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불씨를 꺼줄 소화기
열이 갑자기 날 때는 해열제를 먹고, 급체에 걸리면 바늘로 손가락에 피를 내는 것으로 응급조치를 하듯이 불안할 때도 잘 듣는 응급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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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스플래시.jpg

         언스플래쉬

 


불안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은 많이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이물질을 내 몸 안에 갖고 있어서 빨리 빼냈으면 하는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잘 안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불안은 훨씬 커져 버린다. 작은 불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집과 마을 전체로 퍼지는 큰불이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정확히 보면 불안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잠잠하게 만드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적당한 긴장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긴장을 너무 안해도 문제다. 긴장은 내 안의 에너지를 적당히 높은 수준으로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돕는다. 다만 그 반응이 필요보다 지나치게 강하거나,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할 때 문제가 된다. 바로 그것이 불안한 상태다. 즉, 불안은 실제는 없어야 할 이물질 같은 것이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 대응하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인식과 반응의 조절실패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는 하지만 정작 불안해지면 힘들다. 불안해져서 예민해지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다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신경을 쓰게 되니, 불안하다는 걸 인식하는 것 자체가 더 불안해지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든 불안을 빨리 줄이기 위해 불안의 핵심에 포커스를 한다. 문제는 그럴수록 불안은 더 커지기 쉽다는 것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물건같이 증식하기 일쑤다. 열이 갑자기 날 때는 해열제를 먹고, 급체에 걸리면 바늘로 손가락에 피를 내는 것으로 응급조치를 하듯이 불안할 때도 잘 듣는 응급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급키트 박스 안에는 해열제, 소독약, 붕대, 반창고와 같은 간단한 도구들만 들어있지 왜 열이 나는지,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세균이 증식하는 원리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일단 닥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도 그런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두껍고 이론적인 내용보다 가볍고 실용적인 실천법만 다룬 책.


최근 딱 맞는 한 권을 발견했다. 멜리사 티어스의 『10분안에 끝내는 불안퇴치 기법』 이다. 부제는 ‘뇌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이다. 저자는 미국 뉴욕의 최면전문가이자 라이프 코치라고 하며 이론적 기반으로 NLP을 이용하기도 한다.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는 두뇌의 사용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태생적으로 이론적 접근보다 행동과 말하기 방법을 실천하게 하고, 이것이 뇌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는 기법이다. 우리나라에도 NLP를 가르치는 곳이 여럿 있는데, 이 책의 번역자도 최면과 NLP의 한국 전문가들이다.


이 책에는 꽤 쓸만한 실용적 방법들을 딱 20가지만 선정해서 소개하고 있다. 문고판 크기에 100페이지 남짓으로 포켓에 쏙 들어갈 정도의 분량이다. 아주 쉽게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법을 2-3페이지에 걸쳐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뇌과학적 이론도 좌반구와 우반구 같이 매우 고전적인 이해하기 쉬운 뇌 기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불안을 스스로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불안이란 불씨를 확 키우는 촉발 자극을 중화시키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무술을 배우는 것과 비슷해서 많이 연마할수록 남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게 되듯이, 이 방법을 잘 알게 되면 불안 자체를 맞닥뜨릴 일이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방법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만일 불안한 대상이 있다면 그걸 작은 공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공을 하나 손에 쥔다. 손에 쥔 공을 양손으로 번갈아 오간다. 그렇게 하면 뇌의 양반구가 자극을 받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몸의 중앙선을 충분히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분정도 오고간후 심호흡을 하고 불안을 체크해보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뇌의 양반구가 자극되어 혈액과 전기자극이 뇌 전체로 퍼져서 불안과 연결된 신경세포의 구조가 해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안해서 똘똘 뭉친 강한 신경망이 느슨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음은 NLP의 공동 창시자 리차드 벤들러가 제시한 기법으로 몸 안에 돌아다니며 갇혀있는 불안을 빼내는 방법이다. 불안이 내 몸 안에 있어 그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움직이면 견딜 수 없이 불안이 내 몸 안을 휘젓고 다닌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이 불안이 몸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지 느끼면서 손을 이용해서 방향을 따라가게 한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불안을 빼내기 위해서 몸 안에서 움직이던 방향의 반대로 회전을 시켜서 손의 움직임을 반대로 바꾸면서 서서히 불안이 나가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불안이 확 올라오면 심상 안에서 불안을 다루는 다이얼이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이제 수치가 10인 다이얼을 서서히 4나 5 정도로 줄여보는 상상을 한다. 내지는 불안을 주먹 안에 가득 모은다고 상상하면서 꽉 쥐었다가 손에서 흘러내리게 하거나, 바닥으로 떨어뜨린다는 상상을 한다. 이는 바이오피드백을 이용한 자율신경계 이완훈련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이렇게 무척 단순하고 적용하기 쉬운 기법들이 20가지 소개되어있다. 몇 가지를 해보고, 익히면 꽤 유용하게 써먹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몇 가지는 진료실에서 적용을 해보았는데 꽤 설득력이 있었다. 저자도 실험해보고 어떤 기법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체험해보라고 조언한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더 순조로운 인생이라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상자를 갖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아이, 콤플렉스, 무의식적 갈등과 같은 불안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어렵고 먼 길일 수 있고, 그 과정에 불안은 더 심해질 위험도 있다. 난 일시적 불안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이 그 먼 길을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해열제나 위장약이 찬장에 보관되어있으면 한밤중에 아플 때 냉큼 꺼내 쓸 수 있어 든든하듯이, 이런 책 한 권 정도 미리 읽어두고 서가에 꽂아두는 것은 실용적 측면에서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10분안에 끝내는 불안 퇴치 비법멜리사 티어스 저 / 설기문 역 | 학지사
불안을 퇴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불안에 대해서나 불안 퇴치에 대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이론을 소개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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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