같고요. 앞으로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주제들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김하나 :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도 있을까요?
김보람 : 사실 하고 싶은데 제가 그림을 못 그리니까, 내용과 시나리오를 쓰고 애니메이션 감독님이랑 작업하고 싶어요.
김하나 : 이번 영화를 같이 만든 특공대가 있잖아요. 저는 너무 깜짝 놀랐다니까요.
김보람 : 어떻게 제 마음을 그렇게 잘 아세요(웃음)?
김하나 : 여러 활동들 중에 저희 팟캐스트를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보람 : 아닙니다. 오늘 제 마음을 스캐닝처럼 봐주셔서(웃음), 감사합니다.
김하나 : 다음에 영화든 책이든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또 나와주실 거죠?
김보람 : 네. 너무 감사합니다.
김하나 : 다시 나오고 싶으신 마음을 제가 마인드 리딩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웃음). 송은이 김숙 씨께 꼭 연락드리시고요.
김보람 : 네, 용기를 얻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하나 : 오늘의 만남은 이렇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코니 윌리스, 넷플릭스, 그리고 송은이 김숙 씨. 지금까지 <김하나의 측면돌파> 김하나였습니다. 2주 후에 다시 만나요.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