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존 도우> 가 개막했습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 ‘존 도우를 찾아서’가 원작인 이 작품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이후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평범한 인물, 존 도우가 주인공인데요. 사회에 항거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에 뉴욕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밝힌 가상의 인물입니다. 존 도우가 순식간에 화제가 되자 전직 야구선수인 윌러비가 그 대역으로 발탁돼 방송과 각종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평범한 윌러비에서 영웅 존 도우까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우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뮤지컬계에서 선한 인물로 유명한 배우 정동화 씨 말입니다!
“살을 일부러 빼는 건 아니고, 빠진 걸 유지하고 있어요. 몸이 가벼우니까 좋은 면도 있더라고요. <타이타닉>이 120회고 분량도 많아서 힘들긴 했는데, <존 도우> 는 중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라서 더 힘들어요.”
인터뷰로는 정동화 씨를 오랜만에 만난 건데요.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타이타닉> 때 석 달간 주 6일 근무를 해서 그런 거냐고 물어봤습니다(웃음). 주인공이 따로 없는 작품이었지만, 1인 6역의 정동화 씨는 <타이타닉>에서 가장 돋보였던 배우였죠.
“감사하죠. 당시 배우들끼리는 <타이타닉>이라는 작품에 승선하게 돼서 영광이라고 했어요. 제가 할 분량이 많고 쉽지 않다는 건 알았는데, 직접 대본을 보고 연습을 하다 보니까 책임감을 갖지 못하면 작품의 결이 많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라이선스 작품인데도 한국 관객들이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트라이도 많이 했어요. 반영이 돼서 조금이나마 작품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저도 감사했고요.”
오랜만에 대극장에서 정동화 씨의 색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타이타닉> 이후 어떤 작품을 선택할까 무척 궁금했는데 <존 도우>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라흐마니노프>를 하면서 HJ컬쳐에 대한 신뢰가 있고, 저 역시 많이 믿어주셨어요. 예전부터 신작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중소극장에서는 주연을 많이 맡았지만 대극장에서 원톱으로 선 경험은 많지 않거든요. 저한테도 도전인 거죠.”
<타이타닉>에 이어 <존 도우> 에서도 원 캐스트에 가깝잖아요.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원 캐스트의 매력도 있죠?
“그렇죠. 결국 공연은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만드는 건데, 함께 보낸 물리적인 시간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면 호흡이나 시너지가 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조차 무대에 반영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원 캐스트는 오롯이 집중하면서 작품에 녹아들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체력적으로는 힘들어서 좋은 거 다 찾아먹지만(웃음).”
창작 초연이라서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요. 대부분 창작 초연 작품은 배우들도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잖아요.
“가사도 쓰고 대사도 쓰고, 참여 안 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웃음). <존 도우> 도 개막 전 2주간 다 함께 머리를 싸매고 테이블 작업을 했어요. 관객들은 이 인물의 삶이 궁금할 텐데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문제는 아쉬운 부분을 찾기가 힘든 거였죠. 그래서 장면을 만들어서 해보고, 다시 수정하고. 그런 작업을 2주 동안 계속 했어요. 힘든 2주였지만 그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저희도 더 화합이 돼서 첫공을 무사히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윌러비를 보면서 정동화 씨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성격과 비슷하지 않나요?
“비슷한 면이 있죠,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웃음). 인물을 맡을 때면 인간적인 면을 많이 찾으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편인데, 윌러비의 경우 운동선수를 생각했어요. 운동선수들이 겉으로는 상남자 같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하나만 한 사람이거든요. 운동 외에는 잘 모르는, 하나만 바라보고 직진하는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들요. 저는 평소에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다들 노력하잖아요.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단 말이에요. 이런 사소한 노력이 작은 에너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이 항상 노력하고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정동화 씨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영상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죠!
<타이타닉> 때도 느꼈지만, 윌러비를 연기할 때도 ‘깨알’ 유머감각이 있더라고요(웃음).
“그런 걸 좋아해요. 관객들이 무대에 마음을 여는 순간이 있는데, 처음부터 음악, 조명, 무대가 너무나 완벽해서 마음을 열 수도 있지만, 웃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심각한 극이라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으면 작게나마 웃을 수 있어요. 그런 공감되는 부분을 찾는 걸 좋아하고, 작품에 투영하려고 노력해요.”
존 도우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윌러비와 존 도우 연결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진솔한 지점이겠죠. 가공의 인물이지만 존 도우의 진솔함을 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현실의 사람을 찾은 거잖아요. 하지만 대담성은 다르죠. 윌러비는 대담한 친구가 아니거든요. 앤 미첼 기자를 통해서 대담함과 용기를 얻게 되죠. 그래서 팀으로 함께 대담한 여정을 펼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뮤지컬 <존 도우> 는 메시지가 명확한데, 배우로서는 어떤 걸 좀 더 드러내고 싶나요?
“작품의 메시지는 ‘영웅은 대단한 게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 시대의 영웅이다.’예요.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관객들은 무대 위 주인공을 보지만,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거죠. 저는 관객들을 위해 공연하거든요. 제 동기 부여나 에너지의 원천은 관객들이에요. 관객들이 기대하지 않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저는 이미 지쳤을 거예요. 오래 무대에 섰고, 사실 많이 지쳤거든요. 저를 위로하는 건 가족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대에 섰을 때 가장 힘을 주는 건 관객들이에요. 그래서 이 작품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공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의 움직임 하나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요.”
살짝 지친 면도 있다고 하셨는데, 색다른 작품이나 새로운 도전도 환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코코>에서 헥터 역의 노래 더빙도 그 일환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맞아요, 뮤지컬만 고집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대가 가장 좋고, 오랫동안 무대에 서고 싶지만, 공연은 제한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나 가수가 무대에 오면 대중이 공연장에 오도록 중간 역할을 많이 하죠.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좀 더 넓은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다시 무대에 왔을 때 저로 인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요. <코코> 더빙은 누군가 추천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제 노래가 디즈니 영화에 실린다는 게 믿기지 않더라고요. 녹음 작업은 오래 걸렸지만 노래도 아름답고 지금 흥행 성적도 좋아서 보람 있죠. 그리고 차기작은 영화입니다. 제목은 아직 얘기할 수 없는데, 운 좋게도 주인공을 맡았어요.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데, 올해 안에 개봉할 것 같아요. 잠깐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관객들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존 도우> 가 정동화 씨 올해 상반기 마지막 뮤지컬 아닌가요(웃음)? 존 도우는 세상을 바꾸는 인물인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나요?
“깨끗하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 좀 어두운 면이 많은 사람들이 빛을 봤던 때가 많았잖아요. 올 한 해는 어두움보다는 빛이 가득한 희망찬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 미투 운동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건데, 우리 작품과도 메시지가 닿아 있다고 봐요. 저희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고, 나비효과처럼 이런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기사에서도 정동화 씨의 성실하고 진지한 면이 드러나죠? 그러게요, 깨끗하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는 희망찬 한 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정동화 씨가 이 이미지 그대로 윌러비, 존 도우로 분하고 있는 창작뮤지컬 <존 도우> 는 4월 2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됩니다. 16인조 재즈 빅밴드의 감각적인 연주가 더해져 더욱 풍성한 무대를 선사하는데요. 정동화 씨의 올 상반기 마지막 뮤지컬일 수 있는 만큼 순조로운 공연, 그리고 영화라는 새로운 도전 모두 응원하겠습니다.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